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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Oct 08. 2024

유모차를 밀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7개월 12일

날씨가 진짜 좋았다. 이런 날에는 성수동에 가야지.


폭염과 혹한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날씨는 기상이변급의 흔치 않은 기회였다. 가을 날씨가 온 것을 보니, 얼마 안 있어서 겨울이 올 게 분명했다. 물론 지금은 10월 초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은 날씨에 있어서만큼은 불가능한 일이 거의 없는 나라니까.


아이가 잠든 오전 낮잠 시간에 서둘러 이른 점심을 먹었다. 무려 아침 10시 반에 점심이라니, 브런치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점심이었다. 하지만 이 때가 아니라면, 아이에게 점심 이유식과 분유를 먹여주고 트림시키고 어쩌고 하다가 쫄쫄 굶고 있기 십상이었다. 그 와중에 아이가 응가라도 하면 씻겨주느라 시간이 또 지체된다. 그 탓에 요즘 점심 메뉴는 언제나 ‘하루 전 날 만들어 둔 덮밥’이다. 전자레인지에 딱 한 그릇 넣고 후다닥 데워야 그나마 식사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다.


오른손으로는 덮밥을 먹으면서 왼손으로는 네이버 지도에서 성수동 카페를 검색했다. 그러다 한 카페의 리뷰가 눈에 띄었다. 유모차를 직원분들이 들어서 카페 내부로 옮겨주시기까지 했다며, 감동과 감사를 담은 리뷰였다. 이 카페, 아기 친화적(?)인 가게구나. ‘오늘은 바로 여기다’라는 생각에, 그 즉시 카페를 즐겨찾기에 저장했다. 예전에는 전혀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던 요소였는데, 이제는 아기 데리고 가도 문전박대를 당하지 않을지가 제일 신경 쓰이는 부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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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점심을 먹여주고, 1시간 정도 놀면서 트림이든 에너지 소모든 할 것 다 하게끔 해주었다. 오전 낮잠을 2시간 가까이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아이 컨디션이 평소보다 좋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금방 “엄-멈멈머……” 하면서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잔뜩 상기된 얼굴이 되었을 텐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심지어 아이는 그 사이에 응가를 두 번이나 했다. 내심 외출해서 응가를 하면 어떻게 씻겨줘야 하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푸짐하게 미리 숙제를 해 주다니 땡큐였다. 물론 분유만 먹던 예전에 비해서 지금은 물똥이 아니라 어른처럼 똥덩어리가 나오니까 닦이기가 훨씬 수월하겠지만, 그래도 밖에서 싸면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아무래도 쇼핑몰처럼 유아휴게실이 따로 있는 곳이 아니라면 남들 손 씻고 양치질하는 세면대에서 씻기기에도 눈치가 보일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똥덩어리 버리고 물티슈로 엉덩이만 좀 닦아주는 지금이라면 몰라도, 분유 먹는 아기 데리고 외출했다가 응가를 맞닥뜨린 부모는 어떻게 해야 맞는 걸까? 그 무렵 아기 똥은 거의 설사 같은 형태라서 도저히 물티슈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 피부가 연약해서 물티슈로만 대충 닦고 나면 금방 발진이 생긴다고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면대에서 닦아주면 잔뜩 욕을 먹게 될까? 맘충이라느니, 그런 말을 들으면서? 만약 그렇다면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반드시 누군가는 핀잔을 주리라는 예감이 들어서 더욱 마음이 답답해진다…….


아무튼 미리 숙제를 해 준 아이 덕분에 조금은 마음 편하게 지하철역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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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역까지 세 정거장이면 가니까 차라리 아기띠로 데려가는 게 편하려나 싶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유모차를 끌고 가기로 했다.


동네 카페를 몇 번 아기띠로 데려가봤는데, 의외로 아이를 아무데에도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귀가할 때까지 줄곧 아기띠로 함께 붙어있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어른 의자나 테이블에 내려놓으면 굴러떨어지고, 아기 의자가 있는 카페는 프랜차이즈 뿐이었다. 집 근처라면 모를까, 옆옆 동네까지 다녀오면서 8kg이 훌쩍 넘는 아이를 계속 안고 다닐 수는 없었다.


유모차를 가져갔더니 짐도 이것저것 편하게 담아갈 수 있다는 장점이 또 있었다. 여차하면 갈아입힐 옷도 두 벌이나 더 챙기고, 아이 추우면 둘러줄 천기저귀라든지, 혹시라도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을 일이 생기면 깔아줄 수 있는 담요도 짐칸에 넣어두었다. 아기띠였다면 이미 10kg을 들쳐메야 하니까 짐도 최소한으로 가져가려고 했을 텐데, 아기 데리고 조금이라도 멀리 외출할 때는 역시 유모차 쪽이 마음도 훨씬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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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를 돌돌 밀면서 구의역 엘리베이터를 탔다. 구의동에 살게 된 지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구의역에서 엘리베이터 탄 것은 처음 같았다. 할아버지 두 분과 같이 탔는데, 그 중 펜던트를 목에 걸고 계시던 분께서 아이에게 말을 거셨다.


“똘망-똘망하게 생겼네, 허허. 이 나라를 잘 부탁합니다.”


루나는 그 말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길에서 만난 노인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처음 보는 어린 아기에게, 본인이 몸 담고 지내던 조국을 잘 부탁한다니. 미래라든지, 청년기를 보낼 루나의 모습이라든지, 그 즈음이라면 방금 루나에게 남긴 말만을 뒤로 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그 할아버지라든지, 그리고 그 모든 미래를 떠올려 봤을 노인의 마음가짐이라든지,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막상 2층에 내려보니, 2층은 대합실이고 3층이 승강장이었다. 순전히 평소에 표 찍던 층인 대합실에 내려야 개찰구를 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성급하게 2층에 내려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은 2층에 내리고 나서야 알아챘고, 엘리베이터는 이미 떠난 뒤였다. 개찰구도 개찰구지만, 3층 승강장으로 가려면 계단을 이용할 수가 없으니 어차피 또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걸……?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닫히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었기에, 기다리려면 한참이 더 걸렸다. 상향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다시 올 동안 대합실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한 바퀴 돌았다. 이 참에 루나한테 지하철 역 구경도 시켜주는 셈 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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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으로 갈 때는 한 노부부가 말을 걸어왔다. “아들이죠?” “네.” “딱 그런 것 같네. 머리숱이 어쩜 이리 많은지.”


그런데 여자분께서는 “또 낳아요?”라고 밑도끝도 없는 질문을 하셨다. 아니라고 하면 ‘두 명은 낳아야지!’라는 핀잔을 들으려나? 그렇다고 해서 냅다 ‘네’라고 할 수도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옆에 계시던 남자분께서 “뭘 또 낳아, 하나만 낳으면 됐지~”라고 하셨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예전 같았으면 ‘쳇 아이를 낳아서 누구 자유를 박탈 당하라고’ 하면서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을 이야기였다. 혹은, 반발심을 꾹꾹 누르느라 혼자 화를 삭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이만한 행복이 없었다. 물론 육아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척 고된 노동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없었더라면 평생 모르고 살아버렸을 뻔한 특별한 경험들이 한껏 농축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토록 행복을 주는 선택이, 어째서 자유의 족쇄라거나 가부장적 구시대의 유물 같은 일로 간주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버렸을까? 어쩌면 그것은 과거에 나쁜 전례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낳아서 단란한 가정과 아이가 주는 행복을 잔뜩 누리고 사는 사람들보다, 여성의 꿈과 개인으로서의 삶을 착취함으로써 운영되는 가족 형태가 많았던 탓은 아닐런지.


요즘 딩크족이 많아지는 이유는 그게 아니었을까? 불행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아온 자녀 세대가 ‘저것은 뭔가 좀 이상하다’며 문제의식을 가진 채 현시대의 어른이 된 것은 아닐지.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본인의 삶을 강탈당한 여성들이 딸들에게 “너희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 하고 한숨 섞인 조언을 해주었기에 지금의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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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타기 전부터, 아이에게는 일찌감치 치발기를 장난감으로 주고 있었다. 대신에 그냥 주면 무조건 떨어뜨리니까 실리콘 끈을 유모차 벨트에 묶어주었다.


그랬더니 실리콘 끈까지 치발기가 되어서, 아이는 치발기와 끈을 번갈아 잘근잘근 씹으며 유모차 라이딩을 즐겼다. 즐겼다기에는 표정이 신나 보이지는 않았으니, 그냥 ‘움직이는 유모차에 태워져 있었을 뿐’이라고 하는 편이 맞으려나?


인생 첫 지하철을 타면서도, 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인상을 쓰며 창 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도 좀 신기할 테니까, 눈이 동그래지거나 두리번거릴 줄 알았는데. 가만히 앉아서 그저 휙휙 바뀌는 창 밖 풍경을 지켜보는 모습이 마치 어른 같았다.


가끔 아랫 입술을 쫍쫍 빨기도 했는데, 그 소리가 마치 혀를 끌끌 차는 것처럼 들렸다. “쯧, 이렇게 어린 나를 데리고 성수동까지 가다니. 엄마한테 맞춰주기 쉽지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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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역에 내렸다.


다행히 구의역에 타자마자, 어떤 친절한 여성분께서 이 쪽에 앉으라며 자리를 내어주셔서 편하고 안전하게 올 수 있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다른 동네에 온 셈이었다. 하남 스타필드라든지 옆 동네 소아과 같은 곳에도 가보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차를 타고 갔던 케이스니까 좀 다르게 느껴졌다. 대중교통 타고 엄마랑 첫 나들이하는 동네로 성수동이라면 꽤 힙하잖아?


돌아다녀보니, 뚝섬역은 엘리베이터를 두 번 타야 했다. 3층 승강장에서 2층 대합실로 내려오고, 2층 대합실에서 1층 바깥으로 나가는 엘리베이터를 다시 찾아야 했다. 당연하게도, 헤맸다. 3층에서 2층으로 내려왔는데, 지상으로 내려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바로 보이지 않았다. 대합실 이 쪽 끝으로 갔는데도 없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면 진짜 안되겠지?’ 하고 살짝 고민하다가 다시 저 쪽 끝으로 가서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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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성수동은 산책하기 정말 좋았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솔솔 불고, 흡연자는 전자담배를 길빵하고……. 이렇게 힙한 동네에도 흡연자는 있구나. 아무튼 아이를 데리고 성수동을 오다니, 신기했다. 원래 내게 성수동이란 주말에 원데이 클래스 요가를 들으러 오거나 남편이랑 커피 한 잔 하러 오는 동네였다. 그런데 이렇게 조그맣고 꼬물꼬물하는 아기를 데리고 오다니!


어쩌면 아이가 만7개월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 같기도 했다. 예전에는 수유텀 자체가 3시간보다 짧은데다가 그마저도 이따금 들쑥날쑥하곤 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무조건 분유 한 통과 끓인 물 같은 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녀야 했기에, 소아과처럼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외출이 아니고서야 그런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까지 시도때도 없이 배가 고파질 일은 없으니, 4시간 정도의 여유는 챙길 수 있었다.


일전에 어떤 분이 아기 데리고 세계여행을 다닌 이야기를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분은 두 돌 전부터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로 여기저기를 다니셨다. 그래서 책에는 여행지에서 이유식을 데우거나 분유물을 구하고, 아기 침대를 호텔에 요청하는 등 현지에서의 육아와 관련된 팁들이 많이 적혀 있었다. 책을 읽을 때는 ‘아휴 읽고만 있어도 무척 번거롭네……’ 하고 말았는데, 어느새 내가 활동반경을 점차 늘려가고 있었다.


이번에 집 근처 카페에서 성수동까지 넓혔으니, 앞으로 나도 조금씩 더 멀리 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유모차를 밀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비행기 타고 해외로도 가능할까? 아니, 일단은 국내부터 어떻게 해봐야겠지.


회사 동료인 민트 엄마는, 민트가 지금의 루나보다 훨씬 어렸을 때부터 아기띠 둘러메고 대전을 다녀오기도 했다고 했다. 민트 엄마는 아기띠, 나는 유모차, 이렇게 서로 각자의 주 무기가 만들어지고 있구나. 그 때 민트 엄마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도 아기띠로 여기저기 다녀볼까 했는데, 아이가 팍팍 무거워져서 계획을 수정했다. 역시 육아는 모든 가정에서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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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을 걷고 있자니, 마치 날씨 좋은 날의 유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오고 축축한 날 말고, 햇빛 쨍쨍하고 쾌청한 바람이 부는 날의 유럽.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전 기온은 13도, 낮 최고기온은 21도였다. 13도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저기온이 20도였던 것 같은데. 날이 좀 추워져서 아이에게는 두껍지 않은 소재의 긴팔, 긴바지를 입혀주고 나왔다. 여기에 양말도 신겨주고 턱받이도 해줬더니, 모자만 안 썼지 목도리까지 두른 차림이 되었다. 그늘에 들어가면 바람 불면서 약간 쌀쌀하되, 이따금 햇빛 있는 곳에 들어서면 ‘좀 더우려나?’ 싶은, 이 정도 옷차림이 딱이었다.


길거리에는 스타트업이나 IT 회사를 다닐 것 같은 차림의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복장은 후드티처럼 편한 옷들인데, 목에는 사원증이 걸려 있고 삼삼오오 커피를 들고 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은 틀림없는 직장인이었다. 1시가 조금 넘었으니, 아마 늦은 점심을 먹고 돌아다닐 때려나? 성수동에 오면 때때로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간접체험에 기분전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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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좋았는데, 카페를 결국 못 찾아서 성수중학교까지 가버렸다.


지도에 가고 싶은 카페를 찍기는 했지만, 내심 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하면 들어가고 싶어서 예전에 왔던 골목을 걷고 있었다. 지난번에 혼자 왔을 때 분명 입간판에 ‘유아 동반 환영’이라고 적힌 카페를 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 쪽 끝까지 갈 동안 그 때 봤던 까만색 입간판이 보이지가 않았다. 대체 언제 그 카페가 나오는 거람?


이대로라면 지난번처럼 성수중학교 근처의 ‘클레멘타인’ 카페를 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진짜로 성수중학교가 나와버렸다. 하지만 ‘클레멘타인’ 카페는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고 있는 듯한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 틈바구니로는 도저히 유모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유모차를 가지고서 이렇게까지 역에서 멀리 떨어진 카페를 갈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기억 속의 입간판은 지워버리자. 그리고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맨 끝에, 네이버 지도에 찍어뒀던 ‘마일스톤 커피’를 드디어 찾아냈다. 지도가 있는데도 어렵사리 찾아내다니. 아이는 점차 2시간의 깨시 한계에 도달하고 있어서였는지 유모차에서 칭얼댔고,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아이에게 말했었다. “미안해, 엄마가 길치라서 아직 찾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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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관문인지, 카페 입구의 단차가 높았다.


이런! 리뷰에서 직원분들이 유모차를 들어주셔서 감사했다는 둥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진작에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게다가 카페 내부도 좌석이 엄청 널찍널찍 떨어진 게 아니라서 자칫하면 유모차가 통행을 방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우려가 들었다.


혹시나 해서 바로 옆의 카페를 기웃거렸다. 다행히 단차가 높지는 않았지만, 카운터가 너무 안쪽에 있었다. 멀찌감치 문 앞에 서서 “저기요! 유모차 들어가도 되나요!” 하고 외칠 수는 없었다. 더불어서, 그렇게 외쳤다가 “안되는데요!”라는 대답을 받을까 두렵기도 했다. 유모차의 진입 가능 여부라니, 이 또한 예전에는 외출 시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변수였다.


갈팡질팡하며 ‘마일스톤 커피’ 문간을 서성이다가, 용기를 내서 직원분께 여쭤봤다. “혹시 유모차 가지고 들어가도 되나요?” 다행히도, 직원분들께서는 흔쾌히 “네! 편하신 자리 앉으세요”라는 대답을 해주셨다. 그분들께서는 아셨을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 한 마디가 마치 한 줄기 빛 같았다.


카페 단차는 유모차의 진입이 아예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딱 ‘불가능……까지는 아닐지도?’ 하는 수준으로 높았다. 혼자서 낑낑대고 있었더니, 감사하게도 길 가던 어떤 여성분께서 유모차 드는 것을 도와주셨다. 심지어 나갈 때도 한 여성분께서 도와주시고는, “애기 진짜 귀엽다~” 하고 옆의 친구에게 감탄사를 외치며 가셨다. 세상에, 착한 사람들은 아직 정말 많았다.


다음에는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때 건넬 수 있는 작은 선물을 가지고 다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과자가 좋을까? 커피 과자 같은 건 받는 입장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을 텐데. 아차, 과자는 바스라져서 안되겠다. 그럼 사탕? 에이, 요즘에 사탕은 잘 안 먹지. 그럼 뭐가 좋을까?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선물이라면 물티슈나 부채가 많았는데. 그래도 물티슈는 판촉물의 대명사지, 작은 답례로는 좀 그렇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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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들어서자, 아이는 품 안에서 온통 두리번거리며 매장 내부를 구경했다. 서로 마주보는 자세로 안아서 살살 돌아다녀줬더니, 천장에 뭐라도 있는지 허리를 뒤로 꺾어가며 구경에 열중한 모습이었다. 천장도 보고, 왼쪽도 보고, 오른쪽도 보고, 그러다 엄마도 한 번 쓱 보고. 그런데 엄마는 왜 보는 거지?


세상에 태어난 지 반 년이 조금 넘은 작은 사람에게는 신기한 물건들 투성이였다. 로스팅 기계나 서비스 테이블의 장식품 같은 것들은 어른이 봐도 신기한데, 아기에게는 얼마나 신기할까. 아이스 플랫 화이트를 한 잔 들고 와서도, 음료에 얼음이 짤랑짤랑 하는 소리가 신기했는지 자꾸 잡아보려고 했다. 그러다 다시 치발기를 주면 또 치발기를 잘근잘근 씹거나 탁자에 내리치려고 하면서 잘 놀았다.


탁자를 탕탕 내리치는 소리만 아니었다면, 이 가게에 아기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이는 조용히 자기 몫의 카페 놀이를 했다. 이렇게 잘 놀 줄 알았으면 티라미수도 하나 시킬 걸 그랬다. 원래 티라미수가 맛있대서 왔는데, 만드는 즉시 조리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에 단념해버렸다. 커피는 몰라도, 그렇게 정성껏 만든 티라미수라면 아이가 혹여나 울음보가 터졌을 때 남기고 갈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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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띠에 아이를 품고 카페 앞 골목을 천천히 걸어다니기도 했다. 여느 때처럼, 성수동에는 서울 전역의 힙스터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나만 편하고 후줄근한 작업복 티셔츠 차림이었다. 길가에는 정체 모를 팝업 스토어도 꽤 많았다. 어떤 곳은 온통 화려한 폰트의 영어로만 간판이 적혀 있어서 도대체 뭘 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영문학과를 나와도 이럴 때는 쓸모가 없구만…….


그래도 평일이니까 망정이지, 주말 이 시간대였다면 인파에 휩쓸려서 이런 느긋한 산책은 절대 불가였을 것이다. 산뜻한 공기와 맑은 하늘, 그리고 아기를 품에 안은 채로 여유로운 걸음이라니. 아이에게, “루나 덕분에 엄마가 평일에 성수동 산책도 하네. 고마워~”라고 얘기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아이는 피곤했는지 금방 잠이 들었다. 안내방송에, 전철 소리에, 열차 내부가 진짜 시끄러웠는데 신기하리만치 새근새근 잘 잤다. 나는 대중교통이라면 지하철부터 버스, 택시, 비행기를 가리지 않고 잘 자는데, 이런 면은 엄마를 닮은 건가?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정말정말 귀여웠다. 까맣고 가지런한 속눈썹, 짱구같이 둥글둥글한 볼따구, 도자기 인형같이 뽀얀 피부, 날 때부터 본인 의지와는 무관하게 새까만 머리숱. 세상에, 이렇게 귀여울 수가. 이제 이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또 갈 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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