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변곡점 찾기 전에 즐기는 딴짓. <동해남부선 일기> ③
아무리 부산이 잠시 머물렀다 가는 곳이라지만, 그냥 지나쳐가기엔 아쉬움이 클 것 같아 이곳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내가 도착해서 짐을 정리하고 나오는 시간이나 친구가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시간이나 서로 비슷했기에, 게다가 업무로 늘 야근에 회의에 바쁜 날들을 보내온 친구가 내가 가는 날 만큼은 시간이 난다고 했으니 가능했던 만남이었다.
어디를 갈까 잠시 고민하던 우리는 서로 바다를 등지고 산 지 오래됐다며 광안리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부산 사람이 어째서 바다를 못 보냐, 내륙에 있는 나보다 심각하면 어떡하냐, 부산에 산다고 해도 바다 안 보고 못 보는 사람 많다 그거 다 편견이다, 바다 하나로 티격태격하다 보니 어느새 지하철에서 내릴 때가 됐고, 역을 나와 조금 더 길을 걸으니 바다의 짠 냄새가 서서히 진해지는 게 느껴져서, 내가 이제 광안리에 다다랐음을 알 수 있었다.
둘 다 배가 고팠기에 우선 근처 식당에 들어가 배를 채우기 바빴고 내가 부산에 온 이유, 정확히는 동해남부선을 타야 하는 이유와 타게 된 계기는 어느 정도 배가 부르고 나서야 털어놓게 됐다.
"나도 언니처럼 그렇게 여행 다니고 싶다. 부럽다."
프리랜서인 나와 달리 월-금 주 5일제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 친구. 이번 여행의 이유가 정말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그 뜬금없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다며 부럽다고, 자신도 시간만 있다면 그렇게 다녀보고 싶다고 눈빛을 반짝이던 친구.
이 친구도 꽤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여행'이라고 말만 하면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데, 그런 사람이 여행을 다니지 못하고 있으니, 말 다 한 거지. 그래도 조만간 갈 계획을 세워놨다며 되려 나의 부러움을 샀다.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문득, 아주 문득 들었던 생각이 정리하는 지금에야 떠올랐다. 내가 동해남부선을 타려고 하는 이유와 내가 이 친구와 연이 닿은 이유가 같다는 것이 그거다.
인스턴트의 느낌이 짙게 묻어나는 SNS. 교집합이 있을 때야 살짝 마주할 순 있어도 거의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 머무름이 없는 그 세계에서 나는 난생처음으로 이 친구를 만났다. 분명 스쳐 지나갈 수도 있을 사람이었을 텐데, 6년 전의 나는 겁도 없이 그녀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멀어졌던 적이 없었다.
사라지기 전, 잊혀지기 전 내 망막 속에, 가슴속에 오래도록 담아둘 거라며 동해남부선으로 발을 내디뎠던 지금의 '나'와 친구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갔던 그때의 '나'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나를 보며 연신 웃어댔던 친구.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그녀는 알았을까, 몰랐을까. 뭐, 알았어도 몰랐어도 상관은 없지만.
오전 일찍부터 시작되는 다음 날 일정을 위해 만남을 마친 나와 내 친구. 조심히 가라는 친구의 인사에 손을 흔들며 중요한 부분 잊어버리지 말라고, 책 사이에 끼워놓은 책갈피처럼 동해남부선으로의 여행길에 네가 발자국을 남겨줘서 고맙다며 마음속으로 내 울림을 전했다.
그렇게 부산에서의 밤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