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변곡점 찾기 전에 즐기는 딴짓. <동해남부선 일기> ①
두 번의 재택근무와 무급 근무 덕분에 세 번째 변곡점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려는 순간. 꼭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느닷없이 툭, 튀어나오는 묵직한 무리들이 있다. 길을 걸으면서, 창밖을 본다거나, 책 또는 신문 등 활자를 읽는다거나,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듣는다거나, 내가 그곳에 있음으로 해서 스쳐 지나가게 된 여러 형태-이미지, 문장 및 단어, 목소리 또는 음악, 물건, 목격담 등 오감으로 느낀 다양한 출력물들-들 말이다.
이번에 튀어나온 건 '단어'였고, 여러 형태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함축된 덩어리, 발이 잘 안 닿는 곳으로 훌쩍 떠나는 내가 시국이 이래서 더욱 갈망하고 있는 그것, 바로 여행이었다.
늘 즉흥적으로 진행했던 나의 여행. 그래서 언제 어디로 떠났든 늘 머릿속 한켠에 기억이 머물러있는데, 유독 이 여행만큼은 내 안에 얼마나 큰 각인을 해놓으려는 건지 침몰과 떠오름을 늘 반복해가며 스스로 되새김질을 하게 만들었다. 복선전철 노선 개통으로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우리나라 남단의 기차 노선, "동해남부선"을 타려고 떠났던, 기간은 1박 2일이지만 여행에 소요된 시간은 2시간 남짓했던 아주 짧은 여행이었다.
동해남부선의 폐철도부지가 된 역 중 일부는 우리나라의 관광 명소로 새롭게 탈바꿈했지만, 일부 역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는 걸 증명하듯 무성한 수풀로 뒤덮여있었던 기억이 난다.
두 번 다시 탈 수 없을 거란 생각에 글과 함께 사진으로 남겨두었던 "동해남부선"의 기억을, 여기에다가도 옮겨적으려 한다. 끊임없는 되새김질을 위해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그 잔상을 오래 남겨두기 위하여.
2016년의 마지막 작업이 끝나고 나서였다.
말에서부터 2017년 초까지,
별 일이 없다면 무얼 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 틈새에 '무얼' 하는 게 제일 좋고 가장 바람직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내 시선이 닿은 곳.
책상 위에 놓인 한 권의 책이었고,
사진작가 김금순 님의 <동해남부선>이라는 사진집이었다.
며칠 전, 서점엘 들러 이 책 저 책을 들춰보다
내 마음에 마땅한 걸 찾지 못해 방황하던 그때,
얼떨결에 발견해 데려온 사진집.
작업을 끝내는 것이 우선이라 제대로 보지 못 했던 차에
시선이 닿았다는 걸 계기로 페이지 첫 장을 펼쳤고,
나는 곧바로 틈새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이번엔 내가 이 기차를 타야겠다.'
할 것이 정해지고 나니
기차 탑승의 일정과 이와 관련해서 숙박이든
다른 부수적인 것들에 대한 정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실 그렇다.
무엇을 하고자 할 때 그 무엇이 정해지면
'무엇'에 달린 가지들은 금방 정리를 하는 편이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고 일부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대다수라고 말을 하기엔 너무 일반화 시키는 듯싶어서.)
계획 세우는 건 금방 끝났으니,
이제 다음으로 해야 할 건 동해남부선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돌아다니는 것을 꽤나 좋아하는 나다.
하지만 이번엔 그걸 달리하고 싶었다.
이번엔 아무것도 모른 채로 돌아다니면 안 될 것 같단
느낌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