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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 원짜리 아메리카노

줄리엣과 여행하는 법

by 구의동 에밀리

“우앗! 여기는 아메리카노가 7천 원부터야!”


줄리엣이 메뉴판을 보고 감탄인지 탄성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그, 너무 크게 얘기하는 거 아닐까? 사장님이 듣고 계실 지도 모르는데.”

“아? 좀 그런가? 그러면 있잖아……”


그러더니 내 귀에 대고 속닥거리는 줄리엣이었다.


“(7천 원이라니, 개. 맛. 있. 겠. 다.)”


그에 나도 속삭임으로 응수했다.


“(그런 건 그냥 말. 해. 도. 돼.)“


“아? 그렇지? 비싼 게 비지떡, 이 아니라 비싼 건 뭐라고 그러지? 비싼 거는 뭐가 없나? 암튼 비싸니까 맛있겠지! 난 이거! 온두라스 어쩌구!”


그렇게 줄리엣과 커피를 받아서 테이블로 돌아갔다.


“와아, 이것 봐! 컵부터가 예술인데? 이거 컵도 진짜 비싸 보여!”

“그러게. 그냥 머그잔이 아니라 컵받침까지 제대로 있잖아? 그림도 그려져 있고.”

“캬아! 빨리 한 입 마셔봐. 즥인다!”


커피에도 ‘즥인다’라는 표현을 쓰던가? 줄리엣의 발언은 들으면 들을수록 본명이 좀 더 토속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줄리엣이 뛰쳐나오겠네


“오, 그러네. 맛있다. 향도 되게 좋고. 산미도 적당하고, 딱 내 취향이야.”

“우와, 방금 되게 소믈리에 같았어! 커피도 소믈리에라고 하나? 아무튼 표현력이 고급지다! 커피 평소에 자주 마셔?“

“응. 원래는 안 그랬는데, 카페를 자주 가다 보니까 저절로 많이 마시게 됐어. 그리고 의외로 아메리카노가 제일 싸서 접근성이 제일 좋더라구. 어릴 때는 코코아 이런 것만 마셨는데.”


이 때는 이 말이 불씨가 될 줄 몰랐다. 줄리엣이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오오, 카페 가서 뭐 하는데? 일을 카페에 가서 하는 거야?”

“어, 나는 그러니까……”


둘러댈 말이 궁색했다. 지금으로서는 딱히 하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백수라고 얘기하자니 지금껏 쉬지 않고 일해온 날들을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카페 가서 하는 일이라고는 책을 읽거나 SNS에 일기 비슷한 글들을 쓰는 것 뿐이었다. 그럼 이렇게 말해도 되려나?


“난 작가야.”

“오, 멋지다! 그럼 집이 사무실이야? 아니다, 지금은 여행 중이니까 어쩌면 디지털 유목민? 엄청나게 멋지잖아! 그래서 카페도 많이 가는 거야? 이 동네만 해도 가 봤다는 카페가 많았잖아.”


왠지 불필요하게 지나친 오해를 산 것 같았다. 정정해야 하나 하고 잠시 고민했지만 그만두었다. 어쨌든 나도 언젠가는 책을 내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곤 했으니까. 게다가 어쩐지 줄리엣을 막아설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줄리엣은 이미 이래저래 감탄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래서 엉성한 답변이 나왔다.


“꼭 그래서는 아니구. 그냥 책 읽거나 멍 때리거나 하려고도 가. 물론 글 쓰러 많이 가기는 하지만.”

“진짜 멋지다! 나는 그런 재주가 없거든. 으응, 글쓰기라니, 뭐랄까 좀 정제된 표현을 해야 할 것 같고. 또 책도 많이 읽어야 할 것 같고!”

“책은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글쎄, 나 정도도 많이 읽는다고 할 수 있나......?”

“그럼 네가 쓴 글은 어디서 볼 수 있어? 아닌가, 온라인에는 안 올리고 책으로만 내는 거야?”

“아니, 음, 그 반대야. 그러니까 나는 책을 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웹상에 그냥 하고 싶은 말 하는 사람이랄까....... ”


나는 줄리엣에게 SNS 계정들을 하나둘 알려줬다. 그리고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이실직고했다.


“그, 보면 알겠지만, 굉장한 건 없어. 말했다시피 책을 내는 진짜 작가도 아니고.”


말을 하고 나니 후련했다. 그 짧은 사이에도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건 싫다. 정정이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었다.


“왜애, 내가 보기에는 근사한데! 이거 묶어서 책만 내면 될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 정도였으면 이미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거나 하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그런 수준은 아직 아니어서 그런가 보지, 뭐. 아무튼 그래서인지 나도 카페에 글 쓰러 가야지 생각할 때는 오히려 비싼 카페는 잘 못 가겠더라구. 7천 원짜리 커피를 파는 데에 가면 왠지 7천 원 어치 글을 써야 할 것 같고.“

“에엥, 이거 가격만 안 정했지 7천 원 어치는 하는 거 같은데? 우리 이렇게 한담 나누고 있는 걸 빵원이라고 셈 치면 더 그렇고!”

“대놓고 빵원짜리 대화라고 하다니, 어떤 면에서는 대단한걸.......”

“왜애, 우리가 지금 뭐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건 아니잖아? 캬캬! 암튼 출판사에서 연락이 안 오는 건, 내 눈에는 그게 더 이상해 보여. 내가 출판사 사장이었으면 당장 계약하자고 했겠다! 아니 봐봐, 여기 인스타 이 글만 해도 엄청 서정적이잖아? 아닌가? 내가 너무 문과적 감성이 결핍되어 있어서 그런가? 아니, 그런데 어떻게 보면 또 나같은 사람한테까지 이런 '와 멋지다' 하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는 건 그만큼 굉장하다는 뜻 같기도 하고?”


줄리엣의 칭찬에 민망함과 쑥스러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기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도 몰랐다. 고맙다고 하면 이 극찬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만 같아서 스스로 또 민망해지고, 아니라고 부정하면 줄리엣은 더 많은 찬사들을 늘어놓겠지? 그저 간편하게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너는 무슨 일을 해? 들은 적이 없네.”

“나? 으음, 나는, 그러니까...... 마법사!”

“마법사라고?”

“응! 마법사! 아니, 진짜 마녀는 내가 아는 다른 사람이 또 있으니까, 그런 마법사는 아니지만.”


이건 또 무슨 소리? 진짜 마녀는 또 뭐고? 어쨌든 줄리엣이 '진심으로 마법사'가 아니란 사실만큼은 알아들었다. 일단 잠자코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는, 말로 뭐든지 다 해내는, 그런 일을 한다 이 말씀이야! 진짜 신기하지 않아? 주문을 외우면 그게 짠 하고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거야. 그런데 그 주문이라는 게, 여러가지 주문들을 합쳐서 만드는 복잡한 주문일 때도 있어! 그렇게 복잡한 주문은 미리 나 같은 마법사가 만들어 놓아야 다른, 음, 머글? 푸하하! 그래, 머글님들이 쉽게 영창해서 쓸 수 있거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마법사면 마법사였지, 웬 부연설명이 이렇게 길어? 게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줄리엣은 '머글'이라는 대목에서 엄청 웃었는데, 그게 자꾸 떠오르는지 피식피식거렸다.


“너 그거...... 개발자야?”

“아 어떻게 알았지! 진짜 둘러둘러 말했는데!”

“굉장하네. 다른 사람들한테도 직업 소개할 때 이렇게 설명해? 알아듣는 사람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아? 직업 소개할 일이 그러고 보니 별로 없었네. 보통 어떻다, 라고 할 게 없군! 그래도 가끔 얘기할 때가 있으면 마법사라고 하긴 해. 근데 맞춘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보통은 내가 알려주고 끝나거든.”

“아니 그런데, 아까 디지털 유목민? 그거 멋있다고 하더니, 개발자야말로 대표 직업 아니야?”

“에잉, 개발자도 개발자 나름이지~ 난 그다지 음, 유목은 못하는 디지털 그냥 '민'이었어. 지금은 유목 말고 유랑 하니까 아직도 못했네! 푸하하~”


이건 또 왜 웃는 거지? 이런 직업 소개 처음이야…….


“그나저나 7천 원짜리 커피라서 그런지 진짜 맛있다! 너도 다 식기 전에 마셔봐. 아차, 디카페인 아니라서 좀 그런가? 아무튼 한사발 다 비우기 부담스러우면 절반이라두 먹어봐. 이거 지금 다 안 마시면 나중에 집에 가서 생각나고 후회하고 그런다?”


굉장히 어수선하고 알쏭달쏭한 대화. 하지만 같은 시간 동안 카페에 와서 소설을 읽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이 머리를 스쳤다. 웬만한 소설 같아서는 이 정도 흥미를 끌어낼 수 없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7천 원이 아깝지 않았다. 아니 그런데 정말 세상에 무슨 이런 개발자가 다 있담? 개발자가 아니라 마법사라고 해도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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