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슈 제작기 ④
처음 『티슈』를 만들기로 한 건 술자리에서였다. 우리는 즉흥적으로 진(zine)을 만들기로 했고, 『티슈』라는 이름도 그때 붙었다. zine의 제목이 무엇이든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티슈』라고 지었으니 짚고 넘어갈 게 있었다.
티슈란 무엇인가?
우리가 익히 아는 ‘티슈’는 화장지다. 각휴지, 두루마리 휴지, 넓게 보면 물티슈도 포함될 것이다. 닦고, 지우느라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티슈를 사용한다. 티슈가 지구에서 갑자기 사라진다면, 인간 세상엔 일대 패닉이 발생하지 않을까? 삶과 굉장히 밀접하면서도, 존재감은 그 무게만큼이나 가볍다. 그만큼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다. 하루에 몇 번 티슈를 썼는지 따위를 일일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이렇듯 가볍고 편한, 그리고 중요하지 않아서 쉽게 잊어버릴 무언가를 만들기로 했다.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내용물과 함께, 부담 없이 손이 가게 할 외견도 고민의 대상이었다. 티슈라는 게 시각적으로 드러나도 재밌을 것 같았다.
『티슈』의 표지는 그 자체로 '티슈'처럼 보이게 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혀갔다. 실제 휴지를 표지로 사용하는 방안도 나왔지만, 그러기엔 휴지의 강도가 너무 약했다. (침이 튄 정도로 녹아버리는 표지도 재밌었겠지만) 표지는 내용물을 지켜 줄 수 있는 강도를 갖는 것 또한 미덕이었다.
처음 우리가 시도한 건 풀린 두루마리 휴지의 긴 낱장을 스캔한 뒤, 그걸 배치-인쇄하여 표지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최대한 휴지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 앞, 뒤 표지 전체면에 휴지가 겹겹이 쌓인 것처럼 배치해 스캔하고, 프린트된 휴지에서 이어지듯 앞표지의 중앙에서 실제 휴지가 튀어나오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면 "만지고 잡아당길 수도 있는 '읽는 휴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스캔으로 휴지의 질감을 세밀하게 살리긴 어렵겠지만, 티슈에 늘 있는 꽃무늬 일러스트와 접힌 자국, 엠보싱의 음영 같은 게 표현이 된다면 꽤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스캔을 해보니 휴지의 디테일은커녕 새하얗게만 나왔다. 휴지가 겹친 부분의 음영조차도 표현되지 않았다. 이래선 휴지로 식별할 수 없었다. 휴지란 게 너무 얇아서였을까? 우린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닿은 생각이,
휴지와 같은 질감을 가진 종이로 표지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을지로4가역 근처의 ‘두성인더페이퍼’에는 다양한 질감과 색깔, 중량의 종이가 있다. '일상적이진 않지만 존재할법한 종이'를 찾는다면, 이곳에서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학부 시절에도 종이를 구하러 종종 찾던 곳이다. 매장 주변에는 포장 용품이나 기타 잡다한 것을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는 방산시장도 있어, 시각디자인과 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이곳을 들르게 된다. 우리는 무작정 종이를 둘러보며, ‘휴지 비스무리한’ 종이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다양한 질감의 종이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휴지 느낌’을 주는 종이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휴지가 가진 고유한 특성이 ‘얇음’에서 비롯된다면, 그 자체가 인쇄와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몰랐다. 인쇄술은 태동부터 정보 전달을 위한 수단이었고, 텍스트로 치환된 정보가 담기기 위해 종이는 인쇄 공정과 소량의 잉크, 유통의 과정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빳빳함’을 가진다. 얇고 질감이 있다는 점에서 한지 같은 게 그나마 가까웠지만, 그것도 엄연히 휴지의 질감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다 구멍이 뚫린 종이를 발견했다. 종이를 본 순간 "이게 표지면 웃기겠다" 싶었다. 단순히 '특이해서'라기보다는, '질감'이란 걸 '촉각적 경험'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휴지를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휴지의 엠보싱은 '원의 나열'일 것이다.
우리는 당장 근처 카페에 가서 머리를 맞대었다. 구멍이 난 ‘펜시홀종이’를 표지에 활용하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이었다. 이번 『티슈』의 컨셉 티슈는 각휴지나 물티슈가 아닌 ‘두루마리 휴지’였다(놀랍게도 시리즈가 될 수 있음을 염두했다). 관찰을 위해 근처 편의점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사 왔다.
두루마리 휴지는 뜯어 쓰기 위한 점선이 있고, 향기가 나며, 둥글고, 휴지와 휴지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휴지심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긴 형태의 종이가 사선으로 둥글게 말린 구조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앞표지는 휴지처럼 흰색으로, 뒤표지는 휴지심처럼 황토색으로 하면 어떨까?" 이렇게 하면 책등(세네카)은 휴지와 휴지심의 경계가 될 터였다.
우린 샘플 인쇄할 펜시홀종이를 몇 장 구입했다. 즉흥적인 판단의 연속이었지만, 휴지처럼 잘 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