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과 히구치 이치요
우리나라보다 더 폐쇄적이고 여자의 인권을 무시했던 일본의 5천 엔 권 지폐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여자를 모델로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이름도 생소했던 히구치 이치요다. 왜 여자냐는 물음에 관계자는 여성 최초의 소설가로서 자신의 분야를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한 공과 지금 이 시대에 여성들의 본보기가 되리라 생각해서라고 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으나 2005년 즈음이었던 거 같다. 일본이 변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5천 엔 지폐 덕분에 일본에서 히구치 이치요는 부활했고 다시 주목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영재로 자랐으나 부친이 사업 실패로 빚만 남기고 사망하자 히구치는 17세에 가장이 되어 돈을 벌어야 했다. 글재주가 있었던 덕에 소설을 써서 가족을 부양했다고 한다. 24세에 폐결핵으로 죽을 때까지 고작 14개월 동안 남긴 작품이 소설 22편, 와카(和歌) 4 천수에 일기와 에세이까지 있다. 자신이 지독하게 가난했던 탓에 하층 사회에서 필사적으로 사는 여성의 모습을 서정적이면서 리얼하게 그렸다. 남자들과는 다른 섬세한 필체와 스토리로 일본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난 때문에 돈을 위해서만 살았던 자신이 지폐의 얼굴이 되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할까 싶다.
히구치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의 최초 여성 소설가는 누군지 궁금해졌다. 공교롭게도 히구치가 죽은 해인 1896년에 태어난 김명순이라는 분이다. 그래도 나름 한국 근대 소설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처음 듣는 이름이라 놀랐다. 마찬가지로 같은 해에 태어나 친구 혹은 동지로 활동한 나혜석이나 김일엽(이 一葉이라는 이름이 히구치 이치요의 이치요를 보고 이광수가 지어 주었다고 한다)은 많이 들어 봤지만 정작 최초의 수식어가 붙은 이름인 김명순은 정말 처음이다. 인터넷을 한참 뒤지니 2018년도에 뉴스 룸에서 손석희 앵커가 소개한 적이 있고 김별아 소설가가 그녀를 모델로 한 소설 「탄실」 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기생 출신의 첩이 친모라 더러운 피라는 꼬리표를 달고 평생을 살았다. 데이트 폭력을 당했으나 무시당하고 그녀의 재능을 시샘한 남자들에게 인생 자체를 거부, 거세당했다. 인터넷상에 나와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남자들은 첩을 몇이나 두고 자유연애를 해도 영웅호색이란 단어로 정리해 버리지만 여자들에게는 순결과 한 남자만을 사랑해야 한다고 강요한 시대가 불과 몇 년 전이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명순은 더러운 여자라는 꼬리표를 떼려고 수많은 노력을 했다. 소설 21편과 시 107편, 희곡 3편, 수필과 평론 18편을 남겼다. 1951년에 일본의 정신병원에서 외로이 죽었다고 한다. 많은 남자들과 연애를 했지만 결국 헤어지면서 들었던 말들은 방종한 여자라는 단어였다. 히구치는 가난과 싸우면서 먹고살기 위해서 짧은 시간에 과로로 죽을 만큼 글을 썼고, 김명순은 자신의 출생의 벽을 넘으려고 모든 분야에 도전하며 글을 썼다. 어느 삶이 더 고통스러웠을까? 를 생각하게 된다.
둘 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불멸의 명예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녀들의 삶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질고 아프다. 시대적 아픔, 운명의 장난, 격동의 회오리 속을 글의 힘으로 버티어 내려고 했던 그녀들에게 늦었지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싸고 쉬운 한 방울 눈물이 아닌 계속 노력하는 진심으로 그녀들을 세상에 소개하는 후배이자 동지가 되고 싶다. 우선 서점으로 달려가 그녀들의 책을 사고 김별아의 탄실을 사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