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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았다면 앞으로가 있다

아데니움 오베숨의 기록

by sen

아데니움 오베숨에 새 잎이 났다. 잎이 모두 떨어지고 숨을 죽인 지 반년 만이다. 죽은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 그래서 쓰레기통 행이 될 뻔도 했지만 — 그래도 선반 한켠을 붙들고 버티고 있었다. 아직도 이 작은 아프리카 식물이 잎을 모두 내버렸던 현상의 이름도, 원인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확실하게 살아 있다는 것.




[2024년 8월 14일] 작은 아데니움을 구매.


[2024년 8월 20일] 분갈이. 뿌리 크기에 비해 너무 큰 화분이었을까 하는 걱정도.


[2024년 10월 15일] 조금씩 마르던 잎이 결국 모두 떨어짐.


[2024년 11월 5일] 선반 구석으로 옮겨진 아데니움.


[2025년 3월 26일] 잎이 살짝 돋아남.



분갈이의 후유증이었을까? 아니면 과습이었거나, 물 맛이 안좋았거나, 남아프리카 식물이 쐬기엔 필립스가 조악했거나, 천남성 무리에 맞춰진 습도가 너무 높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찬바람 부는 계절이 왔기 때문이었을까? 6개월은 긴 시간이다. 적어도 초보 식집사에겐 그렇다. 식물 방엔 계절이 없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고, 식물들은 루틴하게 자라난다. 간혹 잎이 탈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식물이 그대로 스러질지, 혹은 회복할지의 당락은 비교적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데니움의 탈피와 긴 침묵에 죽음이라는 귀결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떨어진 잎이 다시 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식물이 죽는 건 언제 겪어도 속상한 일이다. 그 어떤 선고를 내리는 것도 미뤄두고 싶어서 멀찌감치 뒀지만, 아데니움의 형광 주황 화분은 구석 끝에서도 시선에 걸렸다. 그것도 몇 주. 점점 아데니움은 풍경에 녹아들었고, 기억에서 흐릿해졌다. 몇 번인가 화분을 재활용할지 고민의 기로에 섰지만 흙 속 저 작은 몸뚱이를 파내는 건 왠지 내키지 않았다. 단지 죽었다고 단정 짓기엔 너무 단단했다. 선반 구석에 두고 잊힐 즈음, 거의 두 달에 한 번꼴로 물을 줬다. 그렇게 생도 사도 아닌, 중간의 존재로 지낸 6개월. 그런 아데니움은 그렇게 오래 잠들었었느냐고 되묻기라도 하듯, 아무렇지 않게 잎을 틔웠다. 아직 이렇게나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그래 죽지만 않았다면, 죽지만 않았다면. 식물을 키우다 보면 생과 사의 경계를 어렵지 않게 목도하게 된다. 가끔은 죽었다고 생각한 식물을 타이밍 좋게 살려내는 경험도 한다. 그렇게 살아난 식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싱싱한 잎을 수 없이 밀어 올린다. 밑바닥에 다녀와도, 똥밭에서 굴러도, 스틱스 강에서 물장구치고 와도 상관없다. 언젠가는 커다란 잎을 낼 테니까. 죽지 않았다면, 앞으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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