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짓다

내용 그 이상의 가치를 담아

by 강센느

오래 전,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IQ84로 잘못 인지하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그의 소설이 IQ가 84 정도 되는 인물이 멘사 회원을 뛰어넘는 인생대역전극을 보여준다거나 아니면 IQ와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룰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제법 지나 그 책을 도서관에서 집어들었을 때, 나는 얼마 안 가 책의 제목이 IQ84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무려 1000페이지가 넘어가는 장편소설임에도 그 책에서는 IQ라는 단어가 거의 단 한번도 중요하게 언급되지 않았다.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아니면 영화관이든 우리가 어떤 콘텐츠를 선택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맞이하게 되는 것은 제목이다. 제목은 그것이 담고있는 내용의 핵심이기 때문에 자연히 보는 사람은 그것을 통해 내용을 유추하게 된다. 이러한 연유로 제목은 종종 내용을 압도하는 핵심 요소가 되기도 한다.


제목에 대해서 얘기하다보니 대학생 시절, 유난히 글의 제목에 집착하던 교수님이 떠오른다. 한번은 학생들이 적어온 수필의 제목들이 모두 엉망이라며 제목을 바꿔오라는 불호령을 내리시기도 했는데 그때 교수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내 뇌리에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글을 멋지게 잘 써놓고 제목을 대충 글을 간추리는 정도로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아주 잘못된 겁니다. 같은 글이라도 어떤 제목을 가지느냐에 따라 아무도 안 읽는 글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읽고 싶은 글이 될 수 있어요. 글에 투자하는 만큼 제목을 짓는데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세요.



그때는 그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오인지했던 사건과 더불어 최근 어떤 한 작품을 맞이하게 되면서 나는 제목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는데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바로 그것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 이 작품의 제목은 왠지 모르게 강한 흡인력이 있었다. 100세 노인이라는 범상치 않은 인물, 게다가 그 인물이 창문을 넘어 도망쳤다는 범상치 않은 사건까지. 짧은 제목만 읽었을 뿐인데 이전에 생각해본적 없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그 책을 구매하게 되었고 500페이지 가량의 그리 짧지 않은 호흡의 소설임에도 쉬이 끝까지 완독하게 됐다. 그리고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여 찾아봤더니 <셈을 할 줄 아는 문맹 여인>이 그 제목이었다. 나는 순간 외마디 감탄사를 외쳤다. 정말 영리한 작가구나! 나는 아마 다음 작품도 안 읽어보고는 못 배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깨달음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를 설레게 할 수 있다는 사실, 그만큼 제목이 가지는 힘은 상상 그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하루키의 작품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꿔놓는 것이든, 요나손의 작품을 보기도 전에 훨씬 넓은 이야기로 상상하게 하는 것이든 말이다.

그래서 제목은 내용의 축소가 아니라 내용의 확장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