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변곡점 찾기 전에 즐기는 딴짓. <동해남부선 일기> ②
동해남부선 [東海南部線]
부산의 부산진구와 경북 포항 사이를 잇는 철도선으로, 1918년 경주-포항 노선, 1935년 부산-경주 노선이 개통돼 지금까지 운행. 건설 목적은 동해안의 석탄과 목재, 광물, 해산물 등을 반출하고 함경선과 부산과의 연결을 긴밀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단선으로 운행됐던 동해남부선은 1993년에 시작된 부산-울산 간 복선전철화 공사를 통해 2016년 12월 30일부터 부산 일부 구간은 지하철로도 이동이 가능하게 됐다.
복선전철화 덕분에 사람들의 이동은 편해졌을지 몰라도, 해안선을 따라다니던 노선이 내륙지방으로 옮겨가면서 이로 인한 역 위치 변경으로 일부 역은 폐선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마주치다 갑자기 '혼자'가 되어버린 그 순간에, 살다가도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면 부서지기 시작하는 집과 같이 폐선이 된 역 또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간직해 온 추억들을 다 저장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잃을 것만 같아서, 그게 너무나도 안타까워 미간만 찌푸렸는데,
폐선부지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알게 된 사실.
일반 시민들에게 폐선부지를 개방해
문화관광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증발이 아닌 보존, 저장소,
손때 발때 가득 묻혀서 버릴 수도 버려질 수도 없는
절대적인 공간.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번에 동해남부선을 타면 폐선부지는 꼭 들렀다 가자.
타고 가다 중간에 내려서 미포 철길 거닐다가
다시 동해남부선을 타고 올라가자.'
하지만 동해남부선의 운행시간표는 나의 이런 계획을 들어줄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던 걸로 보였다. 운행시간표는 이미 짜여 있는 거고, 나는 다 짜인 다음에야 계획을 한 거니 이걸 당연히 들어줄 수 없겠지만 서도.
그래도 혹시나 싶었다.
날짜와 시간을 잘못 선택했나 싶어 두세 번씩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고
월화수목금토일 요일 별로 또 확인했다.
오전 9시 40분쯤에 한 대.
저녁 7시 10분쯤에 한 대.
기차에 한번 몸을 실으면 포항까지 그대로 가야 하는 노선.
미포 철길 따위 고사하고 중간에 쉴 틈도 주지 않는 노선.
동해남부선은 이렇게 하루에 두 대만 운행하는 노선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운행해야 하는 노선이 됐다, 가 맞는 말이겠지.
또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기차'만' 타고 폐선부지'는' 가지 않을 것이냐,
기차'도' 타고 폐선부지'도 갈 것이냐.
내가 동해남부선을 왜 타고 싶었는지, 무엇 때문인지
그 이유를, 계기를 다시 떠올렸다.
'차 안에서 느낀 창 밖의 모습들을
어딘가 고요하고 쓸쓸하지만 그럼에도 포근했고 소박했고
조금이라도 따뜻했던 순간들,
나도 그 순간들을 보고 싶었다.
같은 느낌이 아니어도 좋다.
다른 감정을 느껴도 참 고마울 것 같다.
그 자리에 나도 있었으면 싶다.'
일정을 여유 있게 잡아서 먼저 폐선부지를 둘러보고,
그다음 날에 동해남부선을 타도 됐었다.
이렇게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테고.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내가 느낀 것들 전부가
금방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딱 하나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그래서 나는,
1월 12일 오전 9시 46분에 운행하는 기차표를 끊었고
그 전날인 11일에 부산으로 느지막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