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레터 season 1

3. 사의 존귀

by 윤설

3시간 가까이 사람의 시체를 만져야 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하겠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무렵이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맹학교로 다녔다. 맹학교란, 분류상 특수학교에 속하며, 대개는 유, 초, 중, 고를 모두 한 건물에 품고 있다. 나는 그 안에서도 초1 때부터 고3 때까지를 전부 다닌 성골이었다.


대부분의 맹학교는 고등학교 과정에 안마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그러니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즉시 안마사 자격증을 받게 되어 있었다. 물론 아무런 지식도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자격증을 받지는 않는다.


안마도 배우고, 침도 배우고, 동양의학 이론과 인체 해부학도 배웠다. 이 중 가장 특별했던 것이 인체 해부학이었다. 정확히는 인체 해부학을 지도하는 내 모교의 방식이 독특했다.


"의과대학에 방문해서 의료실습용 시체를 만져 볼 기회가 있다. 참여할 사람 손 들어."


지역 내 의대와 교육적 협약을 맺은 내 모교는 이런 엽기적인 기회를 매년 고등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이에 누구보다도 마초적이고 싶었던 우리 남학생들은 모두 손을 들었고, 여학생들 중에서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참여 의사를 밝혔다.


나는 의료용 침대가 그렇게 딱딱하고 무기질적인 것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아마도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신을 올리기 위한 트레이로서 채택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똑같이 침대 위에 누워 있다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는 뭘까? 그 가치의 격차라는 게 있는 것일까?


"이건 간이에요."


의대생이 침대 위에 놓인 한 남성의 카데바에서 간을 꺼내 나에게 들려 주었다. 이미 해부학 모형을 만져 보면서 간의 모양을 배웠지만, 실제 사람의 간은 그것과 질감이 달랐다. 고무, 천, 가죽, 합성소재... 그 무엇과도 다른 날것의 느낌이 있었다.


"그럼 위는 뭐죠? 폐는요? 심장은? 소장이랑 대장도 볼 수 있나요?"


사람의 생간을 만진다는 생각보다 이렇게 우리 앞에 온몸을 내어준 그의 의로움을 존중하기로 했다. 단순히 신기해하며 내 경험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순간, 그 존귀한 육체는 그저 무가치한 사물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내어준 모든 것을 힘써 배울 필요가 있었다.


그의 간은 유달리 비대했다. 사인은 간경화였다. 그의 위는 내 생각보다 작았다. 원리상 음식이 들어갔다면 더 크게 늘어났겠지.


폐의 질감은 상상 이상으로 생경했다. 살짝 가라앉은 물풍선과 손가락으로 눌렀다 떼면 다시 부푸는 스펀지 사이 어딘가, 그런 애매한 탄력이 손끝에 잡혔다. 그렇게 심장도, 소장과 대장도, 방광도 만졌다. 근육과 뼈도 만졌다.


의료 실습용 장갑을 벗고 내 두 손을 맞잡아 보았다. 다시 한 번, 내 손이 기억한 감각에 존귀함을 심었다. 나는 오늘 만들어진 사물이 아닌 생을 초월한 사의 존엄을 만졌음에 감사했다.


저녁 식사 메뉴는 오징어볶음이었다. 아주 잠시, 그 탱글하고 매끈한 식감이 무언가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시체를 만지고 오면 누구나가 다 받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비위가 상하지는 않았다.


분명 내일 등교하면 각자 저녁에 뭘 먹었고, 그럼에도 전혀 역겨워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주제로 자기 자랑 대회를 열 것이다. 사에 대한 존엄은 어디로 갔냐고? 글쎄.


지금도 건강검진 결과를 보면서 생각한다. 이런 나의 몸은 나중에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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