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ne은 조상님이 만들어주나?

티슈 제작기 ③

by sen

②편에서 이어집니다


2025년 1월. 우리는 『티슈』를 채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래픽을 만드는 진수, 만화를 그리는 현우, 그리고 글을 쓰는 sen. 각자 채워야 할 zine의 분량은 10쪽, 우리는 1월 중에 끝내 보자고 호기를 부린 참이다. 황금 같은 겨울방학인데, 방학 내내 zine 제작에만 매달리는 것도 절망적이지 않은가. 1월에 마무리하고, 2월은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1월 말에는 설 연휴가 예정되어 있었다.


Frame 445.png 가능하다고 믿었다


“1월 21일, 화요일에는 취합해야 연휴 전에 인쇄를 넘길 수 있겠어. 다들 가능해?”


연휴 까지는 3주 정도 남아 있는 일정이라 다들 막연한 여유를 느끼고 있었다. 나 역시 '그동안 글 한 편 못 쓰겠어?' 하는 생각이었다(3주라는 기간은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동기들을 닦달한 감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일정이 늘어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느긋해지다 못해 프로젝트가 흐지부지 될 가능성 역시 여전히 존재 했다. 최악의 경우는 새학기가 시작될 때 까지도 zine을 마무리 못하는 거였다.


아무튼, 내 분량인 10쪽을 채우기 위해 골머리를 앓던 중, 문득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페이지에 숫자를 표기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세 명의 분량인 30쪽 이외의 영역이 그제야 떠오른 것이다. 특별히 다른 판형을 활용할 게 아니라면, 일반적인 책과 동일한 구조를 따르게 될 터였다. 각 페이지에 부여되는 숫자는 책 앞부분 구성의 영향을 받는다. (책은 표지부터 1p로 계산한다. 표지 뒤에 다른 페이지 없이 바로 첫 챕터가 들어간다면 챕터 첫 페이지는 3p, 표지 뒤에 속표지가 한 장 들어간다면 챕터 첫 페이지는 5p가 된다. 속표지 뒤에 내지가 한 장 더 들어가고, 챕터의 시작을 알리는 장이 추가로 들어간다면 챕터 첫 페이지는 8p 혹은 9p가 된다.)


IMG_5365.png


“표지는 필요하고… 더 넣을 장이 있나? 그리고 그건… 누가 해 주는 거지?”


우리는 각자의 10쪽 외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각자의 눈앞에 있는 과제가 너무 커 보였던 것도 있고, 프로젝트를 리드할 PM이 부재했던 탓도 있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zine이라는 것의 자유도를 지나치게 열어둔 나머지, 일반적인 책의 형태를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도 있는 것 같다(돌이켜보면 각자 10쪽씩, 총 30쪽의 내용이 들어가는 시점에서 책 형태 이외의 방법은 사실상 선택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각자의 10쪽이 가장 중요하다 보니, 그것만 완성되면 나머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보면 되겠지" 하며 미뤄뒀던 거다.


표지는 어떻게 디자인할지, 속표지는 있어야 하는 건지, 챕터와 챕터 사이는 어떻게 처리할지, 무슨 종이를 쓸지, 각자의 챕터 외에 더 들어갈 내용은 없는지, 어떤 제본이 적합할지까지― 당연히 짚고 넘어갔어야 할 것들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인쇄소나 ‘나머지 영역 전문 업체’ 같은 곳에서 대신해 줄 리도 만무했고, 결국은 우리가 온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Frame 446.png 48p로 구성한 페이지 예시


그제야 부랴부랴 『티슈』의 총 페이지 수와, 더 작업이 필요한 공통 영역을 더듬어 보기 시작했다. 어떤 제본을 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8의 배수로 페이지를 세팅하기로 했다.(보통은 4의 배수로, 사철 제본과 같은 좀 더 특수한 제본의 경우 8배수로 작업해야 할 때도 있다. 48p, 64p, 80p, 96p와 같은 식이다.) 각 챕터 사이에는 챕터 표지도 필요했고, 표지와 첫 챕터 사이에 『티슈』를 소개하는 영역을 추가하면, 독자가 본격적인 챕터를 갑작스레 맞이해 당혹스러워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표지와 내지에 사용할 종이도 결정해야 했고, 만약 특수한 종이가 필요하다면 종이 매장에 들를 일정도 따로 잡아야 했다.


Frame 450.png ... 되겠지?


표지를 비롯한 작업이 추가로 필요한 부분을 취합하고, 일거리 분배를 의논하기 위해 무거운 마음으로 진수와 현우에게 미팅콜을 보냈다. 그 무엇도 조상님이 대신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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