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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 현 Jun 22. 2020

이사

 늘 책과 옷이 말썽이다. 책은 읽은 책이 반이고 안 읽은 책이 반이다. 학원 할 때 사람들이 책장을 보면 늘 물었다. 이걸 다 읽었어요? 아니 올해 목표가 내가 가진 책을 다 읽는 거야! 그러나 십 수 년이 지나도 늘 내가 가진 책을 다 읽지 못 한다. 새로운 책은 늘 나오고 나는 책을 사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덕분에 걸쳐 놓고 읽는 책이 30권 가량인 적도 있다. 소설은 마지막이 궁금하니 끝을 보지만 나머지는 늘 읽다가 만다. 책을 훼손하는 것도 극도로 싫어하여 책에 낙서나 줄을 긋는 짓도 못한다. 작가가 되려면 아니 작가들은 책은 교과서처럼 막 쪼개서라도 자기 것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이래서 작가가 못 되나 싶다.  


 강의하는 일본어 책도 만만치 않다. 민나노 일본어라는 향후 백년이 지나도 나올 거 같지 않는 명저가 있어 내 책을 쓰지 않는 탓에 남들의 피땀눈물로 이루어진 교재들을 쏙쏙 뽑아내서 강의하므로 버려도 늘 넘친다. 또 그분들의 노력을 내가 한권 사드려야 한다는 동료애도 있다. 이제 디데이 5일인데 결국 한권도 솎아내지 못하고 있다. 목표는 한 달 전부터 세웠었다. 이사 갈 집이 지금보다 좁으니 한 권씩 읽지는 않더라도 대충 보고 메모 정도라도 해 두고 버리자고! 일본의 정리학자(?)로 유명한 사람이 물건을 버릴지 어떨지 고민이 되면, 그 물건을 만졌을 때 이제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했다는데 도대체 설레지 않는 책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나를 속이고 있는 걸까? 설레지 않으니 안 읽으면서 언젠가 어느 날인가 설렐 날이 있을 거라고 못 버린다고...    


 옷은 더 가관이다. 일생이 다이어트라 모든 사이즈의 옷을 갖고 있다. 더군다나 강의를 해서 먹고 사는 직업이니 정장을 보면 꼭 사야할 거 같은 강박이 언제부터인지 내 무의식까지 침투해 있는 거 같다. 사실 정장은 전혀 입지 않는다. 늘 청바지에 좀 그럴 듯한 티나 셔츠를 입을 뿐인데 멋진 정장을 보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런 옷은 심지어 비싸기도 해서 버릴 때 더 아깝다. 그러니 쌓인다. 또 어릴 때부터 늘 사람이 껍데기를 입고 다녀야 한다고 배웠다. 그놈의 껍데기! 한 여름에도 얇아도 뭔가 걸치는 것을 꼭 입어야 한다고 배워 겉옷도 많다. 버버리 종류는 사계절용으로 몇 벌씩 있다.  


 일본어 강의를 한지 25년이 넘었다. 대형 외국어 학원부터 대학, 고등학교, 중학교, 대기업을 거쳐 대치동에 자리 잡아 내 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작년부터는 대치동의 입시학원 두 곳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학생들은 선생의 모든 것에 민감하다. 가끔 쳐다보더라도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세세히 본다. 깔끔한 것은 기본이고 여자선생이라면 화장까지 소홀히 할 수 없다. 오늘은 나무같이 입으셨네요! 나무? 네! 큰 나무 같아요! 내가 초록색 티셔츠와 고동색 바지를 입고 간 날 아이들이 해 준 말이다. 또 좀 신경 써서 입고 간 날은 오늘은 파티 가세요? 라고도 해 준다. 그럴 때면 참 학생들이 나를 꼼꼼히 보는구나 싶어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사실 다 변명인지도 모른다. 그저 소비벽인데 좋게 여러 말로 포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도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e북으로 보면 되고 굳이 내 소유로 하지 않아도 된다.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다. 옷도 마찬가지다 뚱뚱할 때면 그걸 가리려고, 가뭄에 콩 나듯 날씬할 때는 그게 미치게 좋아서 옷을 산다. 사서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 정리할 때면 꼭 나온다. 그럴 때면 참 내 자신이 한심하고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를 다짐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 낭비벽이 고쳐질까 싶다. 아이를 낳는 고통을 잊어서 다시 아이를 낳듯 신은 우리에게 망각이라는 아주 좋은 치료제를 주어 늘 나에게 이사는 새로운 고통이다. 오늘은 제발 두문불출하여 책과 옷을 정리하여 여러 사람 괴롭히지 않는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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