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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기성의 원리

줄리엣과 여행하는 법

by 구의동 에밀리


"우와! 냄새 최고다! 오늘은 진짜 네가 밥 해 주는 거야?"


문을 열어주자, 줄리엣이 감탄을 내뱉으며 입장했다.


"응, 맨날 사 먹고 다녔으니까. 한 번쯤은 집밥 먹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냄새부터 엄청나! 딱 봐도 맛있는 냄새? 지금 그 영화 속에 들어온 거 같애. 뭐더라? 그, 숲 속에서 밥 지어먹고 사는 거. 어떤 여자가 나오는데, 도시에서 맨날 편의점 도시락 같은거 먹다가 시골 내려와가지고."

"리틀 포레스트?"

"맞다, 그거!"


그러면서 줄리엣은 주방으로 들어왔다. 아차, 일부 독자들에게는 이 줄리엣이라는 친구에 대해 설명이 다소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소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는 해도 일단 읽기 시작한 입장에서는 등장인물에 대해 알고 싶어하게 되기 마련이니까.


그 전에 우선 본인부터 소개하자면, 나는 지금 다소 알려지지 않은 바닷가 관광지에 휴가 아닌 휴가를 떠나온 상태다. 그리고 휴가 중에 해변에서 우쿨렐레를 치다가 이 줄리엣이라는 친구를 행인 대 행인으로 만났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숙소까지 데려와 갈비찜을 해다 먹여줬고, 그 이후로는 함께 이 바닷가 마을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여행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 줄리엣이라는 괴짜 친구는 먹는 것에 굉장히 진심이었다. 주방을 둘러보더니 밥솥을 보고 다시 감탄했다.


"오오 그런데 이거 밥솥으로 만드는 거야? 대박이다. 난 밥솥으로 밥만 해 먹었는데!"

"밥솥이 원래 쌀을 찌는 도구니까. 웬만한 찜 요리는 이렇게 하는 게 더 편해. 청소하기 번거로워서 그렇지."

"헉! 밥이 쌀을 쪄서 만드는 거였구나? 그럼 지금은 밥 말고 뭐가 쪄지고 있는 거야?"

"찜닭."

"와아, 찜닭도 만들 수 있다니. 신기하다, 밥솥……. 어떻게 여기에 재료들을 넣기만 하면 찜이 되지? 원리가 뭘까?"

"글쎄. 비자기성의 원리 아니야?"


나는 '이번에는 내 차례다!' 하는 마음으로 줄리엣에게 아무 말이나 던졌다. 예전에 줄리엣이 나한테 겨자씨 괴물이 어쩌고 했을 때부터 벼르고 있었던 참이었다. 무슨 말인지 궁금한 독자를 위해 첨언하자면, 내게 농담 따먹기의 계기가 된 이 에피소드는 구의동 에밀리의 블로그 중 <겨자씨 괴물과 후작의 비밀> 편에 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줄리엣은 밥솥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혼잣말인지 뭔지 모를 말을 했다.


"비자기성의 원리? 그럴 지도 모르겠다!"


어라. 이런 전개를 원했던 게 아니었는데.


줄리엣은 분명 본인 입으로 자기가 개발자라고 했으니, 어쩌면 공학 관련된 기초적인 상식은 배웠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비자기성의 원리가 뭔지도 알 텐데, 그게 진짜 맞다고? 나는 정말 아무거나 떠오르는대로 던졌을 뿐이었다. 만약 아까 떠오른 단어가 '베르누이의 원리'였으면 '베르누이의 원리 아니야?'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밥솥은 쇠로 만든 내솥을 데워서 작동하는 방식이니까, 가열할 때 비자기성의 원리가 쓰일 지도 몰랐다.


다시금, 그러거나 말거나, 줄리엣은 흥얼거리면서 "찜닭, 찜닭~"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차!'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밥은? 밥솥으로 찜닭을 했으니까, 밥은 뭘로 지어?"

"햇반 먹으면 돼."

"에에에에엥 안돼애애! 나 밥솥 밥이 좋은데!"

"요즘에는 햇반도 잘 나와. 아니면 밥 짓는 데만 따로 30분 더 기다려야 해. 밥솥 하나밖에 없거든."

"힝, 그럼 어쩔 수 없지. 아아~ 지난번에 갈비찜 해줬을 때 밥 진짜 맛있었는데!"


하지만 막상 찜닭이 다 되었을 때는 그 아쉽다던 햇반을 팍팍 퍼먹는 줄리엣이었다. "와 요즘에는 즉석밥도 진짜 잘 나오는구나!" 하면서.


"근데 찜닭이 진짜 맛있다! 나 이런 건 집에서 만들어 먹을 생각조차 못 해봤는데. 이게 이렇게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는 거라니!"

"너도 할 수 있어. 레시피 인터넷에 치면 다 나와."

"엥 그래두~ 방법만 안다고 해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아? 글구 레시피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뭘 따라해야 할 지도 모르겠어."

"그럴 땐 음식 이름 앞에 '백종원'이라고 쳐. 백종원 찜닭, 백종원 갈비찜, 백종원 김치찌개, 이런 식으로. 무난한 맛으로 만들 수 이거든."

"천잰데? 그런 방법이!"


줄리엣은 흰 쌀밥을 한 숟갈 뜨더니, "아아 뜨겁다!" 하고는 후후 불어가며 먹음직스럽게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간장 양념이 잘 배어든 닭고기 한 점과 당근을 숟가락 위에 다시 올리고, 고소한 밥의 기운이 가시기 전에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듯이 냉큼 먹었다.


"우아우아 맛있다! 양념이 기가 막혀! 이것도 그럼 백종원 레시피야? 백주부님은 어떻게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뚝딱 하시는 걸까?"

"아마 내공이 쌓여서 그런 게 아닐까? 대강 이런 음식에는 이런 조합의 양념을 버무리면 맛있어진다, 그런 노하우가 있을 지도."

"호오, 신기하다. 그 조합을 다 외우고 있다니~"

"그래도 한식은 웬만하면 양념장이 크게 다르지는 않으니까. 간장, 고추장에다가 고춧가루, 설탕 정도? 여기에 이것저것 변주를 넣으면 되더라구. 맵게 하고 싶으면 고추장, 칼칼하려면 고춧가루 더 넣고. 감칠맛 돌게 하려면 식초 좀 더 넣어도 되고. 고소한 맛 낼 때는 참기름이랑 참깨 넣고 하는 식으로."

"와아, 진짜 살아있는 <리틀 포레스트> 주인공이잖아? 요리의 원리를 머릿속에 담고 다니다니, 굉장해~"

"처음에는 레시피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데, 몇 번 하다 보면 대강 익혀지더라구. 그러고 나면 레시피대로만 하는 것보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훨씬 요리도 재밌어져."


줄리엣과 요리의 원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줄이야. 이렇게 된 김에 밥솥의 비자기성의 원리에 대해서나 더 물어봐야겠다.


"그런데 아까 얘기했던 밥솥의 원리 있잖아. 사실 난 그냥 해 본 말이었는데, 비자기성의 원리가 어떻게 되는 거야? 나 밥솥으로 이것저것 많이 만드니까, 원리를 알면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글쎄? 나도 비자기성의 원리가 뭔지 몰라서 잘 모르겠네~ 자기가 아니라는 거 아닐까? 비자기성의 원리가 아니면 자기성의 원리겠지 뭐~"


그렇구나. 이번에도 그냥 한 말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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