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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 현 May 04. 2022

드디어 임플란트

     

원래는 진찰을 받고 바로 그다음 주에 수술이 잡혀 있었다. 갑작스러운 통영행과 여수행으로 미루었다. 한, 두 주 정도면 수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병원은 예약으로 꽉 차서 한 달 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속으로 막연하게 정말로 내가 임플란트를 하고 싶은 건지 싶을 정도로 안심이 되었다. ‘막연하게’라는 부사를 맞게 쓰고 있는 걸까? 내 몸의 일인데 왜 막연할까? 내 의지대로 내 몸을 간수하고 지켜나가야 하는 데 말이다. 두려움이 무의식에 깔려 있는 거 같다. 실제 내 뼈가 아닌 것을 삽입하고 내 피와 살과 그 인공 뼈가 어우러지고 그 위에 가짜 치아를 박는다. 도대체 얼마나 더 먹겠다고 이 난리를 해야 하는 걸까?

     

어릴 때부터 심플한 것과 자연스러운 것을 제일로 생각해 왔다. 내가 가진 것을 최대로 지켜나가는 것만이 최선인데 왜 내 잇몸을 이 지경이 되었을까? 어쩜 고기를 먹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원래 비위가 약해 고기를 잘 먹지 못한다. 돼지나 닭은 전혀 먹지 않고 소도 가끔 1년에 서 너번 먹을까 말 까다. 살해되고 분해되어 내가 먹고 있는 것이 끔찍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어느 집에서인가 셋방살이를 할 때였던가 키우던 닭을 잡던 광경이 잊히지 않는다. 생닭을 일단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고 털을 뽑은 다음에 토막을 쳤다. 그러나 솥에 넣은 닭 중 한 마리가 뛰쳐나와 마당을 뛰어다녔다. 뜨거운 물에 반쯤 털이 뽑혀 아프다며 꽥꽥 울어대며 뛰어다니던 모습이 아직도 선 하다. 식욕은 왕성한 나지만 아픔 또한 공감이 되니 고기를 못 먹는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죄악이고 삶 자체가 다른 존재를 살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지구를 위해서 하는 일이란 없다. 더럽히고 훼손하고 파괴한다. 그럼에도 난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 걸까? 무엇을 위하여? 더 잘 먹고 무슨 좋은 일을 얼마나 한다고? 내 존재가 이 세상에 필요하긴 한 걸까? 항상 부양가족을 들먹이지만 사실은 내가 그들 덕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일본 유학 시절 혼자의 시간이 처절하게 힘들고 아팠다. 가족이란 존재가 얼마나 힘이 되고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 뼈저리게 자각했다. 그래서 그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난 건강해야 한다. 고로 임플란트도 꼭 해야 한다.  

    

수요일 낮 2시 반. 수술 시간이다. 하루 전에 친구가 물회를 사 준다. 가족과 친구,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원래 내 정보를 아낀다. 그 이유는 그들이 지겨워해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워서인 거 같다. 운전 후 도착해 임플란트 공장 같은 병원으로 들어간다. 떨린다. 무섭다. 그래도 수술인데 누군가와 같이 공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2층에서 접수를 하자 또 바로 엑스레이를 찍는다. 11층으로 가라고 하고. 시장처럼 복잡한 2층을 빠져나오면 엘리베이터에서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7층 정도만 되어도 걸어서 올라갈 텐데 11층은 못 걷겠다 싶다.

     

7층에 도착하자 접수=수납부터 하라고 하고 동의서에 사인을 하라고 한다. 어떠한 동의든 동의를 구한다는 것은 수술이 내 생각보다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거다. 겁이 나서 자세히 읽어 보지 않았다. 읽어 본다 한들 엎질러진 물이다. 사인을 하자 바로 수술이란다. 마취를 한다. 3번 정도 바늘로 잇몸을 여기저기 찌른다. 진찰실과 똑같은 의자에 앉아 눕히고 얼굴에 입을 중심으로 원을 그린다. 더는 얼굴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고 무섭게 말한다. 초록 천을 얼굴 전체에 덮고 좁은 방 안을 간호사가 4명 정도 바쁘게 움직인다. 난 손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고민하며 잡았다가 허리 옆에 붙였다가를 반복한다.   

   

의사가 들어와서 옆에 앉으며 어린아이에게 말하듯 달랜다. 아프지 않을 거예요. 금방 끝나요. 마취가 되었는지 확인! 이라며 뭔가로 수술 부위를 건드린 거 같다. 감각이 당연히 없음에 안도한다. 그 후론 갑작스러운 굉음! 굉음이란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땅을 파는 듯한 덜덜 거리는 소리와 윙윙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들... 옆에서 간호원이 숫자를 센다. 왜? 기계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세는 걸까? 아무런 지식이 없다는 것은 다행인지 불행인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조금 더 굉음이 울리고 뭔가를 박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여러 감정들이 동시에 든다. 주로 공포심이 컸다. 이물질을 내 몸 안에 넣는 행위가 이렇게 고통일 줄은 몰랐다.

    

15분쯤 지나 초록 천을 벗기며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한다. 왜 가라는지 몰랐지만 가라니 갔다. 거울을 보니 입 주위에 빨간 원이 원숭이처럼 그어져 있다. 이걸 지우라고 가라고 한 모양이다. 물로 지우고 돌아오니 여러 주의 사항이 적힌 종이를 준다. 수술 부위에는 솜을 끼우고 있는데 열이 날 수도 있고 부을 수도 있으니 얼음찜질을 계속하라고 한다. 식사를 하고 약을 먹어야 하는데 못 씹으니 유동식 음료도 준다. 약을 타서 귀가하고 3개월 뒤에 예약 날짜를 잡고 다시 오라고 한다. 끝이다. 총 걸린 시간은 20분 남짓! 빨리 끝나서 좋았지만 어디다 하소연할 데가 없어 외로웠다. 누군가에게 칭얼거리면 좀 덜 무서울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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