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하나, 별을 센다

3. 세상이 그대를 꺾을지라도

by 윤설

나와 그녀가 처음 만난 건 3년 전, 지역 내에 있는 시각장애인복지관의 프로그램에서였다.

장애인복지관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의 재활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 내가 참여했던 교육의 주제는 요리였다.


복지관에서 요리 학원을 한 곳 선정하고 컨택하여 총 8회기 과정으로 시각장애인들에게 요리를 가르쳐 줄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인데, 고향도 아니고 타 지역에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자취의 삶을 살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그 프로그램을 신청했었다.


수강생들이 다들 착실해서 그런지 수업 첫날부터 강습이 시작되기 30분 전에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요리 학원 원장님도 이렇게 짬이 날 때 자기소개도 좀 하고, 서로 친해지자면서 분위기를 이끌었다.


"은하 씨는 그럼 이제 새 직장에 다니고 있는 거예요?"


모두의 소개가 끝나자, 원장님이 그녀에게 물었다.

비단 원장님뿐만 아니라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 전부가 그녀의 삶을 궁금해했다.


"제 이름은 홍은하라고 하고요. 나이는 서른입니다. 7년 전에 중도실명해서 아직도 적응해 가며 사느라 애먹고 있어요."


처음 그녀가 자기소개를 할 때부터 목소리의 활기가 남달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긴 했지만, 그 내용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젊은 나이이면서도 흔히 말하는 '알 거 다 아는 나이'에 중도실명이라는 불운을 겪은 것인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그 뒤로 어떻게 지냈는지, 직장은 있는지, 요즘은 뭐하는지... 다들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두가 돌아가며 그녀에게 질문을 쏟아붓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까 봐 궁금한 게 있어도 적당히 참기 마련인데, 모인 사람들이 다들 비슷한 처지라 그런지 실명, 그리고 그 후의 삶에 대해 묻고 다독이는 데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 만나고 30분 만에 우리는 그녀가 걸어온 지난 7년간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스물셋, 대학교 4학년 때 갑작스러운 시신경염을 원인으로 완전히 실명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교도 조기졸업하고 한참 IT계열 회사 쪽으로의 취업을 준비하던 그녀에게 그것은 재앙이라는 개념조차 아득히 초월하는 정의 불가능한 무언가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실명 후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을 어둠 속에서 살았다고 했다.

빛을 되찾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쫓고, 시도하고, 절망하고, 새로운 소식에 희망을 가지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체념하는... 그 반복되는 좌절의 순환고리를 1년 넘게 돌았던 것이다.

그토록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던 안팎의 어둠을 이제는 영원한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고 그녀가 결심한 때가 있었다고 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부모님조차도 반복되는 절망에 시들어가고 있을 때쯤, 그녀의 집안에 또 다른 흉사가 닥쳤다.

항상 그녀를 제일로 아껴주던 할아버지의 작고였다.


'이 하래비가 제일로 사랑하는 우리 은하야. 니가 나의 어여쁜 꽃이다.

언제고 세상이 또 지금 같이 너를 꺾고 뭉개려는 날이 오거든, 그저 이 하래비가 우리 은하를 붙들어주마.'


병원에 입원해 있던 할아버지의 바이탈 사인이 갑작스럽게 떨어져 입원실에서 중환자실로 급히 옮겨 가는데, 이동침대의 뒤를 종종 따라가던 그녀의 귀에 놀라울 만치 명료한 할아버지의 음성이 들렸다고 했다.


"그때, 할아버지랑 같이 처음 등산을 하러 갔던 날이 떠올랐어요.

산길은 험하지, 그날따라 바람도 장난 아니게 불지, 금방이라도 넘어지고 굴러버릴 것 같이 휘청휘청하는데 할아버지가 뒤에서 제 양쪽 겨드랑이를 받치고 편하게 설 수 있도록 해주셨거든요.

그렇게 정상을 밟았어요.

무서우니까 차라리 이대로 다시 내려가자고 할아버지를 졸라 보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도 크게 크게 쉬시는데 그 상태에서 저를 계속 받치고 계시는 거예요.

그 순간에는 할아버지 걱정이 되기보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도와주시는데 이 손녀가 정상 찍는 모습은 한 번 보여드려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할아버지는 그날 산 정상에서 제가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크게 웃으셨어요."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나서 그녀는 태어나 처음 좌우명이라는 걸 만들어 가졌다고 했다.


'꺾이지 말자! 나는 이미 누군가의 어여쁜 꽃이었고, 지금은 또다시 개화를 준비하는 겨울의 나무다!'


그렇게 제2의 삶이 태동하고 있음을 확신하며, 그녀는 다음 해 스물다섯의 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다시 사회로 나가기 위해 그녀가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시각장애 특수학교 전공과로의 입학이었다.

통상,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시각장애인들이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으면 맹학교에 설치된 전공과라는 교육과정에 입학해 이론과 실기를 배울 수 있는데, 그녀 또한 그곳에서 2년 동안의 교육을 마치고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사실 안마사가 되는 게 목표였다면 굳이 맹학교 전공과가 아니라도 안마 관련 교육을 더 중점적으로 실시하는 훈련 기관에서 배우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격증 취득 과정과 더불어 맹인으로서 살아가는 재활교육까지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원했기 때문에 구태여 타지에 있는 맹학교로 입학한 것이라고 했다.


전공과 졸업 후 그녀는 대형 백화점에 헬스키퍼 안마사로 취업해 백화점 직원들의 건강과 육체적 피로를 관리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가 설계한 인생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백화점에서 직원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안마사로 근무하던 중에도 퇴근 이후 꾸준히 시각장애인복지관에 다니며 컴퓨터 활용 교육을 전부 이수했다.

그렇게 해서 눈으로 보지 않고 음성엔진프로그램만으로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정도까지 숙달한 뒤에는 타지에 있는 직무능력개발원에 입소해 정보기술활용 분야로 취업할 수 있는 직업 교육을 받았다.


당시 그녀의 목표는 직무능력개발원에서 제공하는 취업 패키지를 통해 대형 기업의 웹사이트 관리 부서로 취업하는 것이었다.

시각장애인이 그와 같은 계열로 특정 기업에 입사하면 그들은 시각장애인 고객들이 그 회사가 관리하는 웹사이트를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기술 자문위원으로서의 일을 하게 된다.


나름 선천성 시각장애인으로서 이런저런 교육을 받아가며 자립도 높은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물론 컴퓨터 프로그래밍 쪽에 내가 문외한이기 때문에 느끼는 괴리감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실명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그녀가 그런 전문적인 분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직무능력개발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취업 가능한 회사를 탐색하고 있을 때였다.

드디어 그녀의 구미에 맞는 회사와 취업 연계가 가능해졌고 첫 출근일이 결정되었다.


그녀가 요리 학원에서 우리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이미 새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고도 두 주 가까이 지나던 어느 날이었다.

그래서 우리들 중에서도 새 직장에 대한 그녀의 '감상? 소감?' 대략 그런 것들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은 좀 할만해요? 어려운 건 없고?"


지금 새로운 직장에 다니고 있느냐는 학원 원장님의 질문에 그녀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는지, 바로 뒤를 이어 내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여성 한 분이 물었다.

이 여성 분은 저시력이라 어느 정도는 눈을 쓸 수 있다고 했으니 그녀의 끄덕임을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실명하기 전부터 제가 공부하던 분야이기도 하고, 나름 재미있어요."


쾌활하게 답하는 그녀를 향해 우리가 보낼 수 있었던 건 격려나 위로 같은 무거운 에너지가 아니었다.

놀라움과 기대감, 그 두 가지가 전부였다.


내가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의지력이 강하다거나, 자기 삶을 열어 나가는 모습이 아름다워서라거나 하는, 그런 추상적인 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총 8회기에 달하는 요리 강습 기간 동안 내가 매번 그녀를 만나면서 느꼈던 건 '아, 이 사람 정말 세련됐구나' 하는 감상이었다.

시각장애인과 대화할 때랑 비시각장애인(다른 말로 정안인이라고도 한다)과 대화할 때 각각 느낄 수 있는 흥미로움이 그녀에게서는 공존하고 있었다.


"혹시 초읽기라는 영화 봤어요? 저번 주에 개봉한 건데 저는 극장에 가서 화면해설로 봤거든요.

마지막에 주인공이 폭탄 다 해체하고 담배 피우면서 딱 걸어 나오는 장면이 있단 말이에요.

화면해설에서는 그걸 '주인공이 우수에 찬 눈빛을 던지며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이렇게 말하는데, 전 그게 어떤 이미지인지 딱 알겠더라고요.

주인공 성격이 원래 좀 냉소적인 편으로 나오는데, 자기가 유일하게 정을 주던 아이들을 아슬아슬하게 구해내고, 그 아이들이 다시 보호 시설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마음이 어땠겠어요.

윤지석 배우가 또 그런 눈빛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하거든요.

차륜전이라는 전작에서도 성을 지키는 장수 역 맡았을 때 분위기가 진짜 장난 없었는데..."


뭐, 이런 식이다.

가만히 듣다 보면 내가 지금 나랑 같은 맹인이랑 이야기를 나누는지, 아니면 정안인이 하는 말을 듣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또 그녀가 하는 모든 말들과 감정이 고스란히 이해가 되고, 나도 그녀의 세계에 자동적으로 몰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듯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뭐랄까, 시각장애인들끼리 공감할 수 있는 범위로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랑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정안인과 같은 세상을 지각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물론 이런 스타일의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색다른 자극이었으며, 뭔지 모를 벅찬 열기가 전신을 기분 좋게 떠도는 경험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그녀와의 다음 만남을 고대하는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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