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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 현 Jun 22. 2020

다시 월요일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어제부터 다시 시작된 학원 강의가 적당한 긴장감을 주기도 하지만 다시 대치동이라는 격전지에 던져진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대치동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도 15년 쯤 된다. 혼자 고고한 척, 혼자만 따로 놀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버텨왔지만 3년 전부터는 모든 것을 대세에 맡기기로 했다. 이제 더는 버틸 여력이나 에너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 그냥 늙은 건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별로 아름다운 일이 없다. 자연을 훼손하고 끊임없이 쓰레기를 배출하고 동물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같은 인간들까지 해치기 일쑤다. 인간의 삶 자체가 지구나 다른 동물들 입장에서는 재앙이다. 원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태어난 이상 뭔가 인류에게 또 지구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릇이 안 되니 큰일은 할 수 없고 작은 일이나마 늘 실천하려고 한다.    

 

 음식을 남기지 않기. 동물이나 식물이나 우리 인간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는데 남기는 것은 큰 죄라고 여긴다. 일본은 음식물 쓰레기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처럼 따로 수거하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식당에서도 반찬값을 일일이 받는다. 나와 같이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남은 음식을 항상 싸는 내 모습을 희한하게 본다. 중에는 뭘 그렇게까지 하며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종이 아끼기. 복사를 한 뒷면도 늘 쓰고 버리려고 한다. 휴지도 적게 쓰려고 노력한다. 티슈는 꼭 반으로 찢어서 쓴다. 그렇게 해도 남들보다 휴지를 많이 쓰는 편이다. 뭘 잘 닦기 때문이다. 어디 앉으면 꼭 책상을 닦는 버릇이 있다. 옷이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옷이 더러워지면 세탁을 해야 하고 물과 세제로 또 환경을 오염시킨다. 덕분에 옷을 오래 입는다. 성격과는 달리 옷이 오래 보존된다.    

 

 물 아끼기. 프랑스인과 결혼한 사촌언니가 있었다. 내가 본 한국여자 중에 가장 까다로운 사람이었던 그녀는 프랑스인 형부에게 꽉 잡혀 살았다. 샤워 시간이 길다고 3분에 끝내라고 지키고 있고, 자동차를 많이 탄다고 많이 걸어 다니게 했다.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덕분에 나도 유럽인들의 마인드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아파하는 지구를 이미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돈이 많다고 선진국이 아닐 것이다. 앞서 나간 나라란 생각이나 문화 자체가 더 많은 것들을 아우르며 포용하는 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 찌질한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멀리 갔다. 어쨌든 난 대치동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일을 하고 싶었다. 학원을 청소하는 내 모습을 보고 한 학생이 의아해 했다. 왜 샘이 직접 청소를 해요? 라며! 그 말에 난 속에서 분노했지만 참았다. 청소를 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자신은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라는!     


 욕망이 이글대는 곳에서 왜 공부하는지 모르면서 그저 좋은 대학을 가려는 학생들에게 잠시라도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 하나하나가 목적인 나 같은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배가 고프다고 하면 같이 밥을 먹어 주고, 살기 싫다고 하면 같이 푸념해 주는! 일본어도 성적위주가 아닌 그들이 살아가는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내신위주의 수업을 극도로 싫어했다. 시험에 나오는 단어만 외우고 문법위주로 문장을 외우게 하는 것이 정말 싫었다. 일본어는 우리말의 파생어라 단어만 외우면 누구나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다. 이 쉬운 언어를 하나 마스터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내신의 감옥 덕분에 그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물론 난 26년을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는 프로라 내신도 만점을 보장한다만. 그런 마음에 크게 설명을 하면 싫어한다. 그게 시험에 나와요? 라며..    

 

 이젠 다 내려놓았다. 내신위주의 철저한 수업을 한다. 아이들도 너무 힘들다. 나까지 더 보태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대신 흥미를 가지는 학생에게는 원하는 이상의 설명을 한다. 주어진 세계보다 더 큰 세계는 늘 존재하니까! 밥은 이제 해 줄 수는 없어도 잘 사주기는 한다. 같이 뭘 먹은 기억은 늘 소중한 추억이 되므로! 앞으로 더 얼마동안 일본어를 가르치게 될지 모르겠다만 나를 만나는 학생들이 잠시라도 입시의 굴레를 잊고 웃으며 시간을 나누다가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좋은 일은 딱 두개라고 생각한다. 지혜를 후배들에게 전하는 것과 글로 남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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