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편(그녀의 이야기): 청혼 전야
내가 처음 그와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한 때는 놀랍게도 그와 함께 있던 순간들 중 어느 하나가 아니었다.
밝아 온 아침, 평소처럼 내 방에서 조용히 눈을 뜨고 미처 가시지 못한 탈력감에 온몸을 맡기던 때에 내가 가장 먼저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린 것이 그의 목소리라는 게 그날따라 신기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자나 깨나 이토록 한결같을 수도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좋았다. 굳이 기억의 한켠에서 꺼내지 않아도, 더듬더듬 휴대전화를 찾아 그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의 음성이 내 의식을 떠도는 것에 어떤 특별한 이유나 원리를 찾고 싶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렇듯 한 사람을 숨 쉬듯이 사랑할 수 있는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그날은 우리가 잠시 멀어졌다가 다시 만난 뒤로도 1년은 더 지난 어느 봄이었고, 언제나처럼 크게 다르지 않은 조용한 아침이었다. 그때에 내 짧지만 확실한 결심이 있었다.
서른 살의 나에게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운 것 같아.
학교는 방학을 했고, 나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어.
두 주먹 꽉 쥐고 힘차게 시작했던 3월과는 다르게 지금의 나는 조금 지친 것 같아.
서른이 되면, 나는 TV 뉴스에 나오던 시각장애인 앵커 같이 유창하게 점자를 읽고, 자주 보던 시각장애인 스트리머처럼 눈 감고도 예쁘게 화장하는 나를 기대했어.
아니, 지금도 그런 기대를 해.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돌아다니다 잠시 길을 잃어도 그저 웃으면서 다시 내 길을 찾고 싶고, 멋진 직장에서 내 일에만 집중하면서 인정도 받고 싶어.
눈이 안 보이니까 이 일은 못할 것이다, 앞도 못 보는데 이런 일을 하다니 대단하다 같은 말도 들을 필요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 모두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엄마 아빠가 더는 걱정하지 않는 믿음직한 딸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5년 뒤면, 서른이면 꼭 그런 사람이 됐으면 했는데, 요즘은 정말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야.
그래도 학교에 있을 때는 좀 괜찮아. 실명한 시기만 각자 달라서 그렇지 다 같은 처지이고, 선생님들도 특별히 나를 낯설어할 리 없으니까 마음이 편해.
그런데 학교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늘 얘기가 다르더라.
얼마 전에 내가 다니는 교회의 행사 때문에 소풍 비슷하게 야외로 나갈 일이 있었어.
거기서 나를 조심스럽게 챙기려는 사람들과 나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돌려서 부드럽게 표현하려고 애쓰시던 목사님을 보는데, 그게 뭐라고 하루 종일 가슴이 답답한 거 있지.
또 반대로, '너는 안 보여서 이건 못할 거야'라면서 직설적으로 말하는 걸 들으면 그건 그것대로 열이 받는다!
뭐가 맞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이대로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한들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기나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
만약 무엇 하나 달라지는 것조차 없다면 나는 왜 이 노력을 해야 하는지...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내일 또 복지관으로 나갈 거야.
요즘 학교랑 복지관에서 음성으로 컴퓨터 화면을 읽어주는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우고 있거든.
학교 선생님 말씀이, 점자를 열심히 익힐 필요도 있지만, 당장 많은 양의 정보를 다루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활발하게 무언가를 공부해 나가려면 이런 프로그램 사용법을 빨리 숙달하는 게 좋다더라고.
맞는 말인 것 같아. 지금도 점자로 책을 읽으면 하루 종일 읽어도 교과서 열 쪽을 못 읽는데, 저 프로그램으로 컴퓨터 문서를 들으면 그럭저럭 남들 공부하는 만큼의 양은 들을 수 있거든.
이렇게 하나하나 배워서 학교를 졸업하면, 나는 돈을 벌 거야. 너무 당연한 말인가?
처음에는 졸업하고 바로 내 적성에 맞는 직장을 찾아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한 학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아.
아무래도 원래 계획대로 안마사로 일하면서 기본적인 자금을 좀 모아야겠어.
다행히 여성들이 안마사 자격증을 갖고 취업하는 직종 중에, 하루 근무 시간이 길지 않으면서도 월급제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있대.
그 일로 조금씩이나마 돈을 모으면서 계속 시각장애인복지관을 통해 재활을 해야겠어.
사실, 나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롤모델을 만났다!
선천적으로 실명한 시각장애인 동생인데, 그 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도 안마를 더 배우려고 지금 내가 다니는 전공과에 입학한 친구야.
그 아이를 보는데, 점자면 점자, 보행이면 보행, 컴퓨터면 컴퓨터... 진짜 유창하게 못하는 게 없더라고.
나도 저 정도까지 할 수 있어야 내가 원하는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어.
내 나름대로 지쳐서 그런지, 이래저래 계획은 있지만 미래가 유달리 불투명하게 느껴지는 요즘이야.
서른 살의 나,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
지금 같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절친이든 남친이든 없어도 좋으니까 그냥, 그저 당당하게만 살았으면 좋겠어.
실패를 위로받지 않아도, 작은 성공에 과한 축하를 받지 않아도 내 스스로가 나를 오롯이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날들을 살고 있으면 해.
투정이 길었네. 이제 줄일게.
2017년 7월의 끝에서, 스물다섯의 은하로부터
이 편지를 쓰고 곱게 접으면서 눈물을 훔치던 나를 기억한다. 그게 벌써 8년 전이다.
만약 서른 살의 나조차도 여전히 암담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때 이 편지를 보면서 한 번 더 나를 채찍질하라고 썼던 것이다.
그때는 그랬다.
내가 느끼는 아픔, 고뇌, 답답함은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어제 일처럼 기억될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고 조금이나마 살만해지는 날이 와도, 나는 그 힘들었던 시절을 생생하게 떠올릴 거라고 믿었다.
결론적으로 그렇지는 않다. 놀랍게도 지금은 '내가 그때 그렇게까지 힘들었나?' 하면서 실감을 못하고 지내는 중이다.
시간을 거슬러 내가 이 편지에 답장할 수 있다면, 정말 해줄 말이 많을 것 같다.
서른 살의 너는 드디어 니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고. 하지만, 여전히 너를 오롯이 사랑하는 법은 모르고 방황할 수도 있다고.
그때에, 진심 마법 같이 그 사람을 만날 거라고. 남친이든 절친이든 만날 생각도 안 하던 니가 그 사람에게만큼은 운명처럼 끌릴 거라고.
잠깐의 이별을 겪으며 가슴 치는 날들, 완전한 헤어짐을 결심하던 때에 기적처럼 울리는 그의 메시지.
그 겨울의 끝에서 다시 재회하며 나도 몰랐던 진짜 내 마음이 끝을 몰라야 할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그제서야 너는 모르는 사이에 너의 묵은 아픔을 모두 덜어냈음을 깨닫게 될 거라고.
그랬기에 니가 드디어 다른 사람을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음을 느낄 거라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깊은 사랑을 줄 수 있어야만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다고 말해 주고 싶다.
어두웠던 시절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그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렸던 나에게,
그것을 벅차도록 일깨우는 남자를 만날 거라는 걸 말해 주고 싶다.
그와의 결혼을 결심하고도 몇 주가 더 흘렀다.
내일 청혼하려고 한다.
고백도 내가 먼저 했는데 청혼까지 내가 먼저라니, 살짝 섭섭한 마음도 들지만, 나는 이제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아니까,
그리고 내가 그에게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기꺼이 내가 먼저 다가가려고 한다.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청혼 말고 결혼이...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도, 그리고 결혼 후의 우리 삶도...
무엇 하나 편하게 이루어지는 게 없을 것 같지만, 그렇다 해서 예전처럼 우울한 시기를 보내지는 않을 것 같다.
그와 만난 덕분에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 알게 되었고,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함께할 앞으로가 두렵지 않다.
하루에 하나 별을 세며 수억의 별조차 지나칠 때까지,
그 긴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변화와 고민들에 휩쓸린다 하더라도,
세상은 나를, 그리고 우리를 절대 꺾지 못할 테니까.
이미 한 번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