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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 현 Jun 22. 2020

내 인생 최고의 가치는?

   

 작년에 D부고 이과의 2학년 김 우재라는 학생의 일본어 내신 수업을 했다. 우재는 외동인데도 할머니가 키워서인지 재잘재잘 말이 많은 아이였다. 키는 180센티도 훨씬 넘고 몸무게도 만만치 않아 보여 그야말로 덩치가 산만 했다. 공부를 잘해서 이과 전교 2,3등은 한다고 했고 의대를 지망하고 있었다. 우재는 이과라서인지 외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계속 질문하고 납득할 때까지 귀찮게 했다. 일어단어가 안 외워지면 자신의 온갖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 할머니, 일하는 할머니, 학교 선생님, 다니는 학원, 친구들... 2000년생의 우재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늘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한 번은 자신의 수학학원 이야기를 했다. 들어갈 때부터 시험을 보고 반 편성이 따로 되어있단다. 자신은 물론 제일 우수한 반인데 늘 시험을 보아 언제든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고 했다. 요즘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영어는 이미 초등학교 때 끝나 있다. 영어 유치원을 나오거나 영어권 나라에서 몇 년은 반드시 살고 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어와 수학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치동은 영어 학원보다는 수학과 국어 학원의 위세가 더 높은 거 같다. 문제의 숙명여고 쌍둥이도 우재와 같은 수학학원이라고 했다. 쌍둥이들은 5등급반이라고 했다. 절대로 숙명여고 같은 곳에서 전교 1등을 할 실력이 아니라고 했다. 수학은 갑자기 실력이 상승할 수 있는 과목이 아니라고 분개했다. 수학학원도 조사당했고 서류도 압수해 갔다고 했다.     


 얼마 전에 쌍둥이 아빠의 1심 판결이 있었다. 우재의 수학학원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쌍둥이들도 끝까지 자신들의 실력으로 성적을 올렸다고 증언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있다. 인생에서 단 한 명의 올바른 스승만 만나도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선생님들이 다 스승이 되진 못한다. 공교육이 무너진 지는 오래 되었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출석일수 채우고 내신 점수 받으려고 다니는 곳이 되었다. 주로 모자란 잠을 보충하는 곳이라고 한다. 오로지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 아래 학원과 집을 시계추처럼 오가면서 성적의 숫자에 노예가 되어 버린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지? 왜 좋은 대학을 가야 하는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부를 세습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자식에게 자신이 걸어 온 길을 똑같이 가게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지난주부터 일본어 내신을 시작한 H고 1학년의 세훈은 대치동 노른자위 땅의 건물이 자기네 거라고 했다. 물론 내가 물어서 대답한 거지만 표정은 잠시 자랑스러웠다. “우왕, 그럼 넌 공부 열심히 안 해도 되겠다! 다들 돈 많이 벌려고 공부하는데 넌 유산 받으면 되잖아!” 라고 하자 세훈은 “동생에게 뺏길 수도 있어요. 제가 빌빌거리면...”라고 한다. 순간 멍해진다. 세훈은 신문방송을 전공하고 방송국 PD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음악 프로를 만드는 PD가 되고 싶다고 했다. 무슨 가수의 음악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정확히 말했는데 외국 가수라 적어 놓지 못해서 누군지 모르겠다. 이번 주에 만나면 다시 물어 봐야겠다. 제발 꿈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란다. 건물을 놓고 동생과 유산 싸움하지 않는 훌륭한 형이 되길 진심으로 염원한다.    


 사랑이라는 명분 아래 얼마나 많은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시간을 조종하고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성 자체를 개조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사랑일 것이다. 자신이 아는 만큼의 최선을 자신의 자식들에게 제시하고 답습하게 하는 것도 사랑일 것이다. 그럼 또 그 자식들은 사랑하는 부모를 극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을 감당해야 할까? 어쩌면 자신의 인간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핍박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양심이 찾아지면 다행이나 길이 보이지 않으면 고통을 잊으려고 쾌락으로 빠지기 쉽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왜, 어째서, 무엇을 위해서 난 지금의 행동을 하는지 찬찬히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가만히 조용히 내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보면 궁극에 닿는 한 지점에 인간성의 결정체인 양심이 있다. 좋은 마음, 착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고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고 서로가 사이좋게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진리이다. 정녕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쌍둥이 아빠는 좋은 변호사를 써서 2심, 3심에서 더 형량이 감소될지도 모른다. 형량의 시간과 관계없이 그는 이미 스스로 양심을 버리면서 자신의 자유를 포기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쌍둥이 딸들의 자유도 앗아갔다. 참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난 인생의 목표가 오로지 ‘진정한 자유’인데 그를 만나 인생의 목표를 물어 보고 싶다.      


 그 자유에 도달하려면 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다. 일단 내 진짜 마음을 봐야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악한 것이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질투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욕망한다. 타인의 결점을 찾아 나보다 아래라고 비하하고 싶어 한다. 남 욕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게 내가 덜 아파서이다. 어쩌면 욕을 하고 싶어질 때는 그 대상이 자신의 가장 보기 싫은 모습을 보일 때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마음 속 깊숙이 있는 양심만이 그런 추악한 마음을 정화해 줄 수 있다. 고요한 마음의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들을 귀하게 여기며 또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알고 보면 인간 다 거기서 거기다. 무언가의 결핍을 견디며 스스로의 인정욕구와 끝없이 갈등하고 있는 불쌍한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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