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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대한 로망이 있어?

by 구의동 에밀리

나는 그 흔한 '유럽 로망'이 없었다. 어렸을 적에 가족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다녀서도 그랬겠지만, 무엇보다도 유럽의 멋진 건물과 장식들에 흥미를 잃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도 가고 싶어했는데 말이다. "뷰티풀 유럽 여행"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그 책의 표지는 아직도 기억난다. 푸른색이었다. 곤돌라에는 푸른 천이 있었고, 검은 선체의 말미에는 광택이 나는 은색 장식이 있었다. 그 표지를 볼 때마다 나는 유럽에 가고 싶었다. 그 곳이 베니스인지 어디인지도 정확히 몰랐지만, 가고 싶다는 열망은 강했다. 지금은 하도 많이 봤던 돌길(cobbled street)도, 그 때 내 상상 속에서는 그렇게도 멋있었다. 나른한 햇살을 배경으로 양 옆에는 그야말로 유럽풍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돌길을 깡총깡총 뛰어가는 소녀가 되고 싶었다.


IMG_8801.JPG 자주 찾았더 런던 뒷골목. 도로포장부터 건물 모습까지, 비밀의 장소같은 분위기였다.

그렇게도 유럽을 동경했건만, 대학생이 된 나는 어느새 그런 로망 따위는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다들 유럽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을 잔뜩 꿈꾸고 있었는데 나는 어찌된 일인지 그다지 흥이 나지 않았다. 설레고 기대되기 보다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리운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더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영국에 갔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대로 영국에는 더 이상 검은 장우산을 항상 팔에 걸고 다니는 정장 차림의 중절모 신사도 없었고, 온 천지가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풍경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패션만 좀 달랐다 뿐이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는 옷차림과 비슷하게 하고 다녔고, 도심에서 외곽까지 그리고 시골에까지 아름다운 주택 건축물들과 성당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현대적으로 못생긴 건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랍인과 동양인도 많고, 마트와 싸구려 식당도 여기저기 있었다. 이렇게까지 건조한 기대로 영국에 온 나 자신이 야속했던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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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벽에는 그 때의 기분이며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포스터가 두 장 붙어있다. 한 장은 에펠탑을 배경으로 빨간 코트를 입고 골목길을 뛰어가는 여자를 찍은 사진이고, 침대 옆면에는 빅벤을 뒤로 하고 빨간 이층 버스가 포인트인 포스터를 붙였다. 아무리 봐도 후자는 싸구려 티가 많이 나긴 하지만 (그래서 사진에는 안 담았지만) 두 장 모두 교환학생 때의 일을 종종 연상하게 한다. 혼자 파리에 처음 다녀와서 기숙사 방에 붙여놓은 기념 포스터는 "파리로 가는 창"이라고 별명을 붙이기도 했으니, 이제는 런던과 파리로 가는 창이 한국 방에 생긴 셈이다.


침대 옆에 붙어 있으니 매일 자기 전에 두 포스터를 어김없이 보게 된다. 그리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서, 자기 전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아까는 페이스북에 보니 내가 가이드로 몇 번 일했던 마이리얼트립에서, 당사가 신문에 소개되었다고 상태 업데이트를 올려 놓았었지. 내가 처음 이 회사를 알게 된 것도 얼마 안 됐고, 거진 반 년이 지난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회사인데 말이다.


크리스마스 가이드.jpg 가이드했을 때 사진. 얼굴은 여전히 너무 부끄럽다 ^^


그래, 그러고 보니 내가 그 때는 가이드를 하기도 했었지. 글 쓰는 일도 참 좋아하고 말이야. 벨기에에 가서는 다시 소설을 써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어릴적 꿈처럼 소설을 쓰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중에"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 순간 5, 60대가 되어서 펜촉이 굳어버리고 내 입은 떡 벌어지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글을 종종 써보자고, 많이는 아니더라도 몸에 습관을 들여놓자고 마음을 먹었다.


IMG_0775.JPG 파리 여행 갔을 때, Les Deux Magots에서 찍은 사진. 유서 깊은 카페에서 글을 읽고 쓰는 맛이 좋았다.


소설가라는 직업이라. 하지만 진짜로 20대 초반부터 전문 소설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소설로 우려낼 만한 경륜의 티백이 없는데 무슨 허무맹랑한 글을 쓰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그 일에 손을 댔다가는 입에 풀칠이나 하면 다행일 벌이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 것이었다. 물론 벨기에에서는 글도 써보고 싶었고 또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수첩에 자주 기록을 하기도 했다. 글을 쓰고, 블로그에도 사진과 함께 종종 여행기처럼 포스팅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일"이 될 수 있을까. 밥벌이로 삼을 수 있는 어른들의 진지한 "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하루하루 공사판에서 고단한 노동으로 근근히 돈을 벌어 사는 사람들도 있고, 일주일에 다섯 번씩 꼬박꼬박 회사에 나가 가끔은 야근과 주말반납까지 하면서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글이나 깨작거리고 있는게 그런 삶의 무게와 비견할 수나 있나.




일에 대해 생각하니, "꽃보다 할배"에서 신구가 성당 앞의 거지 여자에게 돈을 주던 장면이 생각났다. 그것도 몇 푼 동전이 아닌 지폐로. 아마도 "이걸로 밥이나 따뜻하게 한 끼 드세요"라는 마음에서 돈을 줬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성당 앞에 거지가 꼭 한두 명씩 있는거야!"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착한 마음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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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벨기에에서 봤던 한 부부가 떠올랐다. 노부부라고 하기에는 중년부부 같기도 한 사람들이었다. 영어와 다른 유럽 언어를 섞어 쓰는 것으로 보아, 여자는 이란이나 그 쪽에서 온 사람 같았고 남자는 약간 미국 쪽에 뿌리가 있는 것 같았다. 왕의 광장 노천 카페의 테라스석에서 각자 음료 한 잔 씩을 앞에 두고 햇살을 쬐고 있던 그들에게, 어디선가 집시 여인같은 사람이 나타나 종이컵 속의 동전을 짤강거리며 다가왔다. 여자가 손을 흔들 때마다 종이컵 속의 동전들이 "찬 찬 찬"하고 소리를 냈다. 여기에 동전 좀 보태달라는 얘기였다. 내가 런던, 파리, 벨기에, 이태리를 다니면서 각지의 거지들을 봐왔건만, "도와주세요" 한 마디 없이 종이컵이나 짤강거리고 다니는 여자는 처음 본 탓에 약간 어이없어 하고 있었다. 그 때, 은근히 쎈캐(성격이 센 캐릭터) 티가 나던 부인이 거지 여자에게 "일 해, 일"이라고 프랑스어로 말했다. 남편도 따라서 "일 해"라고 하려던 것 같지만 부인에 비하면 한참 어물어물이었다.


집시 여인은 그들 테이블을 떠나, 왕의 광장 테라스에 앉아 체리 맥주를 마시던 나에게 돌아섰다. "찬 찬 찬".



나는 일을 하는 사람인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생각해보니 문득 그런 물음을 하게 되었다. 거지 여인이여, 구걸하지 말고 생산적인 일을 하라. 그렇다면 그 옆 테이블에서 왕의 광장 햇살을 쬐고 있던 나는 일을 하는 사람인가......? 중년 부부는 거지 여자가 지나가고 한참 뒤에도 그 이야기를 했다. 부인은 계속 "사람이 일을 해야지"라고 주장했다. 남편은 주장보다는 끄덕끄덕 듣는 편이었다. 슬쩍 곁눈으로 보니 둘 다 선글라스를 썼던데 유난히 부인에게서는 자글자글한 주름과 함께 만만치 않은 성격이 느껴졌다. 나는 그들 옆에서 왕의 광장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내 얼굴은 따스한 햇살을 담뿍 받아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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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유럽에서 글을 썼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썼다. 만약 하루 이틀 여행이나 술자리 혹은 바쁘게 처리해야 될 일 때문에 글이 미뤄진다면 그 다음날에라도 기어이 밀린 만큼을 다 채워냈다. 유럽에서 나의 일은 곧 글을 쓰는 것과 가이드, 학생이었다. 그것이 나의 일이었고, 앞으로도 어쩌면 이런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는 다시 예전 모습으로 세팅되어갔다. 지금 나이에 글이나 여행으로 내가 발을 들인다면, 현실적으로 돈을 못 벌어 허구한 날 빌빌대고 비전 없이 세월만 보낼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그래, 아무래도 일이란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일을 해야지. 회사에 출근해서 성실하게 일하고 보수를 받아야지. 우리나라 야경을 밝혀주는 수많은 빌딩들, 그 중 하나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해당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야지. 그렇게 어느 정도 경험도 경제력도 뒷받침되고 나서야, 스스로를 후원할 수 있는 글쟁이가 되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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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유럽에 있던 때를 다시 떠올렸다. 따스한 햇살이 온몸을 감싸기도 했고, 창 밖으로 런던 특유의 짜증나는 부슬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때도 있었다. 저녁을 차리러 부엌에 들어오면 햇빛이 부엌을 한가득 채우고, 차린 저녁을 먹다 보면 어느새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양 새빨개진 하늘을 배경으로 세인트 판크라스 (St. Pancras) 기차역이 보이기도 했다. 그 속에서 나는 글을 쓰고 런던과 서울을 생각하며 가이드를 하는 사람이었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 "그 때는..."이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아무래도 유럽에 대한 로망이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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