사업 확장은 백번 신중해도 모자람 없다
냄비 속에 들어간 개구리의 생각 | 08
어떤 제품이 희소성으로 인해 품귀 현상이 일어날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제품의 브랜드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왜 대체 생산을 더 하지 않는 거죠? 더 많이 팔면 더 돈을 많이 벌텐데요" 원래는 무명이었다가 특정 제품으로 갑작스럽게 유명해진 중소 브랜드라면 추가 생산을 할 수 있는 비용이 없어서라고 이해라도 되지만 그 브랜드가 대기업이라면 이런 원성이 더욱 잦아지는 편이다.
대체 왜 그들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젓지 않는 걸까? 당연한 얘기지만 생산량을 늘리지 않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제품의 수요가 계속해서 유지될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바이럴 되면서 인기가 생긴 제품의 경우 품귀 현상이라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하면 그로 인해 수요가 더욱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이렇게 품귀 현상이 과열되는 구간을 지나고 품귀 현상이 끝나게 되면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드는데 이쯤 되면 수요가 평년의 수준으로 돌아가는 게 보통이다.
만약 이런 경향성을 예측하지 못하고 10의 수요가 발생했다고 그에 맞춰서 10을 제조할 수 있는 인프라를 큰 비용을 들여 구축하면 어떻게 될까? 품귀 현상이 끝나고 수요가 원래의 수준인 1로 돌아갔을 때 10을 제조하면 9가 악성재고가 되는 대참사가 발생한다. 그럼 결국 큰 비용을 투자한 인프라는 활용도 못하고 고정비만 증가시키는 골칫거리가 되게 된다.
둘째, 생산량을 늘리면 품귀 현상이 더 빨리 끝나기 때문이다. 생산량 증가로 품귀 현상이 끝났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인지하기 시작하면 제품에 대한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품귀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는 해당 제품을 발견했을 때 굳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여러 개 사두고 지인들에게 나눠주거나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재기를 하지만 품귀 현상이 끝났을 때는 필요한 사람들만 제품을 사기 때문에 점점 제품의 재고가 판매처에 쌓이게 되고 그러면 더욱 제품을 구매하기가 쉬워진다.
희소성은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하는데 가장 강력한 요소인데 이 경우 희소성을 굳이 브랜드가 나서서 없애는 꼴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매일 점심이면 줄 서서 먹어야 했던 작은 식당이 넓은 곳으로 이사를 한 후에는 줄 서는 빈도가 줄어들어서 점점 줄 서는 맛집이 아닌 언제 가도 줄 설 필요가 없는 식당이 돼버리는 경우가 바로 비슷한 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개구리의 심리
물 들어올 때 굳이 노를 젓지 않는 브랜드의 이유를 알고 나니 그들이 노를 젓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합리적인 이유처럼 느껴진다. 외려 같은 상황에서 노를 젓는 사람이 바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며칠 뒤면 물이 다 빠져서 배로는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게 뻔한데 대체 누가 이 상황에서 노와 배를 더 산단 말인가?
혹시 예상했는가? 맞다. 바로 내가 샀다. 지금부터는 물 들어올 때 신나게 노를 젓는 개구리들의 심리에 대해서 말해보려 한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내 브랜드는 예상보다 빨리 매출이 성장했고 금방 억 단위의 매출을 만들었다. 이쯤 되니 내 안에는 "내가 타고난 사업가이자 마케터구나"라는 근자감이 가득 차올랐다. 그리고 그런 근자감이 점점 비대해지면서 치명적인 부작용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중 가장 문제였던 것은 시장 트렌드와 매출 요인을 판단하는 객관성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매출이 상승하면 그 이유를 시장과 소비자에서 찾아야 하는데 나는 오로지 나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연도의 매출을 예측할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능력이 좋으니 올해보다 매출이 두 배 더 성장할 수 있겠구나" 그 예측의 근거에는 시장 규모, 트렌드 따위가 전혀 섞이지 않았다. 오로지 근자감 기반의 예측이었다.
이처럼 매출이 두 배 더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그 매출의 규모에 맞추기 위해 제품군을 확장해야 된다는 결론이 났다. 하지만 당시에 발생하는 매출은 전부 재고를 매입하는데 대부분이 소진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품군 확장에 쓸만한 잉여자금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대출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그 규모가 억 단위에 이르렀다. 직장인일 때는 상상도 못 한 액수의 대출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걱정이 없었다. 시장 상황이 어떻든 내 능력 덕분에 내 브랜드의 매출은 두 배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체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도무지 안 되지만 그때는 진짜 뭐에 홀린 것 같았다. 아마도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개구리들의 심정이 모두 이와 같으리라.
아무튼 그렇게 무리한 확장을 강행한 끝에 나는 완전히 망했다.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 기대했던 매출은 오히려 역성장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그제야 나는 쪼그라든 근자감을 내려놓고 부랴부랴 매출 증감의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출 증감의 원인을 알게 되자 나는 "그야말로 내가 펄펄 끓는 냄비 속 개구리 그 자체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년도에 매출이 급등했던 이유는 내 능력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 유행으로 급격하게 풀린 유동성 덕분에 온라인 커머스 자체가 매출 호황이었던 것이었다. 즉, 나만 잘된 게 아니라 온라인에서 판매를 하는 모든 이들이 잘된 시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유행이 끝나면서 온라인에 풀렸던 유동성이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모든 셀러의 매출이 줄어들었고 나도 그 영향을 받아서 매출이 감소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외부 요인 외에도 내 브랜드가 속한 카테고리의 소비 트렌드도 매출 감소에 영향을 줬다. 이 카테고리의 제품들은 보통 수명이 길어서 구매 주기도 긴 편인데 이러한 이유로 한번 구매한 고객이 1년 내에 같은 제품을 재구매할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그래서 전년도에 내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한 고객들은 거의 대부분이 첫 구매가 끝구매가 되는 상황이 됐고 그들이 만들어줬던 매출 볼륨이 그다음 해에는 거품이 꺼지듯 빠져버렸다.
전례 없는 폭우와 평년강수량 증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은 무조건 잘못된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다만, 들어온 물의 속성이 전례 없는 폭우인지 평년강수량 증가인지를 따져본 뒤 신중히 노를 젓는다면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은 탁월한 결정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전례 없는 폭우로 육로가 잠시 물에 잠겼다고 차를 팔고 배를 사는 사람은 없다. 그 이유는 며칠 뒤면 물이 빠지고 육로가 다시 드러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때 배를 사면 물이 차있는 며칠 동안은 남들보다 편리하게 살 수 있지만 물이 빠지면 그 배는 무용지물이 돼버린다. 내가 떠안았던 악성재고처럼 말이다.
반면에 평년강수량의 증가로 원래 육로였던 곳이 매해 물에 잠기는 일수가 점차 늘어나는 상황이라면 남들보다 일찍 배를 사는 것이 훨씬 나을 수 있다. 나중에 완전히 육로가 물에 잠기게 돼서 배가 필수인 상황이 됐을 때 배의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면 가격이 급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미리 배를 사서 운용하고 있던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기회와 수익을 얻게 된다.
핵심은 수요의 지속성이다. 들어온 물이 얼마나 오랜 기간 비슷한 양으로 유지될지 혹은 그 이상으로 늘어날지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노를 저어야 비로소 현명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매출이 급증했을 때 단순히 자신의 능력 때문에 늘었다고 자만하면서 노젓기를 시작하는 것은 추후에 비가 안 내리면 기우제를 해서 내리게끔 만들면 된다고 자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잘 알다시피 강수량은 기우제를 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시장 상황이나 소비 트렌드도 한 개인이 자기 능력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일론 머스크나 워런 버핏 정도의 유명인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니 물이 들어왔다면 이게 전례 없는 폭우인지 평년강수량의 증가인지부터 따진 뒤에 노젓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물 들어온다고 무작정 노를 젓기 시작하면 당신이 노를 젓고 있는 곳이 강이 아니라 펄펄 끓는 냄비 속이었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