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 장편소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소설가인 김명순의 일대기를 작가의 역량으로 이해하기 좋게 버무려 놓았다. 몇 달 전 김명순의 존재를 알고 바로 책을 샀지만 바로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1/3을 읽고 덮어 놓았다가 다시 끝까지 읽고 또 며칠이 지났다. 읽기도 힘들고 다시 생각하여 정리하기도 벅차다. 참 여자로서 힘든 인생을 살았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그 고매한 정신을 놓아버렸으면 몸이나마 편한 생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문학으로의 열정과 더 배우려는 의지가 남자들보다 더 컸기에, 남자의 세상에서 남자에게 기생하지 않고는 살아 내기가 어려웠던 거 아닐까 하고..
기생 출신의 후처인 어머니를 부정하려고 열심히 공부한다. 또 불행하게도 공부를 시작할 때는 아버지가 건재하였다. 공부의 맛을 깨달았을 때, 퇴보할 수 없을 때 부모가 모두 죽었다. 그 혼란한 시절에 여자가 혼자 경제력도 없이 일본 유학을 감행한다. 19살 때 일본에서 숙부가 신랑감으로 점찍은 남자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한다. 출세 지향적인 남자는 근본 없는 고아 따위와 결혼할 마음은 애당초 없었고, 수치심에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 조차도 성공하지 못한다. 그 뒤로도 남자들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도 자신의 처지를 깨달아 비혼을 결심한다.
그녀의 인생을 정리하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학문을 하려 노력하지만, 글을 쓰고, 놀림거리가 되고, 지독한 가난을 견디며 살았다’이다. 살다 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일들이 종종 있다. 뭔가 씌었던 거 같이 잘못 판단하여 선택을 잘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왜 이렇게까지 싶을 정도로 잘못된 판단이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너무 일찍 혼자가 되어 친구도 스승도 연인도 없이 스스로 판단을 해서 그런가 안타깝다.
명예심이 많은 탄실은 어릴 때부터 생각하기를, 누구든지 퍽 빈곤한 집에서 태어났을지라도 공부만 잘하고, 점잖기만 하면 좋을 줄 알았다. 이 아이는 무엇인지 점잖지 못한 것을 몹시 꺼렸다. 그는 동무들끼리 놀다가도 누가 무슨 일이 잘못 청하게 할 것 같으면 낯빛을 붉혔다가 아주 예사로운 빛을 보이려 하면서도 여의치 못한 듯이 몹시 괴로워했다. 그런 성질은 그가 자라감에 따라서 일층 더 선명하여 갔다. 그는 절대로 비열한 행동에 대해서는 용서성을 갖지 못하였었다.
소설 탄실이와 주영이 중에서
그녀 스스로가 자신을 쓴 글에서 보듯 어릴 적 부유함을 지키지 못하면 그것이 오히려 사는데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 삶을 살아 보여준다. 돈이란 것이 없이 어떻게 인간이 격조와 품위를 지킬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불행의 원인은 차고 넘친다.
나는 남만 못한 처지에서 나서 기생의 딸이니 첩년의 딸이니 하고 많은 업심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생장하는 나라는 약하고 무식하므로 역사적으로 남에게 이겨본 때가 별로 없었고, 늘 강한 나라의 업심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이 경우에서 벗어나야 하겠다, 벗어나야 하겠다. 남의 나라 처녀가 다섯 자를 배우고 노는 동안에 나는 놀지 않고 열두 자를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이 겉으로 명예를 찾을 때 나는 속으로 실력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되겠다. 지금의 한 마디 욕, 한 치의 미움이 장차 내 영광이 되도록 나는 내 모든 정력으로 배우고 생각해서 무엇보다도 듣기 싫은 ‘첩’이란 이름을 듣지 않을, 정숙한 여자가 되어야 하겠다. 그러려면 나는 다른 집 처녀가 가지고 있는 정숙한 부인의 딸이란 팔자가 아니니 그 대신 공부만을 잘해서 그 결점을 감추지 않으면 안 되겠다.
탄실이와 주영이 중에서
지금이야 겨우 여자가 공부해서 여자의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지만 그 시대가 언제인가? 1920년에서 1930년대가 아닌가... 한일 합방에 보통 여자들은 공부는커녕 나가 돌아다니기도 어려운 시절에 혼자 더러운 소문과 싸우며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글을 쓰고 공부한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고개가 절로 흔들어진다. 일본에 있으면 너무 힘들고 외로워져, 탄압했던 사람들을 잊으며 다시 조국이 그리워져 돌아오고, 돌아와 보면 또 같은 반복의 연속인 괴롭힘과 가난의 연속에 다시 유학을 떠나고.. 그렇게 그녀는 3번 일본으로 다시 떠난다. 4번째 일본으로 떠나서는 거기서 죽었다. 같은 민족보다 차라리 남의 땅이 더 마음이 편해서였을까?
세상이여 내가 당신을 떠날 때
개천가에 누웠거나 들에 누웠거나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하시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있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하시오.
그러면 나는 세상에 다신 안 오리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작별합시다.
그녀가 쓴 시에서 그녀의 조국에 대한 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고, 아무도 편이 되어 주지 않는 삶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소문에 같이 쑥덕거리는 것은 쉽다. 사실을 확인하기보다 이러쿵저러쿵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단 말인가. 알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그녀의 재능을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왜 그녀만은 이렇게 아무도 없었단 말인가! 오죽했으면 죽은 시체를 더 학대하라고 써야 했을까... 요즘 내 삶도 녹녹지 않은데 이 정도로 죽는소리를 해서는 안 될 말이다. 난 너무도 많은 것을 가졌다. 도쿄의 진저리 치게 스산한 외로움을 알기에 거기서 죽어간 그녀가 더욱 슬프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