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nghai 4/4
내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것,
아직 그런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자유롭게 즐긴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여행이었다.
1. 푸짐한 브런치 @Element fresh
가이드북에 여러 레스토랑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Element fresh (新元素, xinyuansu).
Baidu ditu에 쳐보니, 여기저기 지점이 있었다.
신천지 지점을 엊그제 지나가면서 가보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머니까 제일 가까운 데로 먼저.
이 건물에 있다고 지도에도, 표지판에도 쓰여 있었다.
그러나 건물 안을 아무리 뒤져봐도 6층으로 가는 길을 모르겠다.
데스크에 물어보니 "밖으로 나가서 돌아서 들어가야돼요"라고.
사방을 돌아도 들어갈 구멍이 없어서 아예 다른 건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K11" 지점.
K11이라면, 밤에 집에 갈 때마다 엄청 멀리 보이던 그 건물인데... 거기로 가라고?
그러나 잘 걷고 뛰었다.
가이드북에서 "아침식사"로 좋다고 추천해서, wagas처럼 10시 이전까지만 팔면 어떡하지 하고 급하게 갔다.
그런데 element fresh는 10시가 오픈 시각.
딱 10시 쯤에 갔다.
들어가도 되냐고 했더니 된대서, 한산한 가게에 첫 손님으로 앉아서 주문하고 기다렸다.
그림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K11이라는 건물 자체가 예술쇼핑가를 표방하는 것도 같았다.
나중에 브런치 가격이 궁금할 것 같아서, 사진도 첨부.
내가 먹은건 "커다란 미국식 아침".
사진으로 보면 엄청 작아 보이는데, 실제로는 되게 많았다.
보정하면 더 예쁘게 나오겠지만 귀찮으므로 안함.
그리고 계란 조금이랑 소시지 1/3 토막만 빼고 다 먹었다.
되게 맛있다.
사실 이런건 한국에서도 먹을 수는 있겠지만, 가끔 외국을 나와야 이런 호사를 부리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그냥 "밥"값이랑만 비교를 해서, 괜히 돈이 더 아까운 기분이 든다.
비행기값이 훨씬 더 큰데.
K11은 "예술 쇼핑 센터" 같은 모토를 내세우고 있었다.
화장실도 ifc 몰보다 더 현대적이고 깔끔하다.
층마다 예술 작품이 있다.
데미안 허스트 것도 있었다.
아예 투어를 온 단체도 있었다.
2. 상해 현대미술관으로
그리고 다음으로 간 곳은 상해 현대미술관.
가는 길에 김수현이 삼성 광고로 붙어 있었다.
별그대가 확실히 인기가 있었구나.
전지현 KFC 치맥 광고부터 해서, 참 많이 보인다.
상해 현대미술관은 인민공원 안에 있었다.
Baidu ditu에서 17번 출구인가가 제일 가깝게 나와서 글로 나왔다.
그러나 거기서부터는 밀림...아니 인민공원을 헤쳐서 찾아야 한다.
표지판을 보고 쭉 따라가면 된다. 완전 느려도 5분이면 감.
원래 중국에는 이렇다 할 현대미술관이 없었는데, 어떤 외국인 부자(?)가 상해에 현대미술관을 건립했다고 한다.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뜻깊은 것 치고는 작품 수나 규모가 좀 조촐한 편이었다.
우리나라 현대미술관은 서울 분관에만 해도 커다란 한진해운 프로젝트나 최우람의 기계들이 있는데.
대리석에 그린 듯 반짝거려서 재료를 봤더니, Photograph 사용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여기에 어떻게 사진을 조합한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설치작품 하나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온통 하얀색 밝은 벽이다.
가운데에 테두리만 남은 까만색 육면체가 있다.
육면체는 사실 고무줄로 만든 것 같다.
각 꼭지점마다 길다랗고 팽팽한 낚싯줄이 하나씩 묶여 있다.
낚싯줄들은 벽 모서리 끝마다 달려 있다.
사실 모서리 끝에는 천천히 회전하는 모터가 달려 있다.
모터가 회전하면서 낚싯줄이 움직인다.
낚싯줄이 움직이면 꼭지점이 움직인다.
꼭짓점이 움직이면 육면체가 변형된다.
육면체는 천천히, 끊임없이 변형된다.
육면체는 변형되지만, 스스로 변형하는 건 아니다.
외부의 움직임이 육면체의 모습을 바꿀 뿐이다.
사람과 닮아있다.
우리는 자기 의지가 있어서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한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인간기계론을 내세웠다. (이건 공각기동대에서 봤는데 틀릴 수도 있음^_^)
굴러다니는 구슬이나 떠도는 행성처럼, 사람도 물리적 작용 때문에 활동할 뿐이라고 한다.
사람은 우주의 일부이면서도, 스스로는 "개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불교적인 세계관이다.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
어떻게 보면, 굳이 불교에 국한해서 생각할 필요도 없다.
성리학의 이기론도 "이"와 "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치에 따라 행동하게 되지만, 이치는 형태라는 그릇에 담겨저 나타난다.
나는 어디까지 자유롭고, 어디까지 의지가 있는걸까.
나의 자유 의지라는게 애초에 존재하는걸까?
아니면 허상에 이름을 붙인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자유 의지 따위는 없는 걸지도 모른다.
뇌는 전기로 생각하고, 마음은 화학으로 느끼며, 몸은 물리로 움직인다.
관람자가 참여함으로써 작품이 완성된다는 식으로... 만든 것도 있었다.
너무 대충 읽어서 해설을 올바르게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맞겠거니 해서 스크린에 들어가 놀았다.
물레 돌아가는 영상에서는 내가 돌리는 것처럼 그림자 놀이도 하고. ^_^
2층 마지막에는 이렇게 빈 백이 늘어져 있었다.
여기 앉아서 쉬었다.
밖은 덥지만 안은 시원하고, 창 너머로는 초록색 나무들이 산들산들~
3층에는 식당과 모나리자 기획전(?)이 있었다.
모나리자 패러디로 밀고 있는 작가인 것 같다.
화장실 타일도 인상깊었다.
고급스러운 꽃무늬 같은데, 자세히 보면 F**K YOUR A$$ 머 이런 식으로... 욕으로 꽃잎들이 이루어져 있었다.
찍진 않음.
나오려다 방명록이 있어서 남겼다.
3. 뜨거운 날엔 시원한 @해피레몬
가이드북에서는 매일신선 주스바와 함께, "해피레몬"도 추천하고 있었다.
아침을 아주 든든하게 먹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배가 매우 불렀지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사먹었다.
4시 반 비행기이므로,
12시 반에 숙소를 출발해야두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먹는건 지금이 마지막이고, 해피레몬은 숙소 근처에 있으니까 ^_^
게다가 5~10분 늦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 (실제로 굉장히 그랬다)
"레몬 & 파인애플 with QQ젤리"를 시켰다.
코코넛 젤리를 QQ젤리라고 하는 것 같다.
시키니까 이런 번호표를 줬다.
맛있었다.
먹길 잘했다.
4. 귀국
인민광장 지하보도에는, 짐가방 든 여행자들을 특히 노리는 사기꾼(?)들이 많다.
올 때는 몰라서 귀찮게 들러붙었으나, 갈 때는 차라리 빌딩 뒷길들을 따라 가서 지하철 역 최중심 쪽 입구로 들어가기로 했다.
에피소드 1. 조리돌림의 현장을 목격
인민광장 역을 들어갔다.
쭉 따라 걷고 있는데, 저쪽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는게 보였다.
뭔가 해서 지나가면서 슬쩍 봤다.
어떤 경찰이랑 여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둘 다 소리치고 있었다.
그 주위를 관중들이 둘러쌌다.
게이트 안이든 밖이든.
어떤 노인은 여자한테 "그러지 말고 그냥 이러이러하게 해라"라고 훈수를 두는 둣이 손을 휘저으며 뭐라고 말했다.
"[...] 아Q가 본래 구경을 즐기고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재빨리 어둠 속을 달려나갔다.
앞에서 사람들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그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였는데, 별안간 아Q의 맞은 편에 있던 한 사람이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이를 본 아Q는 재빨리 몸을 돌려 뒤쫓아갔다.
그 사람이 방향을 바꾸면 아Q도 따라서 방향을 바꾸었다.
그 사람이 멈춰 서자 아Q도 멈춰 섰다."
- 노쉰, "아Q정전"
그 모습이 기이했지만, 사진으로 찍을 수는 없는 일 같아서 그냥 지나쳤다.
에피소드 2. 아저씨가기차에들어가신다
푸동공항으로 가는데, 어떤 아랍 아저씨가 "광란로" 역에서 남들 따라 허겁지겁 내리면서...
Luggage를 들고 있는 나에게, 자기 지금 푸동공항 가는건데 여기서 갈아타야 하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해줬다.
자기 공항 가는 길이니까, 나도 공항 가는거면 자기가 따라가겠다고 했다. (왜 나를...)
그래 뭐 알아서 하시는데, 이거 어차피 종착역이 푸동공항이니까 걱정하지 말으라고 해줬다.
그런데도 굳이 따라가겠다고 했다. (왜 나를...!!!)
"광란로" 역에서 푸동공항 가는 2호선으로 갈아탔다.
그 후에도 그 아저씨는 똑같은 걸 수십번을 물어봤다!!!
급기야는 자기를 배웅해 준 중국인 젊은이한테 전화를 걸어서는, 이거 2호선 중간에 갈아타는 거였다고, 끝까지 가는거 아니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전화기를 건네주면서, 이 친구한테 한 번 얘기 좀 해달라고 했다. (내가 왜...?)
중국인 아니라고 하니까, 자네 영어 잘하더만 영어로 해줘, 라고 했다. (내가 왜...???)
나중에는 너무 짜증나서 대답도 제대로 안 했다.
아저씨는 건너편의 서양인 청년에게 다시 물어봤다.
이거 푸동 공항 가는거 맞냐고, 자기는 인도네시아인지 인디아인지로 가야 한다고. (내가 맞다고 했잖아...)
친절한 청년은, 자기는 지금 호주에서 오는 길이니 이거가 아니고 다음에 내려서 반대편 기차를 타시면 될거라고 했다.
사람들이 불쌍한 청년을 구제해주려고, 그게 아니라 당신이 지금 여기서 내려서 반대편으로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청년은 공항과 광란로 역 사이를 순환하는 기차를 계속 타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광란로 역에서는 한 차례 소등을 하는데도...)
그렇게 해서 푸동 공항에 도착. ^^
에피소드 3. 공항에서 길을 잃은 나와 비행기
귀국길에 뭔놈의 에피소드가 이렇게 많은지.
공항에 왔으니 이제 다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발이 터질 것처럼 아팠다.
운동화를 가져올 걸 그랬다.
출국 수속을 줄 서서 기다리는 것도, 멍청하게 카메라와 우산을 부치지 않아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나흘 내내 굽 달린 샌들을 신고, 무거운 핸드백을 메고 다녔다.
수속을 마치고 나오는데 힘이 풀렸다.
면세점 따위...
뭔가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쉬고 싶었다.
빨리 앉고 싶었는데 게이트는 저 멀리 61번.
가는 도중에 누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가길래 나도 먹어야지 했다.
Movenpick이라는 데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9 위안이길래 하나 달라고 했는데, 계산할 때 보니까 "49" 위안이었다.
내가 그 돈 주고 이 코딱지만한 아이스크림을...
물렀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먹어야지 했는데, 지폐 투입구가 없었다.
왼쪽 자판기를 가리키는 빨간 스티커... 그리고 "여기에 투입하세요" 라는 글귀.
믿기지 않았지만 투입했더니, 정말로 두 자판기가 연결되어 있었나보다.
맛은 그저 그렇지만 따뜻한 라떼를 드디어 마실 수 있었다.
차 한 잔을 들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발이 너무 아파서 샌들도 벗고 발을 내팽개치고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게이트 돌아다니다가, 그 중 한 명이 "게이트 바뀌었는데?"라고 했다. (오 제발...)
저 멀리 71번 게이트까지 도로 걸어갔다.
10분인가 남겨놓고 가는 길에 면세점이 있길래, 키세스 세 봉지를 영혼없이 척척 샀다.
비행기는 2시간 연착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공항버스를 탔다.
공항철도(지하철)은, 갈아타는 건 겁나 번거로운데 가격은 홍대입구에서 인천공항까지 3,900원 정도 한다.
공항버스랑 천원 이천원 차이밖에 안 나는데.
공항버스 완전 편했다.
짐가방에 스티커 번호표를 붙이고, 기사 아저씨가 직접 내려주신다.
레알 집 바로 근처에서 내려서 너무 좋았다.
4B, 11A 정류장!
4B에서 먼저 손님을 태우고, 좀 가서 11A에서 다시 태우더라.
5. 여행의 의미
여행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1) 혼자 여행하면 외롭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헤매는 시간마저도 상대방과의 추억이 될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떠들기만 해도 이야깃거리가 된다.
하지만 혼자 다니면, 스스로 본 것을 후에 스스로 기억해내거나, 아니면 스스로 의미를 찾아야만 흥미로워진다.
대신에 자기만의 시간을 (어쨌든) 가지게 되어서 생각을 할 수 있다.
무리 속에서는 그냥 스쳐지났을 사건과 사물에서 더 많은 의미를 뽑아낼 수 있다.
삶도 그렇게 살면 좋겠다.
함께 살아가되 나의 의미도 놓치지 않으면서.
2) 결단이 필요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리고 결단은 스스로가 내려야 한다.
길을 잃었을 때, 관광객 티를 내면서 멈춰서서 지도를 펼치고 꿋꿋이 길을 찾을 것인지, 아니면 대충 눈치로 길을 찾을 것인지도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결정을 잘못 내렸을 때 겪어야 하는 고생도 감수해야 한다.
여행 계획을 짤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나중에 어차피 또 올 기회가 있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라고 조언하고, "한 번 가면 언제 올 지 모르니 유명한 데는 꼭 다 가 봐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든 걸 할 수 는 없다.
현실은 똑똑히 봐야 하고, 선택도 현실적으로 해야 한다.
나에게 더 의미있는 곳들을 방문하고, 내가 더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으면서, 내게 즐겁고 인상적이었던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
그러다가 유명 관광지를 포기하는 것도 내가 감당할 일이고, 반면에 유명 관광지를 택해서 개인적인 시간과 맞바꾸는 것도 내가 감당할 일이다.
3) 여행은 스스로가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증명이다.
입으로만 여행을 말하는 사람은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여행 준비는 평소에 하는게... ^_^a
떠나는 건 내 맘이지만, 가격/ 행사일정/ 날씨/ 항공편/ 비자발급/ 동행인의 스케줄 등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당장 떠나는 게 아니더라도,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두는 것이 좋아 보인다.
그게 진정 여행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
나처럼 떠나면..
급행비자에, 싼건 다 나가고 없는 비행기표를... ㅜ
그래도 추억이 남는건 정말 좋은 일이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