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26일
(전편에 이어서…)
낮잠 연장을 해주러 갔다가 마주친 뜻밖의 토사물.
토사물 양이 꽤 많아서 놀랐지만,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이 얼굴에도 토사물이 묻어 있었다. 평소에 엎드려 있다가 힘들면 바닥에 얼굴을 파묻던데, 아마 이번에도 토하고 나서 그랬던 것 같았다.
바로 아이를 들고 세면대로 갔다. 조금 닦으려 했더니, 아이는 세면대에서도 토를 했다. 손등을 타고 토사물이 흘러내렸다. 토를 더 해야 시원하려나 싶어서,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여주었다. 앞보기로 안아주면서 아이의 갈비뼈 쪽을 잡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 배가 음식을 토해내기 위해 꿀렁이는 게 느껴졌다.
아이는 옷에도 잔뜩 토가 묻었다. 본인도 속상한지 울었다. 대강 닦아주고, 거울을 보여주며 애써 기분을 풀어주려 짐짓 괜찮은 척 웃어주고 말을 걸어주고 했다. 다행히 아이는 울음을 금방 멈췄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하는 표정이었다. ‘아니 지금 이렇게 토를 하고 있어서 큰일 난 줄 알았는데, 엄마가 웃고 있네……. 심각한 게 아닌 건가? 그래도 토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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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는 끝났지만,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뭐부터 해야 하나? 일단 옷을 벗기고……. 씻기긴 해야겠다. 옷을 어디서 벗기는 게 좋지? 기저귀 갈이대는 이따가 물기 닦아줄 때 써야 할 것 같고. 알집매트에서 벗겨줘야 하나? 그러면 매트에 토사물이 묻을 텐데. 에구, 그게 무슨 대수람. 이따가 물티슈로 닦지 뭐.
남편도, 친정 어머니도, 아무도 없이 혼자 있는 날이었다. 혼자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하지만 누군가가 함께 있었다면 발생했을 ‘의논’이 없었기에, 오히려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봐서 판단하고 그대로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어쩌면 차라리 지금 이 상황이 나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누가 곁에 있었다면 나는 “헉 어떡해 내가 뭐 잘못했나봐 이제 어쩌지 이렇게 하면 되나” 하면서 우왕좌왕했겠지.
알집매트에서 아이 옷을 벗겨줬다. 그리고 슈너글에 미지근한 물을 받아서 통목욕을 한 번 시켜줬다. 물 온도를 36~38도 사이로 맞출 여력이 없어서, 31도에 만족하고 아이를 욕조에 앉혀주었다. 스키나 베브 비눗물도 풀어주고, 고무 오리도 넣어주었다. 평소에는 물장구 치면서 놀기를 좋아했는데, 멀뚱히 오리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내가 지금 왜 여기서 목욕을 하고 있지?’ 하는 듯 어리둥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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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물기를 닦아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 주었다.
깨끗해진 아이를 슬링에 태우고서 뒷정리를 했다. 아이 방에 들어가 이불을 방 밖으로 걷어냈다. 이게 계속 범퍼침대 안에 있으면, 30분밖에 못 자고 일어난 아이의 이후 일과가 아무것도 진행이 안 된다. 저걸 어떻게 세탁할지는 나중에 생각하자.
그런데 토사물이 많아서 그런지, 이불 아래에 물기가 남아 있었다. 범퍼침대 바닥을 물티슈로 세 번 닦았다. 매트리스가 아니라서 슥슥 닦으면 그만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슬링에 안겨있는 아이에게 말했다. “야아 너 엄마가 이런 거 얼마나 잘 닦는지 아니?” 하고서. 그랬더니 그 말에 오히려 내가 힘을 얻었다. 그 멘트에는, ‘이거 다 내가 수습할 수 있는 일이고, 다 괜찮아’라는 속뜻이 담겨있는 듯 했다.
깨끗한 시트로 바꿔주고, 아이를 마저 재워주기 위해 슬링에 태운 채로 흔들어줬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시트를 총 세 장 준비해두어서 다행이었다. 이 난리가 있었지만 아직도 한 장의 비축분이 더 남아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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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슬링에서 잠들고서도 한 20~30분쯤 더 안아주다가 슬며시 침대에 눕혀주었다. 계속 안아서 재워주기에는 뒷정리할 것도 많았고, 이 이상 슬링으로 안아주고 있다가는 허리가 뒤틀릴 게 분명했다. 20분이면 모를까 1시간 정도라면 바닥에서 재워야겠지.
그런데 눕히자마자 잠시 후에 아이가 눈을 살며시 떴다. 그리고 뒤집었다. 평소처럼 뒤집어서 자려나 싶었던 순간, 토했다.
아까와 같이 아이를 데리고 세면대로 가서 또 씻겨주었다. 다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마지막 남은 깨끗한 시트를 깔아서 재워줬다. 처음이야 경황이 없었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능숙해져버리고 있었다.
두 번이나 게우다니. 그런데 두 번 모두 당근스틱이 하나씩 토사물에 같이 나왔다. 굉장히 유력한 범인이었다. 확정할 수는 없으니까 용의자라는 표현이 맞나? 아무튼 너무 무르게 익히면 손에서 으스러지고, 그게 아니면 으깨지지 못해서 덩어리째 삼켜지는구나. 아니 대체 어느 정도로 익혀야 하는 거지?
그나저나 이 정도면 다 나왔을까? 아직 뱃속에 남아있는 당근스틱이 있을까? 두 번이나 게웠는데? 하지만 내 직감은 50%의 확률로 한 개가 더 남아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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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아이를 재워주고, 침대에 눕혔다. 이번에는 눕혔더니 오른쪽으로 돌아누워서 한동안 잘 잤다.
뒷정리를 하러 밖으로 나왔다. 슈너글에는 미지근한 물이 담겨 있었다. 자그마한 욕조에 고무 오리가 둥둥 떠 있는 풍경이 너무도 앙증맞았다. 그리고 그 작은 욕조의 작은 주인이 겪었던 일이 떠올라 슬퍼졌다. 하지만 당장 급한 쪽은 욕실보다는 침대 시트였다. 오염도 오염이지만 왠지 빨리 널어놓아야 할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침대 시트를 애벌빨래하고 세탁기에 돌려놓은 다음, 냉장고의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시판 죽 < 엄마표 죽 <= 큐브 < 토핑 < 아이주도’
그리고 ‘큐브’와 ‘토핑’ 밑에 밑줄을 그었다. ‘아이주도’에는 물결 표시와 함께 ‘보류’를 적었다. 이제 와서 아이주도 이유식을 그만두면 어쩐지 낙오자가 되는 기분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면 전혀 그럴 일이 아니었다. 큐브 만들어서 토핑으로 주는 것만 해도 지극정성이었다. 게다가 그마저도 과연 시판 이유식에 비해 절대적으로 더 좋다고 할 수가 없었다. 시판이 오히려 여러가지 재료를 맛보게 해줄 수도 있으니까.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흘끗흘끗 보던 홈캠에서 아이가 소리 한 번 지르면서 하늘을 봤다가 다시 돌아누워 잠들었다. 아니, 30분밖에 못 잤는데, 벌써? 아까도 30분만에 깼는데. 어쩐지 불안해서 살그머니 방에 들어가 지켜봤다. 그랬더니 역시나 금방 깨면서 엎드렸고, 머리맡을 바라보며 칵칵 토를 했다.
또 당근 조각이 나왔다.
(다음 화에 계속…)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Jonathan Pielm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