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 현 Jun 22. 2020

이사

 늘 책과 옷이 말썽이다. 책은 읽은 책이 반이고 안 읽은 책이 반이다. 학원 할 때 사람들이 책장을 보면 늘 물었다. 이걸 다 읽었어요? 아니 올해 목표가 내가 가진 책을 다 읽는 거야! 그러나 십 수 년이 지나도 늘 내가 가진 책을 다 읽지 못 한다. 새로운 책은 늘 나오고 나는 책을 사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덕분에 걸쳐 놓고 읽는 책이 30권 가량인 적도 있다. 소설은 마지막이 궁금하니 끝을 보지만 나머지는 늘 읽다가 만다. 책을 훼손하는 것도 극도로 싫어하여 책에 낙서나 줄을 긋는 짓도 못한다. 작가가 되려면 아니 작가들은 책은 교과서처럼 막 쪼개서라도 자기 것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이래서 작가가 못 되나 싶다.  


 강의하는 일본어 책도 만만치 않다. 민나노 일본어라는 향후 백년이 지나도 나올 거 같지 않는 명저가 있어 내 책을 쓰지 않는 탓에 남들의 피땀눈물로 이루어진 교재들을 쏙쏙 뽑아내서 강의하므로 버려도 늘 넘친다. 또 그분들의 노력을 내가 한권 사드려야 한다는 동료애도 있다. 이제 디데이 5일인데 결국 한권도 솎아내지 못하고 있다. 목표는 한 달 전부터 세웠었다. 이사 갈 집이 지금보다 좁으니 한 권씩 읽지는 않더라도 대충 보고 메모 정도라도 해 두고 버리자고! 일본의 정리학자(?)로 유명한 사람이 물건을 버릴지 어떨지 고민이 되면, 그 물건을 만졌을 때 이제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했다는데 도대체 설레지 않는 책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나를 속이고 있는 걸까? 설레지 않으니 안 읽으면서 언젠가 어느 날인가 설렐 날이 있을 거라고 못 버린다고...    


 옷은 더 가관이다. 일생이 다이어트라 모든 사이즈의 옷을 갖고 있다. 더군다나 강의를 해서 먹고 사는 직업이니 정장을 보면 꼭 사야할 거 같은 강박이 언제부터인지 내 무의식까지 침투해 있는 거 같다. 사실 정장은 전혀 입지 않는다. 늘 청바지에 좀 그럴 듯한 티나 셔츠를 입을 뿐인데 멋진 정장을 보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런 옷은 심지어 비싸기도 해서 버릴 때 더 아깝다. 그러니 쌓인다. 또 어릴 때부터 늘 사람이 껍데기를 입고 다녀야 한다고 배웠다. 그놈의 껍데기! 한 여름에도 얇아도 뭔가 걸치는 것을 꼭 입어야 한다고 배워 겉옷도 많다. 버버리 종류는 사계절용으로 몇 벌씩 있다.  


 일본어 강의를 한지 25년이 넘었다. 대형 외국어 학원부터 대학, 고등학교, 중학교, 대기업을 거쳐 대치동에 자리 잡아 내 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작년부터는 대치동의 입시학원 두 곳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학생들은 선생의 모든 것에 민감하다. 가끔 쳐다보더라도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세세히 본다. 깔끔한 것은 기본이고 여자선생이라면 화장까지 소홀히 할 수 없다. 오늘은 나무같이 입으셨네요! 나무? 네! 큰 나무 같아요! 내가 초록색 티셔츠와 고동색 바지를 입고 간 날 아이들이 해 준 말이다. 또 좀 신경 써서 입고 간 날은 오늘은 파티 가세요? 라고도 해 준다. 그럴 때면 참 학생들이 나를 꼼꼼히 보는구나 싶어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사실 다 변명인지도 모른다. 그저 소비벽인데 좋게 여러 말로 포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도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e북으로 보면 되고 굳이 내 소유로 하지 않아도 된다.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다. 옷도 마찬가지다 뚱뚱할 때면 그걸 가리려고, 가뭄에 콩 나듯 날씬할 때는 그게 미치게 좋아서 옷을 산다. 사서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 정리할 때면 꼭 나온다. 그럴 때면 참 내 자신이 한심하고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를 다짐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 낭비벽이 고쳐질까 싶다. 아이를 낳는 고통을 잊어서 다시 아이를 낳듯 신은 우리에게 망각이라는 아주 좋은 치료제를 주어 늘 나에게 이사는 새로운 고통이다. 오늘은 제발 두문불출하여 책과 옷을 정리하여 여러 사람 괴롭히지 않는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월요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