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변곡점 찾기 전에 즐기는 딴짓. <동해남부선 일기> ④
오전 9시 46분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동해남부선 기차. 숙소에서 부전역까지는 걸어서 대략 15~20분 정도 걸린다고 지도 앱에 적혀있길래, 처음 걸어서 가는 길이니 30분 정도의 시간을 잡고 숙소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보통 여행을 가거나 지방 출장을 간다거나 하면 오전에 식사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아서 그 전날에 삼각김밥이든 컵라면이든 소시지든 미리 사두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조식을 꼭 먹고 출발해야겠다며 일찍 일어나 외출 준비를 빠르게 마쳤다.
이번 여행의 숙소는 서면 안쪽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
여행객, 관광객, 출장 때문에 급하게 내려온 사람들, 친구들과 밤새 놀기 위해 나온 사람들,... 등등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사람들의 상황은 다양했다. 내가 머물렀던 날에 잠깐이라도 마주쳤던 사람들도, 그들의 상황은 다양했다.
"어디 여행 가시는 거예요?"
"아.. 이번에 기차 노선 거의 없어지게 되는 게 있어서요~
그 기차 타러 어제 부산 내려왔다가 오늘 가요."
"어디서 오셨어요?"
"저 수원에서 왔습니다."
"멀리서 오셨네요- 하시는 일이.."
"프리랜서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자유롭게 다닙니다."
"그건 좀 부러운 것 같아요. 커피 좀 타 드릴 까요?"
게스트하우스 오전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분과 대화를 나누며 '동해남부선 기차를 왜 타려고 했는지' 속으로 한번 더 곱씹었고, 손목에 찬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보고는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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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앱의 안내에 따라 부전역까지 걸어가는 길.
이리저리 둘러보며 걸어가는데 아무리 높아도 3층 내외의 낮은 건물들과 건물들 곳곳에 자리한 공업사들과 공장들과 그 틈새에 있는 집들과, 높은 밀도로 사람들의 생활과 삶이 촘촘하게 모여있던 곳. 길 하나 건너기만 하면 높은 빌딩과 30층 가까이 되는 고층 아파트가 보이는데, 그곳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모습에 '아...'라는 소리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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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되는 두 세계-꼭 그 세계가 아니더라도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세계의 상징성은 '머무름'과 '나아감'-의 중간쯤에서 나는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잘 살아보겠다며 시작한 내 일, 내 직업에 언제부턴가 균열이 생기고 뒤틀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아가고 싶은 내 행보에 제동이 걸려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머무르는 것도 어중간하게 머물러서 이도 저도 아닌 모습으로 남아있게 되고, 그게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다 보니 지금의 '내'가 됐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세계. 해내고자 하는 욕심은 누구라도 품기 마련이고 나도 물론 품고 그 세계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욕심에서 비롯된 행동들이 마음이 나 스스로를 옥죄여왔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스스로에게 가하는 압박들, '얼마 못 하고 그만두는 거 아니냐'는 부모님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한 오기.
그동안 나는 억지를 부려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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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좀 더 깊어지려고 할 때쯤이었다.
오르막의 계단과 계단 위로 설치된 가림막과
계단을 오르며 보이는 수많은 철로들.
부전역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