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7일
만7개월이 되자, 깨시가 2시간이 넘어갔다.
조짐은 만6개월부터 슬슬 보였다. 완전 옛날에 신생아 때는 수유하고 눈 잠깐 뜨고 있는 게 ‘먹놀잠’에서 ‘놀’의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점차 30분, 1시간, 하는 식으로 늘어나서, 만6개월 때는 1시간 반은 거뜬히 놀다가 피곤해했다. 그 정도는 놀아야 아이는 드디어 진짜 피곤하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예전에는 이게 배고파서 소리를 지르는 것인지 아니면 피곤해서 짜증내는 것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의 졸린 신호가 차츰 명확해져갔다. 일단은 짜증내서 안아줄 때 눈을 비비거나 뒷목 혹은 귀를 긁어댄다. 그래도 조금 아리까리하다 싶으면 거울 앞으로 데려간다. 진짜 피곤하다면 아이는 그 좋아하는 거울을 보여줘도 오히려 품으로 파고들면서 거울 속 아기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니까, 아이의 깨어있는 시간이 2시간을 넘어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문득 백일 무렵의 평화가 떠올랐다. 그 때는 잠투정도 서서히 없어지고, 비록 옆잠베개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인간침대 신세를 벗어나 등 대고 입면하는 것에도 아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던 시기였다. 신생아 때는 충격적이게도 1분 30초만에 등센서가 발동했었는데, 이제 그것도 옛말이 되어서 수면 시간도 차츰 길어지고 있었다.
옳다구나 싶었다. 토막잠도 사라지고, 입면도 수월하고. 깨어있는 동안에는 밥 먹여준 다음에 적당히 놀아주고, 아이가 잠든 시간에는 내 할 일도 하면서 지내면 되겠구나. 이대로면 어린이집을 보낼 필요도 없겠는걸? 하지만 그것은 육아 초보의 다분히 나이브한 상상에 불과했다. 아이의 성장과 함께 깨어있는 시간은 길어지고, 아기는 깨어있다고 해서 어른처럼 얌전히 자기 몫의 놀이를 즐기는 존재가 아니었다.
잠시 화장실이라도 다녀올라 치면 “엄-멈머머……” 하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리는, 작고 귀엽고 손 많이 가는 존재. 아기란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2시간씩을 넘어가다니, 대체 이 깨시를 어떻게 버텨낸담? 모빌도, 바운서도, 온갖 장난감도 소용 없었다. 심지어 아기들이 좋아하는 개구리 점퍼루는 앉히기만 해도 답답하다고 금방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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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생각을 해 보자. ‘버텨야 하는 2시간’ 대신, ‘보장된 2시간의 깨시!’라는 문구를 머릿속에 띄워봤다.
백일 무렵까지만 해도 아이의 깨시는 여기에 훨씬 못미쳤다. 그래서 외출을 할 때 깨시와 낮잠 시간을 고려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아침에 밥 먹이고 뒷정리 좀 하다가 아기띠를 두르고 카페에 테이크아웃을 하러 가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미 아이가 곯아떨어져 있는 상황이 되어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동네 카페에 잠시 머물고 오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남편과 함께 주말에 아이를 카페에서 유모차 태운 채로 재워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쟁반 떨어지는 소리나 누군가의 우렁찬 재채기 소리 같은 소음들에 아이가 금세 깨어버리곤 해서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반면에 지금은, 집에서 1시간 동안 밥 먹이고 트림 시킨 다음에 밖을 나서도 1시간이 더 남아 있는 셈이다. 이걸 기회 삼아서, 동네 카페 도장깨기를 해 볼 수는 없을까? 때마침 날씨도 좋아졌겠다, 짧은 가을을 최대한 활용해 보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하철 타고 성수동도 잠실 롯데도 가보고 싶었지만, 지하철은 아무래도 코로나 이후로는 병균 칵테일처럼 되어버려서 아직 독감 예방주사도 맞히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타기가 조금 신경 쓰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가을 날씨는 폭염과 혹한 사이에 한 일주일 정도 반짝 하고 지나갈 것만 같았다. 모든 예방주사를 다 맞고 길을 나서기에는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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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잠깐 다니던 산책이, 아침, 점심, 저녁 총 3회의 산책으로 늘어났다.
불타는 한국의 여름 속에서, 이전까지는 아기를 데리고 외출하려면 아침밖에 기회가 없었다. 낮에는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가서 도저히 아이한테 미안해서 어떻게 나갈 수가 없었다. 심지어 저녁에도 덥고 햇볕이 쨍했기에, 그 상태에서 마녀시간까지 겹쳐온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파트라도 빙글빙글 돌고 있으면 금방 눈물바다가 만들어지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난주의 최저기온이 오늘의 최고기온에 준할 정도로 확 날씨가 좋아졌다. 주말에는 오전에 남편과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갔는데, 선선하다 못해 아이가 추워할 것 같아 손수건 두 장으로 종아리를 꽁꽁 묶어주었다. 앞으로는 아침에는 긴팔 긴바지의 우주복과 함께 양말을 신겨서 나가고, 점심 저녁으로는 기존처럼 7부 내복을 입혀서 돌아다니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말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한 주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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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행동을 개시한 첫날 아침에는 조금 멀리 떨어진 스타벅스 광장점으로 향했다. 아이는 귀여운 도토리가 쫑쫑 새겨진 우주복을 입고 유모차에 앉아 있었다. 날씨도 좋고, 아이는 귀엽고, 스타벅스는 새로운 지점을 도전 중이고. 모든 것이 최고였다.
점심에는 아이가 낮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외출할 채비를 모두 챙겨두었다. 목표는 장난감 도서관이었다. 며칠 전에 빌려온 세 가지 장난감 중에서 모터가 안 달린 원통형의 오뚝이만큼은 아이가 시큰둥했기에, 요 아이템 하나만 달랑 들고 가서 다른 장난감으로 바꿔올 셈이었다. 아이는 깨자마자 밥을 먹고 엄마의 계략에 따라 영문도 모른 채 유모차에 실려서는 장난감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후에는 새로 빌려온 장난감인 ‘깜짝볼’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아이와 한참 놀았다. 그러다 3시에 이유식과 분유를 먹고 나서는 역시나 몇 시간 안 되어서 엄청 보채기 시작했다. 아이를 아기띠에 들처메고, 평소에 자주 가던 ‘소소한 그날’ 카페로 향했다. 커피는 하루종일 너무 많이 마셨으니, 이번에는 아이 봐주시느라 고생하시는 친정 어머니께 간식으로 드릴 러스크를 한 통 샀다. 이 집은 라떼도 잘하지만 디저트는 더 잘해서 이래저래 지출이 많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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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역시 아침에 스타벅스 광장점을 다녀왔다. 그리고 점심에 11시쯤 아이와 밥을 먹고, 후다닥 짐을 챙겨서 ‘스킵’이라는 동네 카페를 향했다. 연초에 한 번 투표일에 아이를 친정 어머니께 맡기고 투표를 하고서 잠시 들렀던 카페였다. 그 때 카페 문 앞에 ‘아이와 반려동물은 환영입니다! 귀엽기 때문입니다!’라고 적혀 있던 칠판이 눈에 띄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이와 함께 둘이 방문해서 치즈케이크 라떼 한 잔을 마셨다. 무려 치즈케이크 한 조각이 통으로 올라간 음료였다. 아마 유쾌한 사장님의 영향으로 탄생한 메뉴이리라. 메뉴판의 신메뉴조차 그냥 감자스프와 포카치아가 아니라 ‘대황제’ 감자스프와 미니포카치아의 귀환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난번에는 딸기라떼가 아니라 ‘딸기 어쩌구’라고 적어두시더니, 이제 그 자리를 대황제가 차지한 모양이었다.
카페에서 아이는 울지도 않고 쉴 새 없이 매장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그렇지, 너는 스타벅스랑 ‘소소한 그날’ 말고는 가 본 카페가 거의 전무했지? 그러고 보면 아이에게 이 세상은 신기한 미답지 투성이일 것이었다. 시계라든지 카페의 진열대나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처럼 어른들에게는 그저 일상적인 소품들마저도, 루나에게는 용도와 만들어진 계기 같은 것들이 모두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스킵’ 카페에서 사장님과 손님들에게 귀여움을 듬뿍 받은 아이는, 저녁에는 아기띠에 안겨서 마트를 향했다. 마침 양배추 큐브가 딱 두 알밖에 남지 않았는데다 이제 중기 이유식에 걸맞게 좀 알갱이 있는 형태로 새로 만들었어야 했기에, 야채 코너에서 양배추 4분의 1통을 샀다. 이거 조금 가지고 어떻게 먹나 싶지만 실제로 만들고 나면 한 끼에 10g씩 먹는 아이는 보름을 먹을 수 있다.
마트에서도 직원분들로부터 귀여움을 잔뜩 받고 집에 돌아온 아이는, 조금 놀다가 금방 칭얼대기 시작했다. 4시 이후에는 막수 때까지 낮잠을 재우지 말아야 밤잠을 푹 잔다고 하지만, 아직 루나는 이 때 낮잠을 한 번도 안 자고 스트레이트로 막수까지 가기에는 너무너무 힘들어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낮잠은 이제 겨우 20분 남짓에 불과했다. 돌이 지나면 낮잠을 하루에 한 번만 자도 괜찮게 된다더니, 점점 아이는 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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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아침에 무려 친정을 다녀왔다. 친정 부모님께서는 손주를 위해 육아템을 하나둘 들여놓으셨다. 다이소에서 파는 퍼즐 모양의 바닥 스펀지도 만 원 어치를 사다가 바닥에 깔아두셨고, 버튼을 누르면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서 물고기들이 돌아다니는 장난감 같은 것도 사두셨다. 카페에서는 고작해야 엄마 품에 안겨서 돌아다니거나 테이블 위에 잠깐 앉아있는 게 전부였는데, 여기서만큼은 기어다니면서 놀 수 있었다.
친정에서 돌체 구스토 초코치노를 한 잔 얻어마시고, 점심에는 아이를 데리고 ‘스킵’ 카페를 또 갔다. 이번에는 아이를 위해 땅콩과 사과퓨레를 섞은 30g짜리 간식도 가져갔다. 지난번에는 나만 치즈케이크 라떼를 마시고 있자니 아이는 할 게 없어서 금방 지루해하는 것 같았다. 이유식은 먹다가 소리지르면서도 땅콩사과는 입도 ‘아’ 벌리면서 받아먹었다. 덕분에 아이도 나도 카페 나들이를 즐기는 시간이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카페에서 잔뜩 귀여움을 받고, 아이는 엄마를 따라서 구의제3동 작은도서관에 다녀왔다. 평소에도 아이는 서재에 들어가면 흐뭇한 미소를 지었는데, 책이 잔뜩 있는 도서관에 들어가서 신이 났는지 “크앙!” 하고 공룡 소리를 냈다. 그 탓에 아이는 쪽쪽이(입마개?)를 물고 도서관 이곳저곳을 아기띠에 매여진 채 둘러봤다. 책장의 책등을 쓸어보기도 하면서 나름 진지하게 도서관을 탐험하는 아이였다.
저녁에도 웬만하면 나가려고 했지만, 오후에 친정 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피티를 다녀온 탓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혼자 계단 내려가는 것만 해도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기에, 아쉽지만 이번만큼은 얌전히 집에서 아이를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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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아기띠를 메고 남편을 지하철역까지 배웅했다. 예정에 없이 배웅하러 나가느라 허겁지겁 짐을 챙기는 바람에 지갑이고 힙시트고 다 놓고 나왔지만, 그래도 아기띠랑 스마트폰은 있으니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남편도 늦었다며 서두르는 모습이었는데, 그래도 귀여운 0살짜리 아기가 배웅을 해주니 어쩔 수 없이 웃음 가득한 표정이 돼서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소소한 그날’에 가서 소소라떼를 테이크아웃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라떼를 마셨겠지만 왠지 모르게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럴 거면 산후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는 이유가 퇴색되지 않나? 하지만 운동을 하면서 단 음료를 마시는 게, 운동도 안하면서 마시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점심에는 정말 오랜만에 ‘핀커피’라는 동네 카페를 갔다. 몇 년전에 새로 오픈했을 때 가보고 이후로는 잘 찾지 못했었다. 구의동 물가와는 다르게 커피 한 잔에 7천 원씩 하고 그랬기 때문에……. 하지만 이번에는 정처없이 아기띠를 메고 일단 집을 나왔다가, 불현듯 성수동까지 가는 것보다는 여기서 커피 한 잔 마시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발걸음을 옮겼다. “루나야 오늘은 엄마랑 사치를 해보자”라는 속삭임과 함께.
사장님께서는 친절하시게도 2층의 좌석까지 커피를 갖다 주시겠다고 하셨다. 요즘 이런 분위기 있는 카페는 아예 노키즈존으로 운영하는 곳도 많은 것 같아서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기띠에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있는 내가, 불청객이 아니라 환영받는 손님이 된 기분이 들어서 조금 기뻤다.
2층에는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하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설마 아기가 와서……? 하지만 시계를 보니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구나. 역시 어느 곳이나 직장인이라면 점심시간은 12시부터 1시 사이인가 보다.
아무튼 덕분에 2층을 전세 내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얼음이 찰랑거리는 플랫 화이트 한 잔을 들고 음악을 즐기며 천천히 걸어다녔다. 집에서 아기띠 하고 돌아다니는 것보다 이 편이 훨씬 좋았다. 아이도 난생처음 보는 성수동 스타일(이지만 구의동에 있는) 카페를 구경하느라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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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어머니께서는 언젠가 내게 말씀하셨다. “혼자 있다고 생각할 것 없어. 얘도 사람이니까. 말도 걸고 하면서 같이 지내면 돼.”라고 말이다.
아이를 아기띠로 안아들고 카페를 돌고 있으니,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아침에 ‘소소한 그날’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기다리고 있을 때, 창 밖으로는 사람들이 출근하러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중 몇몇은 카페에 앉아 있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고 가기도 했다. 카페에 앉아있는 나, 그리고 출근하는 직장인들. 상반된 평일 아침의 모습이었다.
휴직하기 전에는 나도 그들처럼 아침마다 출근하는 일상을 보내곤 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일을 좀 하다가 숨 한 번 돌리려고 동료들과 카페에 가면, 딱 그 타이밍에 마주치게 되는 어느 아기 엄마가 있었다. 평일 아침에 아기 데리고 테이크아웃하러 오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지금 내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좋아, 이제 더 열심히 아이랑 같이 여기저기를 다녀야지. 이렇게 작고 예쁘고 어딜 가든 귀여움을 잔뜩 받는 아기를 데리고, 세상 여기저기를 함께 구경 다녀야겠다. 이 때가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둘이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