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길을 잡는 문장들

익숙해서 더 이해하기 싫은 문장을 접어두고

by 강센느

유난히 춥던 겨울 아침, 자주 무심코 지나치던 카페의 쇼윈도에 문득 시선이 갔다. "아주 따뜻한 나라로 5일간 휴가 다녀오겠습니다." 얼마나 따듯한 나라로 휴가를 떠났기에 저리도 따뜻한 문장을 남겨두고 떠났을까? 나는 한동안 그 카페 주인의 행선지를 궁금해하다가 왜 여태 이런 카페를 매번 그냥 지나쳤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사실 그렇게 큰 특이사항이 있는 카페는 아니었다. 다만, 누군지 모를 그 카페의 주인이 남겨놓고 간 그 짧은 문장 하나 때문에 그날부터 그 카페는 내 기억의 어느 한 꼭지를 버젓이 자리 잡는 특별한 카페가 되었을 뿐이었다. 단지, 그 한 문장 때문에. 그가 만약 "개인 사정으로 5일간 쉽니다."와 같은 투박하고도 염치없는 문장을 남겨놓고 가게 문을 닫아뒀더라면 나는 역시나 그 가게를 무심코 지나쳤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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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비슷한 경험을 출근길에 경험한 적도 있다. 평소 걷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계단을 오르는 것에 불만을 늘어놓는 성격은 아닌 편이지만 출근길에는 늘 이런 태생적인 성격도 예외가 되곤 한다. 각설하고, 그날은 유난히 아침부터 피로와 졸음이 몰려와 죽어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싶던 날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평소엔 한 번도 운행을 중지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에스컬레이터가 그 날은 운행을 멈추고 수리 중이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왜 하필 오늘이냐며 짜증을 부렸는데 그런 내 마음을 단번에 녹여주는 문장이 수리 중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에 쓰여 있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조금 늦더라도 확실하게 고치겠습니다." 조금 늦더라도 확실하게 고친다니, 왠지 못 기다려주고 화낸 나 자신이 머쓱해지게 하는 문장이었다. 평소처럼 "점검중,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와 같은 문장이었다면 내 화를 더 돋웠을 텐데. 문장 하나 달라졌다고 이렇게 사람의 생각을 바꾸다니. 나는 다시금 문장의 마법 같은 힘을 경험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참 거리엔 무관심하게 지어진 문장들이 많다. 촉수엄금, 주차금지,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공사중 등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지은 문장이면 사람들이 더욱 기분 좋게 행동으로 옮길텐데 이전부터 늘 사회적으로 맺어진 일종의 sign처럼 사용되는 문장 혹은 단어들. 사실, 그런 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해서 오히려 더 안 보이는 법이다. 왜 손을 대면 안 되는지, 왜 주차하면 안 되는지, 왜 쓰레기를 버리면 안되는지. 하다못해 이 자리에 주차하면 우리 아이가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늘어나요 라든지 조금은 길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 같더라도 그런 문장들이 오히려 '주차금지'라는 짤막한 네 글자보다 더 사람들의 눈에 잘 띄고 행동을 유도하게 되는 것인데 생각보다 이런 문장은 거리에서 찾기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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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고무적인 사실은 '초보운전'이라는 말이 요즘엔 참 다양한 문장들로 나오고 있어서 예전엔 눈살을 찌푸리거나 피하기 일쑤였던 초보운전 차량들을 이제는 오히려 더 신경 써주고 양보해주게끔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저도 제가 무서워요 ㅠ", "답답하시죠? 저는 환장합니다!", "초보라 미안해요. 비행기를 살 걸 그랬네요" 등 분명 초보운전이라는 네 글자보다 더 길어서 읽는 데 시간이 걸리는 문장들이지만 놀랍게도 이런 문장들이 주변의 운전자들에게 엔돌핀을 돌게 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자발적으로 초보운전자를 돕게끔 한다.




문장에도 생명력이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쓰인 말은 분명 익숙해서 이해가 쉽지만 그 익숙함이 독이 되어 아무도 보지 않게 된다는 맹점을 가지게 된다. 우리 주변의 익숙했던 문장을 조금이라도 낯설게 만들어보자. 그럼 놀랍게도 제법 많은 것들이 바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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