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31일
밥을 갈지 않는다.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밥을 갈지 않는 이유식이 독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다른 아기 있는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도 늘 밥을 가는 것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밥을 가느니 쌀가루를 사다가 만들면 편하다거나, 쌀가루를 살 때는 혼입이 될 수 있으니 뒷면의 알레르기 성분 표시를 살펴봐야 한다거나.
가장 최근에 얘기를 나눴던 친구는 이제 아기가 거의 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루나보다 2개월 정도 빨리 태어난 아기였다. 나는 요즘 맨날 쌀죽을 하면 이게 떡인지 죽인지 모르겠는 형태가 되어버린다고 하소연했다. 친구는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겠다면서, 자기는 이제 밥을 안 갈기 시작하니까 좀 덜 ‘떡’이 되었다고 했다.
“…… 그치만 나는 지금도 안 갈고 있는걸?”
얘기를 나눠보니, 내 문제는 너무 오랫동안 죽을 끓이고 있었던 탓인 듯 했다. 이유식 초기 때, 밥을 안 가는 대신에 밥알이 흐물흐물해지게 푹 쑤려고 건강죽 모드를 90분이나 돌리고 있었다. 그랬던 것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었으니, 물 양은 적어지고 오트밀은 많아진 상황에서는 떡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90분 대신에 60분만 쑤기로 했고, 후기 이유식 4배죽으로 넘어가면 45분 정도로 더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의 반응이 의외였다.
“복세편살 쩐다……. 밥 가는 거 진짜 일인데.”
순간, 복세편살이 무슨 뜻이었나 잠깐 기억을 더듬었다. 복세편살? 아아,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딱히 의식하고 살지 않던 단어였지만, 듣고 보니 내 인생 모토랑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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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세편살 엄마 탓에, 아이는 요즘 숟가락과 컵을 연습하고 있다.
원래는 나도 젖병에서 빨대컵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무슨 빨대컵을 쥐여줘도 액체를 빨아들이지 못했다.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릿첼 빨대컵을 써봐라’ 하는 조언을 듣고 그것도 구입해봤다. 뚜껑이 실리콘으로 되어 있어서, 가운데를 푹 누르면 컵 내부의 압력이 증가해서 빨대로 물이 졸졸 나오는 구조였다. 아이가 빨대를 물고 있을 때 뚜껑을 눌러주면, ‘아 빨대로 액체를 마실 수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고 했다.
릿첼 컵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빨대를 물어뜯기만 했다. 아니, 액체가 나오기까지 잠자코 물고 있는 게 아니라 한 1초 정도 물며 뿌리반사(여기서 왜?)를 보여주더니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어쩌다 그 1초를 잘 캐치해서 뚜껑을 꾹 눌러줬지만, 이건 무슨 빨대 이용법 안내가 아니라 입 안으로 물총 쏘기에 가까웠다.
그래도 매 끼니 해보면 언젠가는 빨대 사용법을 캐치하겠거니 싶어서, 이유식 시간마다 컵에 물을 받아서 내어줬다. 그랬더니 이제는 3~4시간마다 빨대 설거지를 해야 하게 생겨서, 릿첼 컵을 두 개 더 장만했다. 하지만 진전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아이는 빨대컵을 들이밀기만 해도 딴청을 피우거나 으르렁 신경질을 부렸다. ‘아니 대체 이게 뭔데 자꾸 들이미는 거야? 나한테 물이나 쏘고!’ 하는 듯한 눈치였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해는 되는 반응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빨대컵을 시도했건만 차도가 보이지 않자, ‘쓰지도 못하고 빨대 설거지만 맨날 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어쩌자고 식기세척기에 돌릴 수도 없는 ‘빨대’라는 아이템이 대표 육아템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을까?
모르는 척 그냥 식기세척기에 돌려버릴까, 남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해하고 있던 중에 이번에는 돌 지난 아기를 키우는 회사 동료로부터 카톡이 왔다. 슬슬 젖병은 떼어가고 있지만, 빨대 설거지가 엄청 나오고 있다는 말이었다.
‘빨대……. 연습에 성공해도 문제겠구나.’
그렇게 아이는 일반컵 연습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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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은 그렇다 치고, 숟가락은 조금 고민을 했다.
루나는 일찍이 6~7개월 무렵부터 핑거푸드를 주기 시작했었다. 당근스틱이든, 소고기 두부볼이든, 정말 잘 집어먹는 아이였다. 그러다 당근스틱을 하루에 연거푸 세 번 토하는 사건을 겪고 나서는 핑거푸드가 식탁에서 사라졌다.
소아과 선생님께서도 ‘핑거푸드 주려거든, 만9개월 되면 주세요’라고 하셨기에 마음도 홀가분했다. 요즘 트렌드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아과를 바꾸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최신 유행을 공부하고 따라가지 않더라도, 그러니까 옛날 방식이나 심지어 조금은 대충 주먹구구 식으로 키워도 상관 없다는 무언의 메세지를 받아오는 듯 해서 내심 좋았다.
아무튼 그렇게 만7개월과 8개월을 보냈는데, 이제 8개월 후반으로 접어드니 슬슬 고민이 시작됐다. 아아, 핑거푸드. 정말 재개해야 하나? 물론 하려면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해 봤으니까. 대강 어떤 메뉴들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급여하면 될 지 감은 잡혔다. 하지만 만들기가 너무너무 귀찮았고, 뒷정리 또한 너무도 번거로웠다. 하루이틀이면 모를까, 그걸 하루에 두 번씩 치우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스트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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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고, 찌는 큐브 이유식에서, 갈고, 빚고, 찌고, 굽고 하는 핑거푸드로 넘어가야 한다니.
심지어 처음에는 핑거푸드뿐만 아니라 큐브도 병행해서 만들어야 했다. 경험상 핑거푸드만으로는 충분히 먹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데다가, 때로는 ‘핑거푸드 말고 떠먹여 주세요!’라며 짜증을 낼 수도 있었다. 만드는 것도 품이 두 세 배가 들어가지만, 차릴 때도 매번 큐브랑 핑거푸드를 같이 데워서 내어줘야 할 일이었다. 스스로 먹는 연습을 시켜주기는 해야 하는데, 핑거푸드를 만들고 차릴 것을 생각하니 머리에 쥐가 났다.
그렇게 ‘숟가락을 연습시키자!’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물론 일반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숟가락이라니! 아까 그 고등학교 동창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기에게 숟가락을 가르치는 일은 마치 원숭이에게 가위 바위 보를 가르치는 것과도 같았다. 사용 방법은 고사하고, 아기 입장에서는 이런 번거로운 도구를 왜 쓰는지조차 이해가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핑거푸드는 귀찮았다. 그리고 듣자하니 서구권에서는 돌 쯤 되면 아이들이 숟가락을 꽤 능숙하게 사용한다고 했다. 얼마 전에 읽었던 <프랑스 아이처럼>이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문화적으로 다들 ‘원래 이맘때쯤이면 써야 하지 않아……?’라고 생각해서 연습을 시킨 결과 같았다. 그렇다면 원천적으로 발달단계상 인지능력이 못 따라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니, 어쩌면 희망을 걸어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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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걸어봤으나, 컵과 숟가락은 여전히 잘 쓰지 못한다.
그래도 조금씩 차도는 보이고 있다. 숟가락은 일단 퍼서 손에 쥐여주면 입으로 가져가 ‘앙’ 하고 먹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한 개 가지고 아옹다옹하지 말고, 2~3개를 마련해서 번갈아 주세요’라던 유튜브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서구권 영상을 찾아봤더니 실제로 아기가 연습하는 모습과 함께 설명이 나오는 게 많아서 도움이 되었다. 다소 사대주의적인 발언일 수도 있지만, 모유수유도 그렇고, 역시 육아하다가 실습 영상이 필요하면 영어로 찾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물론 그렇게 먹고서 다시 숟가락을 빼면, 움푹 파인 곳에 여전히 음식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 숟가락을 잽싸게 다시 입에 넣어서 윗입술로 훑어주게 도와주는 미세 조정이 필요하다. 지체했다가는 아이가 숟가락을 식탁에 팡팡 내리치기 때문에 밥풀이 여기저기로 날아갔다.
그런데 요즘은 숟가락 사용도 귀찮아졌는지, 음식을 퍼서 손에 쥐여주려고 하면 절대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손으로 식탁을 꽉 잡으면서 입만 쫙 벌린다. 그 모습이 마치, ‘그냥 먹여주세요……’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억지로 숟가락을 손에 쥐여주려고 하면 “흐에에엥……!” 하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알았어” 하고 먹여주면 웃으면서 먹는다.
그래, 어쨌든 사용 방법을 터득했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겠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어디니. 받아먹기만 하는 게 영 심심하다 싶어지면 언젠가 스스로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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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은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하면서 스무디를 갈아줬던 게 좀 도움이 됐다.
이 또한 외국 유튜브 영상들에서, ‘좀 되직한 퓨레나 스무디부터 주면 아기가 먹기 수월할 것’이라고 해서 따라한 결과였다. 사과 반 개, 딸기 5~6개, 바나나1개를 분유 120ml와 함께 갈았다. ‘골드메달리스트’라고 하는 그럴싸한 이름까지 있는 스무디였는데, 우유와 요거트를 분유로 대체한 버전이었다.
컵에 담긴 것이라면 물도 분유도 싫어하던 아이가, 스무디는 마셨다. 서툰 솜씨였지만 컵을 내려다보며 열심히 마셨다. 젖병을 빨 때처럼 컵을 턱으로 자근자근 씹으며, 틀린 방법이었으나 나름 본인이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사흘을 주고 나서는 분유를 35ml씩 담아줬고, 며칠 후에는 물을 담아줬다. 따로 계획한 바는 아니었지만, 지나고 나니 괜찮은 변화였다. 스무디 대신 분유를 준 것은 단순히 ‘스무디를 매번 갈기 귀찮아서’였다. 유축모유는 냉장할 경우 사흘까지만 보관하라고 하던 말이, 스무디를 갈고 사흘째 되던 날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한 번 만들어놓고 일주일씩 줄 수 없다면, 내 기준에서는 지속 불가능한 업무량이었다. 한편, 분유에서 물로 바뀐 것은 오로지 ‘분유를 따로 타기 귀찮아서’였다.
뭐어,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되니까……. 어쨌든 지금 아이는 종종 사레를 들리더라도 ‘호로록’ 하면서 컵에 든 물을 마시려고 하는 단계까지는 올라왔다. 물론 그마저도 여전히 보완이 필요하기는 하다. 어른처럼 고개를 들고 마시는 게 아니라, 아이는 컵의 바닥에 있는 물을 향해 고개가 점점 내려가면서 마시려고 노력 중이다. 게다가 본인이 컵을 들어보려는 낌새가 없어서 늘 내가 컵을 기울여주고 있다.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싶어서 천천히 기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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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컵도, 숟가락도, 꽤 괜찮은 수준으로 능숙해지려면 세 달은 걸릴 것 같다. 이유식도 만6개월부터 시작했으나 울지 않고 제대로 받아먹기까지는 두 세 달이 걸렸다. 그러니 ‘세 달의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그 중에서도 만8개월 초반까지는 ‘친해지길 바래’ 하는 수준이었으니까, 이 때까지의 기간은 ‘세 달’에서 빼야 할 것 같다. 식탁에 본인 숟가락을 올려주거나, 주구장창 컵에 물을 담아서 줘보거나, 그도 아니면 목욕할 때 컵과 숟가락을 치발기처럼 쥐여주거나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본격적인 연습은 만8개월쯤부터 시작했으니, 더하기 3을 하면 만11~12개월인 돌 무렵은 되어야겠구나 싶다.
한편으로는 컵과 숟가락을 다른 제품으로도 구매해볼까 하고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지금 쓰는 에디슨의 스스로 실리콘 숟가락은, 목넘김 방지 링이 있어서 샀지만 막상 써보니까 그 링에 자꾸 음식물이 껴서 아이가 깔끔하게 먹기 어려울 것 같았다. 외국 유튜브들에서 자꾸 광고하는 EZPZ의 숟가락을 직구로 사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이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컵도 마찬가지였다. 요즘에는 릿첼 빨대컵 대신에, 에디슨에서 나온 네모난 실리콘 컵을 쓰고 있었다. 원래는 텀블러처럼 홈이 파인 뚜껑이 있어서 샀는데, 컵 연습을 시키면서는 아예 뚜껑 없이 주고 있어서 그냥 ‘손잡이 달린 컵’으로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손잡이가 달려 있는 게 괜히 신경쓰였다. 이걸로만 맨날 마시면 나중에 손잡이 없는 컵은 못 쓰지 않을까 싶은 걱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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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금방 마음을 고쳐먹었다. 제품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집에 있는 숟가락과 컵으로 연습을 꾸준히 시키는 게 중요할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서구권의 어린이집들에서는 식기 종류에 그렇게까지 깐깐하게 굴 것 같지 않았다. 심지어 한 가지 제품으로 통일되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재고 부족하면 다른 제품으로도 자꾸 사서 여러가지 숟가락과 컵이 주방에 있을 테고, 애들이야 주는대로 받아서 먹겠지.
어린이집이라고 생각하고, 세 달 동안 연습을 시켜보자. 그렇게 생각했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수면교육을 하면서 ‘군사시설의 탁아소라고 생각해 봐’라고 스스로에게 얘기했던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과연 군사시설의 탁아소에서, 애들이 깰 때마다 한명 한명 찾아가서 다 달래줄까? 그러니까, 그런 환경에서도 애들은 적응하고 잘 자랄 테니, 너무 걱정 말고 수더분하게 키우자…….
그런데 만약 정말로 세 달이 꽉 차게 걸린다면, 나는 앞으로 9개월, 10개월, 11개월에도 여전히 아이에게 숟가락과 컵의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을 것이다. 한 달 동안은 숟가락으로 떠서 쥐여줘보고, 또 다음 한 달은 이유식을 떠서 가만히 흡착볼에 냅두고 알아서 가져가보라고 하고, 그 다음 한 달은 아이 손을 잡고 숟가락으로 음식을 퍼주고,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자 엄마가 밥 푸는 것 잘 봐’ 하고 시범을 보이는 등의, 그 일련의 과정을 매우 천천히 진행하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어느 세월에?’라는 물음이 떠올랐지만, 또 한편으로는 ‘돌 쯤이면 컵과 숟가락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니!’라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아니, 어린이집 가면 1세반에서 루나 혼자 빨대 없이 컵 쓰고, 본인 스스로 숟가락 쓰면서 밥 먹는 것 아니야? 아이 키우는 다른 친구들도 모두 놀라겠지?
……라는 희망적인 상상을 하며, 천천히 아이를 기다려주려고 한다. 그래야만 기다릴 수 있으니까.
* 사진출처: Unsplash의 Providence Douc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