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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 현 Mar 13. 2024

조교 채용

인간의 바닥은?

    

 양방향 수업을 추구하는 내 강의 특성상 시작하는 기초반은 반드시 조교가 필요하다. 문법을 설명하고, 단어를 외우게 한다. 그런 다음 한글 스크립터를 보고 일본어로 바로 말하는 연습을 시킨다. 외고 합격을 하고 모인 아이들의 실력은 천차만별이다. 이미 구몬등의 학습을 어릴 때부터 해 온 학생, 개인 과외를 통해 학습한 학생, 일본 살다 온 학생, 중학교 때 제2 외국어인 학생, 어머니가 아버지가 일본인인 학생까지 있다. 일본 애니나 노래, 드라마를 좋아하는 소위 덕후들도 많다. 외고 입학 후 글자부터 차근차근 학습해 나간다고 하지만, 실력이 이미 차이가 난 상태로 출발해서는 성적을 뒤집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과목은 기초와 회화인데 회화는 원어민 선생님이 무조건 일본어로 수업을 하는 것이 기본으로 되어있다. 일본어를 모르고 입학을 하면 그야말로 재앙의 시작이다.


단위도 무시무시하게 8 단위이다. 수학이나 국어가 4 단위인데 일본어가 그 두 배이니 영향력이 제법 크다. 이번에 대학을 간 친구 중에도 일본어 때문에 외고인데도 수시를 다 놓치고 미술로 대학을 간 학생이 있다. 아직도 일본어를 미리 시작했더라면 하고 후회를 하고 있다. 15년 넘게 대치동에서 외고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차곡차곡 쌓인 노하우의 결정판이 지금의 수업방식이다. 입학 전 두 달 동안, 글자부터 시작한 학생들에게 기적을 선물해야 한다. 회화와 문법을 둘 다 잡아야 한다. 자랑은 아니지만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내가 아직도 대치동에서 버티고 있는 비결은 그 기적을 늘 학생들과 이룬다는 거다. 그 기적에는 조교가 꼭 필요하다. 버벅거리는 아이들의 허접하기 그지없는 일본어를 끝없이 들어줘야 하는 아주 귀중한 존재이다. 


외고 선배들을 주로 고용한다. 이미 1학년 때부터 조교 하고 싶다는 학생들이 꽤 있다. 일본어 실력보다는 성실함과 나와의 합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만, 대학입시를 치르고 가장 먼저 연락을 하는 친구를 순서대로 고용한다.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도 모양 빠지니 원하는 자를 우선시하게 된다. 작년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올해 아주 호되게 조교 시집살이를 하게 되었다. 다른 학원을 다니다가 1학년 중간에 나에게 온 남학생인데 성적이 수직상승한 일본어 덕분에 K대 합격했다. 고 3 때 우연히 길에서 만났을 때 조교시켜 달라고 했다. 반가웠고 당연히 좋다고 했다. 아직 개강하기도 전에도 계속 연락이 왔다. 언제 시작하냐고. 시작했을 때는 좋았다. 신입생들에게 입학하면 챙겨할 것들도 알려 주고 일본어 듣기도 꼼꼼하게 들어주는 거 같아 좋았다. 무엇보다 설명을 해 주려는 모습이 든든했다. 


내가 너무 무르게 대한 걸까? 아님 시급을 낮게 얘기한 것이 문제였을까? 시급은 낮게 얘기하고 다른 선생님들보다 더 챙겨 주는 것이 내 스타일이다. 커피는 물론이고 식사도 포함이고 차비까지 챙겨 준다. 고객이었던 학생을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갑과 을의 관계로 하진 못한다. 사실 웬만한 일에는 화도 나질 않는다. 이미 그렇게 된 지 꽤 되었다. 손자 손녀를 봐야 할 나이인데 어린 학생들은 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이번 조교는 꼭지를 돌게 하는 힘과 게으름이 있었다. 제시간에 온 적이 한 번도 없고, 눈치는 내가 봐야 하는 상황이고, 내가 설명하는 도중에 자신이 더 큰 목소리를 내며 지적을 했다. 무단으로 오지 않은 적도 3번이나 있었다. 한 달이 넘었을 때는 과연 오늘은 언제 나타날까 무슨 일을 벌일까 전날부터 조마조마했다.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지 답이 없었다. 급기야 학생들 앞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했다. 


구제해 준 것을 작년에 조교를 했던 친구들이었다. 보고 싶다고 찾아와서 그간의 사정을 말하니 자신들을 다시 부르라고 고맙게 말해 주었다. 덕분에 선배들이 알바를 하고 싶다고 한다고 말하고 부드럽게 마무리를 지었다. 한 달이 넘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계속 생각해 보고 있지만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사람을 부릴 줄 모르는 것이 제일 큰 거 같다. 어릴 때 친척 집에 가면 꼭 있던 식모라고 불리던 사람을 혹독하게 다루던 어른들이 하던 말이 떠오른다. 잘해주면 기어오른다고! 그런 말을 하는 어른들을 난 경멸했다. 또 그 말을 평생 부정하고 살아왔는데 이젠 잘 모르겠다. 인간의 바닥이 있는 거 같아 씁쓸하다. 그런 면에서 동물들이 순수하다. 잘해 주면 그만큼의 순수한 사랑을 준다. 동물들에겐 바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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