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 현 Aug 30. 2020

통영이 부르고 있다.

통영 예찬 1 

  

코로나 덕분에 처음으로 8일간의 휴가가 시작되는 날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라 처음으로 학원이 문을 닫았다. 내 학원을 하고 있었다면 아마 이런 휴가는 없었을 것이다. 휴가라고 해도 설렐 수가 없다. 일은 안 한다는 것은 시간당 받는 강사의 입장에서 무급휴가이니 그렇다. 통영의 친구는 자꾸 오라고 성화다. 고맙고 기쁘지만 이제 체력의 한계를 마냥 무시할 수가 없으니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떠날 수가 없다. 여름이 시작될 때부터 통영과 제주도를 계속 검색해 왔다. 나에게 여행이란 먹거리와 바다다. 고기보다 해산물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 바다가 주는 해방감이 바라볼 수 있는 물 중에서는 최고라서 이다.    


통영은 아버지란 사람의 고향이다. 주민등록에 찍힌 본적이 통영이다. 예전엔 충무였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꼭 통영이 기억에 있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비진도란 섬에 여름이면 놀러 갔다. 그 배를 탈 때 부두에서 다라이(대야지만 대야로는 맛이 안 난다)를 짊어지고 김밥을 팔던 할머니들이 계셨다. 그게 충무김밥의 진짜 원조다. 새벽에 짠 바다 내음과 함께 먹던, 금세 말은 김밥의 뜨끈한 맛을 잊지 못한다. 비진도에는 민박만 있던 시절이다. 몇 걸음만 나가면 바다이고 어른들은 낚시를 나가고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수영을 했다. 오빠는 그때도 만화책이나 무협지를 들고 가서 읽고 있었던 거 같다. 아침이면 민박집 아저씨가 멍게를 한 다라이 갖고 오셔서 그걸 까 주셨다. 그때 먹은 멍게의 맛은 평생 어디에도 없었다.     


돌아가신 막내 이모부가 충무지청에 검사로 몇 년 있었던 적도 있다. 국민학교 때는 해마다 거의 충무에 갔던 거 같다. 항남동 사택에서 사촌동생들과 놀았던 기억도 많다. 넘쳐나는 해산물, 싱싱한 생선들과 맑고 맑은 바다가 있는 곳이다. 세상의 수많은 바다를 보았지만 나에게 바다란 충무 앞바다, 비진도를 둘러싼 바다가 제일 그립고 아름답다. 한 번 정을 주면 영원히 그 정을 뗄 줄을 모른다. 내가 준 정에는 의미가 있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정을 정리하지 못한다. 사람에게나 장소에게나 물건에게나.. 그 최고의 장소가 나에게는 충무, 통영이다.     


다찌라는 술집도 통영을 그리워하게 되는 이유다. 다찌는 일어로 뭘까? 어원을 보면 友達(도모다찌)의 다찌아니면, 立ち食い(다찌구이)의 다찌 둘 중에 하나일 거 같다. 도모다찌의 다찌는 복수를 나타내는 이고, 다찌구이의 다찌는 서서 먹는다는 뜻이다. 찾아보면 후자에서 온 말이라는 설이 많다. 여하튼 술꾼에게는 최고다. 요즘은 사람 수대로 뷔페처럼 일정 금액을 받고 기본상으로 내 주지만 예전에는 정말 맥주 한 병에 새 안주 하나, 소주 한 병에 새 안주 하나 이런 식으로 나왔다. 통영의 산해진미가 끝도 없이 나왔다. 술 잘 먹는 사람과 꼭 같이 가야 다음에 나올 안주가 뭔지를 알게 되었다. 안주도 지금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날그날의 신선한 재료를 다양한 조리법으로 해 주어 술이 술술 넘어간다. 가히 최고의 술집이다.    


통영의 친구는 작가교육원에서 만났다.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린 연극 감독 출신의 남자다. 연극으로 큰 상도 받아 네이버 검색에도 나오는 훌륭한 예술인이다. 서울에 살았지만 연극으로 망해, 고향으로 돌아가 조리사를 하며 시나리오 작가를 하려고 하고 있다. 통영에서 후배 두 명과 개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다. 몇 달 전에 진주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통영도 들러서 그가 사는 곳을 보고 왔었다. 사실 그란 인간보다 엘리자벳이란 믹스견과 갓 새끼를 4마리를 낳았던 미모의 고양이 은총이가 더 보고 싶다. 은총이의 새끼 4마리 중 3마리는 입양을 갔고 한 마리만 남았다. 눈도 못 뜨고 꼬물거리던 새끼들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아도 시간이 잘 갔다. 세상 시름을 잊게 해 주었다.    


통영에 대한 추억과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분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고향이다. 늘 그립고 늘 가고 싶은 곳이다. 고속도로가 잘 뚫려 이제는 가기 쉬운 곳이 되어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다. 쉽게 갈 수 있으니 그만큼 유혹이 강해져서다. 운전을 하던 고속버스를 타던 4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에 통영 친구 집 근처의 깨끗한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한 것도 실수다. 더 몸이 근질거리게 되었다. 아침, 저녁 게스트 하우스 홈페이지를 들락거린다. 가자, 말자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는 요즘이다. 지난번에 다찌를 못 갔으니 이번에 가야 할 거 같다. 이도 뺏으니 영양 보충을 해 주어야 이 코로나와 갱년기를 넘을 수 있을 거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