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하나, 별을 센다

2. 화려하지 않은 연인 2

by 윤설

"자리 있나요?"

조금 이른 저녁 시간이라 식당 문을 열고 안에 한 발짝만 들어가도 한산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안 보인다고 해서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턱이 없다. 그래도 나는 묻는다. 왜냐하면 이 질문이 먼저 나가야 그다음 대화가 원활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 편하신 곳에 앉으시면 되는데..."


"그럼 화장실이랑 가장 가까운 자리를 이용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이제 슬슬 점원의 말투에 힘이 붙기 시작한다. 이 손님들이 자신들의 원하는 바를 확실히 요구할 수 있다는 느낌을 약간 받았을 것이다. 그 뒤로는 그 요구에 맞추기만 하면 되니 고민이 절반은 덜어진다.


"이 친구가 사장님 팔을 잡을 수 있게 해 주시면 돼요. 저는 이 친구를 잡고 따라가면 되니까요."


실제로 이 점원분이 사장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듣기 좋게 불러 본다. 이에 점원분이 수줍게 웃으며 그녀를 인도했다.


"이 식당은 음식을 태블릿으로 주문하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저희는 그냥 주문할 메뉴를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그럼 어떤 메뉴가 있는지 먼저 안내 좀 부탁드릴게요."


이곳이 메뉴 주문을 태블릿으로 받는다는 것은 인터넷 블로그 후기를 보고 알았다. 음식 메뉴도 같은 방법으로 알 수 있기는 한데, 이 식당만큼은 메뉴판이 인터넷에 이미지로만 업로드되어 있어 차마 파악하지 못했다.

물론 이미지로 올라온 메뉴판을 확인하는 방법도 따로 있긴 하지만, 굳이 그 방법을 쓰지는 않았다. 정확도가 미묘하게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메뉴 안내를 다 듣고 주문을 하니 얼마 안 있어 테이블 위로 불이 들어오고, 곧 그 불 위에 음식이 올려졌다.

점원분이 틈틈이 오가며 낙곱새를 젓고 끓이고를 반복하니 금방 보글보글하는 소리와 함께 침 고이는 냄새가 올라왔다.


"덜어 드릴까요?"


"네. 접시에는 면 위주로 덜어주시고, 밥에는 그냥 이것저것 덜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테이블 위에 불 들어온 김에 계속 잔열을 가하면서 따끈한 낙곱새를 한 젓가락씩 집어먹는 것도 좋지만, 나와 그녀는 처음부터 대부분을 덜어낸 다음 접시와 밥그릇에 담긴 이 맛돌이들을 번갈아 흡입하는 것을 좋아한다.


"감사합니다!"


어디 교회 성가대에서 연습이라도 하나? 그녀의 인사가 낭랑하기 짝이 없어 온 식당을 울린다. 이럴 때 보면 한 번씩 같이 있는 내가 무안하다. 뭐,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나와 그녀의 인사에 점원분이 푸근하게 웃으며 자리를 뜬다.


"어! 좀 많이 따른 듯."


언제나 그녀와 내가 만나는 곳, 12시 방향으로 손을 뻗자 묵직한 잔이 손에 걸린다. 이건 위험하다.

작디작은 소주잔 전체가 내 손의 움직임을 따라 찰랑인다. 무게를 보아 잔 끝까지 채운 것인데, 다 넘기면 내가 죽을 판이다.


"짠!!"


내가 잔을 건네받았던 12시 방향으로 다시 두 손이 집결한다.

한 번의 부딪침 뒤에 잔 바로 아래에 있던 불판에서 치지직 소리가 나는 것을 보아 불판에 술을 제법 흘렸을 것이다.


"그러게 철철 넘치게 따르지 말라니까."


내가 반 진심, 반 농담으로 툴툴거려도 그녀는 그저 생글거린다.


"사랑하는 만! 큼!!"


언제 적 멘트인지 모르겠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에도 슬슬 유행이 지나고 있던 대사로 기억하는데...


"사랑하는 만큼? 그럼 거기 밥그릇 좀 줘봐. 아예 대접으로 부어 줄게."


"아아앗!!"


이쯤 되면 보지 않아도 그녀의 얼굴색을 알 수 있다. 극도의 부끄러움, 무안함, 오글거림...

빨간색보다 더 빨갛겠지.


"아저씨 같아. 완전 아저씨 그 자체 같아."


그렇게 그녀는 완전한 아저씨 그 자체와 함께 긴 시간 잔을 나누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는 지하철이 없다. 대신이라고 할 일인지 몰라도 장애인콜택시가 다른 지역들에 비해 상당히 발달해 있는 편이다.

장애인 승객들에게는 적은 요금을 받고, 나머지 운임은 지자체의 예산과 복권 기금 등으로 지원을 받는 이 시스템은 사실상 전국 대부분의 시도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콜택시로 등록해 운행할 수 있는 차량의 수가 지역마다 정해져 있고, 그 수요는 각 시도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 인구에 따라 다르다. 그러니 공급이 수요를 거의 근접하게 따라잡지 못하는 한 콜택시 이용의 질적인 측면은 시도마다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안에서 보나 밖에서 보나 전국 최고의 수준을 달리는 우리 지역 장애인콜택시, 줄여서 장콜의 질을 보자.

아까만 하더라도 차량 이동이 많아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저녁 시간에 카페에서 식당까지 우리를 이동시킬 차량을 10분 안에 잡았다.

장콜 전용 앱을 켜서 출발지와 목적지를 세팅하고 콜 접수를 누른 뒤 10분, 주말 저녁 시간이 이 정도면 차량 운행이 한산할 무렵에는 이보다 더 빨리 장콜을 잡을 수 있다.

이렇게 차를 잡는 것을 배차받는다고 하는데, 배차 시간도 빠른 편이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아주 높은 배차 확률이다.


배차를 빨리 받거나 늦게 받는 걸 떠나서 애당초 아무리 긴 시간을 기다려도 아예 배차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의 배차율에 거의 길들여지다시피 했던 내가 타 지역에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배차를 아예 못 받는 경우가 많아? 어쩌다 한 번씩 아닌가?"


친구는 말했다.


"여기 장콜 별명이 로또다. 배차가 안 되는 게 이상한 게 아니고 오히려 배차가 되면 신기하다. 배차가 아니라 당첨이야 당첨."


내가 이렇게 우리 지역 장콜의 위대함을 역설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차 잡혔어?"


"아까 잡혔지."


"기사님 전화는 받았어?"


"너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받았지."


"힝~~."


현관 앞에 서서 바람막이를 걸치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낙곱새 떠다 놓고 소주 나눠 마시던 건 아까의 일이고, 지금 여기는 그녀의 집이다.

물론 식당에서 이곳까지도 장콜을 타고 왔다. 거기다 이왕 하는 데이트다. 카페 갔다가 저녁 한 끼 해결하고 끝낼 리가 없지 않겠나?

식당에서 나와서 2차로 먹태구이에 맥주 한 잔 달리고, 근처 코인 노래방까지 30분 즐기다 들어온 거다.


코인 노래방이야 그녀의 집 근처에 있는 곳이고 길도 확실하게 알고 있어서 도보로 이동했지만, 식당에서 2차, 2차에서 그녀의 집까지는 계속 장콜을 호출해 타고 다녔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귀가하기 위해 콜을 접수하고 배차받은 상태이다.


이래서 장애인들이 이동권, 이동권 얘기하는 것이다. 이동은 말 그대로 권리이며, 이 권리를 오롯이 누릴 때 삶의 질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내 여자친구를 집에 안전하게 바래다주고 나도 무사히 귀가할 수 있는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 이 당연한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결국은 이동 수단이다.


"지금 나가면 우리 엄마, 아빠랑 딱 마주치겠다."


마침 부부 동반 모임에 나갔던 그녀의 부모님이 귀가 중이시라고 한다.


"그럼 오랜만에 인사드리고 좋지 뭐."


"그러게. 같이 나가자."


집에 들어와서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카디건을 다시 걸치고 그녀가 내 옆에 섰다.

이윽고 내가 살며시 그 어깨 위에 팔을 두르자, 깃털처럼 사뿐히 돌며 그녀가 안겨 온다.

마치 기대듯이 모든 힘을 풀고 나에게 오롯하게 안기는 그녀의 습관, 그 무게가 항상 내 마음을 벅차게 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사랑이다.


잠시 체온을 나누다가 내 어깨와 가슴팍을 향해 쏟아져 있던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준다. 그렇게 드러난 고운 뺨을 잠시 쓸어 만지다 엄지 손가락을 내려 가볍게 그녀의 턱을 받친다.

그 뒤로 짧은 입맞춤이 있고 나서야 우리 둘은 현관문을 나섰다.

부모님이 귀가 중이시라는데 괜히 밖에서 이러고 있다가 발각되면 몹시 곤란할 수 있다.


예상과는 달리 내가 차에 올라 출발할 때까지 그녀의 부모님과 만나는 일은 없었다.


'엄마랑 아빠가 아까 우리가 차 앞에서 헤어지는 거 보신 듯.'


한참 차를 타고 가며 그녀와 문자를 주고받는데, 그녀로부터 이런 내용의 메시지가 왔다.


'알았다면 인사드렸을 텐데.'


'조금 떨어져서 멀리서 보신 건데 우리가 어떻게 알아.'


이 짧은 메시지가 나와 그녀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추측하게 한다.

그냥 좋은 분위기 깨기 미안해서 일부러 멀리서 보기만 하셨을까?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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