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엣과 여행하는 법
줄리엣과 바닷가 마을을 산책하던 중,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치치직……. 남ㅇ…….”
소리가 들린 쪽을 보니, 좁은 골목길이었다. 한 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그래서인지 쓰레기도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아서 어두침침했다.
“엉? 왜, 저기 뭐가 있어?”
“아니, 무슨 소리가…….”
그 때, 문득 바람이 불더니 다시 아까 전의 이상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오싹했다.
“어? 나도 방금 들었어! 저기 골목에서 들리는 거 같은데, 너도 저거 말하는 거 맞지?”
“응. 아 쫌 이상하다…….”
바삐 걸음을 옮겨 자리를 피하려는데, 줄리엣은 나와는 달리 골목길로 척척 걸어갔다. 나는 저 소리로부터 최대한 멀어져서 느긋하게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바닷가 마을에는 여름의 축축한 공기 속에 바다 냄새가 은근하게 담겨 있었다. 게다가 멍게 비빔밥이라든지 성게알 미역국, 생선구이집처럼 바닷가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동네 식당도 많았다. 이렇게 구경할 거리가 많은데, 동행은 굳이 저 이상한 소리에 꽂히다니…….
“야, 너 어디 가?”
“아니~ 무슨 소린지 궁금한데.”
“으아, 그래서 찾으러 가는 거야?”
“엉 뭐 사람 잡아먹기야 하겠어?”
그러더니 좁은 골목길로 비적비적 들어가는 줄리엣. 어둡고 으슥한 골목에 아무렇게나 쌓인 물건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모습이 겁도 없어 보였다. 그 때 다시 바람이 불더니 치직거리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아! 이거다! 찾았어!”
줄리엣이 가리킨 것은 펭귄 모양의 장난감이었다. 뽀로로를 따라한 짝퉁 같았다. 머리에 헬멧을 쓰고 있었지만 헬멧 색깔도, 몸통 색깔도, 아니 결정적으로 디자인 자체가 애매했다.
줄리엣은 펭귄이 엎어져 있는 나무판자를 꾹 눌러봤다. 나무판자도 다른 쓰레기 더미 위에 위태롭게 얹혀있었기에, 톡 건드리기만 해도 휘청거렸다. 그리고 나무판이 흔들릴 때마다 펭귄이 살짝 구르면서 아까의 음산한 소리가 났다.
“으으, 역시 이상해…….”
“잠깐만, 다시 들어 보자아~”
줄리엣의 요청에 못이겨서 어쩔 수 없이 골목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남원ㅅ…… ㅇ친구……”
줄리엣이 나무판자를 건드리자, 다시 펭귄이 엎어진 채로 살짝 구르면서 소리가 났다.
“대체 저게 무슨 소리지?”
“뭘까 저거? 아아 헷갈린다~ 남원시 여진구? 남원시에 여진구란 데가 있나? 많이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여진구는 연예인 이름 아니야?”
“아 그래서 익숙했나? 남원시…… 애초에 남원시가 아닌가? 나만써? 나만써 이 친구? 저 펭귄을 자기만 쓰겠다는 건가?”
“으, 그게 더 오싹해! 진짜 악귀라도 들린 거 아니야? 악귀가 ‘이제 이 펭귄은 내 것이다’ 하고 말한다든지…….”
그러거나 말거나, 줄리엣은 자꾸 나무판자를 건드려보면서 소리를 다시 내보고 있었다.
“으아, 언제까지 할 거야? 글고 나는 저 펭귄이 뭐라고 하고 나서 그 뒤에 웃음소리 들리는 것도 더 거슬려…….”
“글쎄, 그냥 웃겨서 깔깔거리는 거 아니야? 남자가 뭐라고 하고, 친구들이 깔깔깔~”
“귀신 소리처럼 들리는 건 나 뿐이었구나.”
“흐응~ 친구들이 듣고 웃을만한 게 뭐가 있지? 흠흠~ 무슨 유행어인가? 유행어 아는 거 없어?”
“글쎄……. 너는 떠오르는 거 없어?”
“아니~ 난 티비 잘 안 봐서~ 유튜브도 그렇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일단 남원시 여진구는 절대 아닐 것이다. 나만써 이 친구? 나만쓰 이 친구? 나만써 여진구? 나만 쓰 여 친구? 아니, 잠깐 설마 이거…….
“‘나만 없어 여자친구’ 같아.”
“그게 무슨 뜻이야?”
“몰라. 원래는 누가 드라마에서 ‘나만 없어 고양이’라고 했던 게 밈이 됐는데, 그걸 저 사람이 ‘나만 없어 여자친구’로 바꿨나봐.”
“와 그럼 말이 되네! 뒤에 친구들이 막 키득거리는 것도 맞아 떨어지고~”
줄리엣은 겁도 없이 펭귄에 손을 뻗더니, 아예 집어들고 배가 위로 오도록 뒤집었다.
“봐봐! 여기 녹음 버튼이랑 플레이 버튼이 있거든? 펭귄이 배 깔고 구르면 플레이 버튼이 눌려서 계속 플레이됐나봐. 글구 원래 주인은 이거 녹음 막 하면서 친구들이랑 장난쳤나 본데?”
“그 애들 장난감을 가지고? 아무리 어려도 대학생은 된 것 같은 목소리였는데.”
“뭐, 해변 놀러 가면서 누가 쿠팡에서 챙겨왔나보지~ 근데 재밌다, 나도 해 봐야지!”
나는 아직도 저 펭귄에 뭔가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악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마구 만지작거리다가 아무데나 버린 걸 텐데. 일단 위생면에서 문제가 있지 않나? 하지만 줄리엣은 개의치 않는 듯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커피빈 하면 바닐라 라떼지! 바닐라 라떼 하면 커피빈일지는 몰라도~”
그리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펭귄이 기계음 잔뜩 섞인 목소리로 줄리엣의 말을 반복했다.
“커ㅍ빙 하ㅁ 바닐ㄹ ㄹㄸ지, 바늴ㄹ 라ㄸ 하면 컾-빈일지응 몰흐아토…….”
“새로 녹음해도 알아듣기는 어렵네. 애들 장난감이라 음질은 포기한 건가?”
“배터리 갈면 괜찮을까? 근데 이거 진짜 좀 재밌다! 편의점에서 배터리 팔려나? 뭐 사면 되지? AA? AAA?”
“아니 그보다, 정말 찜찜하지 않아? 누가 만졌는지도 모르는데.”
“에잉, 그냥 뭐 나같은 사람이겠지~ 근데 것보다 이거 배터리 교체하려면 뚜껑을 드라이버로 돌려야 하나봐! 드라이버까지 사고 싶진 않은데~ 아쉽게 됐어, 펭귄군!”
그러더니 줄리엣은 펭귄을 원래 있던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도 바닥면이 중심을 잃고 휘청이며 펭귄이 흔들렸다.
“커ㅍ빙 하ㅁ 바닐ㄹ ㄹㄸ지…….”
“이번 녹음이 더 이상해……. 게다가 왜 하필 커피빈에 바닐라 라떼야?”
“예전에 커피빈 갔는데, 뒤에 온 손님이 메뉴 고르다가 그런 말을 했거든. 커피빈 하면 바닐라 라떼라고. 그래서 알게 된 정보라구~”
“그거 정확한 정보 맞을까?”
“아? 그 생각은 안 해봤네! 오올 역시 똑똑해~”
사람이 건드려서 그런지, 펭귄을 받치고 있는 바닥이 전보다 쉽게 흔들리면서 펭귄이 작동됐다. 그럴 때마다 커피빈 어쩌고 하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저거 그냥, 이제 쓰레기통에 버리자.”
“원래 저기 있었는데?”
“정확히는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버린’ 셈이잖아? 게다가 저렇게 내버려두면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테고.”
“흐응~ 그래 알았어.”
줄리엣은 순순히 펭귄 장난감을 집어들고 나왔다. 근처에 쓰레기통이 없어서, 버릴 곳을 찾으러 어슬렁거리며 이런저런 한담을 나눴다.
“근데 너는 유튜브도 티비도 안 보면, 평소에는 뭐 해?”
“나는 그냥 책 보지~”
“책? 멋지네.”
책이라니, 솔직히 의외였다. 줄리엣이라면 “캬캬!” 거리면서 스케이트 보드를 탄다든지, 아니면 바닷가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자는 것 정도가 취미일 줄 알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줄리엣이 독서하는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평소에는 재잘거리다가 취미로는 잠자코 있는 방식으로 일상의 밸런스를 맞추는 걸까?
“책이 진짜 싸~ 봐봐 나 아까 얘기한 커피빈 바닐라 라떼만 해도 오천 원이 넘는다구? 그런데 한 잔 시켜놓으면 기껏해야 두세 시간 마시고 끝이야. 그치만 책은 한 권 사 놓으면 두고두고 읽지~”
“그건 그렇네.”
“전기세도 안 들고, 준비물도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리고 멋있잖아? 다들 스마트폰 보고 있을 떄 혼자 책 딱 펼쳐놓고 있으면, 크~”
나는 속으로 ‘전기세가 아니라 전기 요금이야’라고 고쳐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대답했다.
“글쎄 남들이 그렇게 신경을 쓸까……. 그래도 확실히 SNS 보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다. 나만 해도 요즘 여행 와서 한동안 안 보니까 왠지 마음도 좀 느긋해지고 그런 거 같아.”
“SNS 하는 사람들은 자기 화려한 모습, 행복한 모습만 올리니까. 그런거 계속 보고 있으면 ‘나도 저래야 할 것 같은데’ 하게 되는 거지, 뭐. 근데 나는 보고 있을 때는 괜찮은데, 보고 나서가 더 찝찝하더라구. 내 머릿속은 그 화려한 모습들에 기준이 맞춰져서 스마트폰을 껐는데, 화면 밖의 나는 아까 SNS 보기 전이랑 똑같이 멍떄리고 있었거든. 아 저기 쓰레기통 찾았다!”
줄리엣은 뛰어가서 펭귄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 쪽을 뒤돌아보더니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고는 슬렁슬렁 다가왔다. 다시 산책하는 바닷가는 어느새 노을이 지려고 하고 있었다. 아까의 말을 곱씹어봤다. 줄리엣이 독서예찬을 하다니, 일단 그 점에서부터 다소 의외로 느껴진 참이었다. 게다가 SNS를 남들 일상 눈팅하다가 끝나는 취미로 격하시킨 것도 신선했다. 확실히 남들 이야기만 읽는 것은 그다지 삶에 도움이……?
“어……. 그런데 있잖아.”
“엉? 뭔데?”
“책도 사실은 남이 쓴 것을 읽는 거잖아? 책 읽고 나서도 나는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독자 상태 그대로인 것도 마찬가지고. 기본적으로는 SNS랑 비슷한데, 어째서 책은 괜찮게 느껴지는 걸까?”
“그거는~ 책은 멋있잖아~”
“어?”
“책 읽고 나면 ‘내가 이 책을 읽었다!’ 하는 성취감? 그런게 있달까~ 게다가 아까 말한 것처럼 지하철에서 들고 있으면 되게 있어 보이고!”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계속 걸었다. 등 뒤에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쓰레기통에 들어있는 펭귄이 다른 쓰레기에 밀리면서 플레이 버튼이 눌린 모양이었다.
“커피빈 하면 바닐라 라떼지……”
정말인지 차라리 아까 멘트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줄리엣과 바닷가 마을을 산책하던 중,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치치직……. 남ㅇ…….”
소리가 들린 쪽을 보니, 좁은 골목길이었다. 한 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그래서인지 쓰레기도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아서 어두침침했다.
“엉? 왜, 저기 뭐가 있어?”
“아니, 무슨 소리가…….”
그 때, 문득 바람이 불더니 다시 아까 전의 이상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오싹했다.
“어? 나도 방금 들었어! 저기 골목에서 들리는 거 같은데, 너도 저거 말하는 거 맞지?”
“응. 아 쫌 이상하다…….”
바삐 걸음을 옮겨 자리를 피하려는데, 줄리엣은 나와는 달리 골목길로 척척 걸어갔다. 나는 저 소리로부터 최대한 멀어져서 느긋하게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바닷가 마을에는 여름의 축축한 공기 속에 바다 냄새가 은근하게 담겨 있었다. 게다가 멍게 비빔밥이라든지 성게알 미역국, 생선구이집처럼 바닷가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동네 식당도 많았다. 이렇게 구경할 거리가 많은데, 동행은 굳이 저 이상한 소리에 꽂히다니…….
“야, 너 어디 가?”
“아니~ 무슨 소린지 궁금한데.”
“으아, 그래서 찾으러 가는 거야?”
“엉 뭐 사람 잡아먹기야 하겠어?”
그러더니 좁은 골목길로 비적비적 들어가는 줄리엣. 어둡고 으슥한 골목에 아무렇게나 쌓인 물건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모습이 겁도 없어 보였다. 그 때 다시 바람이 불더니 치직거리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아! 이거다! 찾았어!”
줄리엣이 가리킨 것은 펭귄 모양의 장난감이었다. 뽀로로를 따라한 짝퉁 같았다. 머리에 헬멧을 쓰고 있었지만 헬멧 색깔도, 몸통 색깔도, 아니 결정적으로 디자인 자체가 애매했다.
줄리엣은 펭귄이 엎어져 있는 나무판자를 꾹 눌러봤다. 나무판자도 다른 쓰레기 더미 위에 위태롭게 얹혀있었기에, 톡 건드리기만 해도 휘청거렸다. 그리고 나무판이 흔들릴 때마다 펭귄이 살짝 구르면서 아까의 음산한 소리가 났다.
“으으, 역시 이상해…….”
“잠깐만, 다시 들어 보자아~”
줄리엣의 요청에 못이겨서 어쩔 수 없이 골목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남원ㅅ…… ㅇ친구……”
줄리엣이 나무판자를 건드리자, 다시 펭귄이 엎어진 채로 살짝 구르면서 소리가 났다.
“대체 저게 무슨 소리지?”
“뭘까 저거? 아아 헷갈린다~ 남원시 여진구? 남원시에 여진구란 데가 있나? 많이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여진구는 연예인 이름 아니야?”
“아 그래서 익숙했나? 남원시…… 애초에 남원시가 아닌가? 나만써? 나만써 이 친구? 저 펭귄을 자기만 쓰겠다는 건가?”
“으, 그게 더 오싹해! 진짜 악귀라도 들린 거 아니야? 악귀가 ‘이제 이 펭귄은 내 것이다’ 하고 말한다든지…….”
그러거나 말거나, 줄리엣은 자꾸 나무판자를 건드려보면서 소리를 다시 내보고 있었다.
“으아, 언제까지 할 거야? 글고 나는 저 펭귄이 뭐라고 하고 나서 그 뒤에 웃음소리 들리는 것도 더 거슬려…….”
“글쎄, 그냥 웃겨서 깔깔거리는 거 아니야? 남자가 뭐라고 하고, 친구들이 깔깔깔~”
“귀신 소리처럼 들리는 건 나 뿐이었구나.”
“흐응~ 친구들이 듣고 웃을만한 게 뭐가 있지? 흠흠~ 무슨 유행어인가? 유행어 아는 거 없어?”
“글쎄……. 너는 떠오르는 거 없어?”
“아니~ 난 티비 잘 안 봐서~ 유튜브도 그렇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일단 남원시 여진구는 절대 아닐 것이다. 나만써 이 친구? 나만쓰 이 친구? 나만써 여진구? 나만 쓰 여 친구? 아니, 잠깐 설마 이거…….
“‘나만 없어 여자친구’ 같아.”
“그게 무슨 뜻이야?”
“몰라. 원래는 누가 드라마에서 ‘나만 없어 고양이’라고 했던 게 밈이 됐는데, 그걸 저 사람이 ‘나만 없어 여자친구’로 바꿨나봐.”
“와 그럼 말이 되네! 뒤에 친구들이 막 키득거리는 것도 맞아 떨어지고~”
줄리엣은 겁도 없이 펭귄에 손을 뻗더니, 아예 집어들고 배가 위로 오도록 뒤집었다.
“봐봐! 여기 녹음 버튼이랑 플레이 버튼이 있거든? 이거 녹음 막 하면서 친구들이랑 장난쳤나봐.”
“그 애들 장난감을 가지고? 아무리 어려도 대학생은 된 것 같은 목소리였는데.”
“뭐, 해변 놀러 가면서 누가 쿠팡에서 챙겨왔나보지~ 근데 재밌다, 나도 해 봐야지!”
나는 아직도 저 펭귄에 뭔가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악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마구 만지작거리다가 아무데나 버린 걸 텐데. 일단 위생면에서 문제가 있지 않나? 하지만 줄리엣은 개의치 않는 듯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커피빈 하면 바닐라 라떼지! 바닐라 라떼 하면 커피빈일지는 몰라도~”
그리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펭귄이 기계음 잔뜩 섞인 목소리로 줄리엣의 말을 반복했다.
“커ㅍ빙 하ㅁ 바닐ㄹ ㄹㄸ지, 바늴ㄹ 라ㄸ 하면 컾-빈일지응 몰흐아토…….”
“새로 녹음해도 알아듣기는 어렵네. 애들 장난감이라 음질은 포기한 건가?”
“배터리 갈면 괜찮을까? 근데 이거 진짜 좀 재밌다! 편의점에서 배터리 팔려나? 뭐 사면 되지? AA? AAA?”
“아니 그보다, 정말 찜찜하지 않아? 누가 만졌는지도 모르는데.”
“에잉, 그냥 뭐 나같은 사람이겠지~ 근데 것보다 이거 배터리 교체하려면 뚜껑을 드라이버로 돌려야 하나봐! 드라이버까지 사고 싶진 않은데~ 아쉽게 됐어, 펭귄군!”
그러더니 줄리엣은 펭귄을 원래 있던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도 바닥면이 중심을 잃고 휘청이며 펭귄이 흔들렸다.
“커ㅍ빙 하ㅁ 바닐ㄹ ㄹㄸ지…….”
“이번 녹음이 더 이상해……. 게다가 왜 하필 커피빈에 바닐라 라떼야?”
“예전에 커피빈 갔는데, 뒤에 온 손님이 메뉴 고르다가 그런 말을 했거든. 커피빈 하면 바닐라 라떼라고. 그래서 알게 된 정보라구~”
“그거 정확한 정보 맞을까?”
“아? 그 생각은 안 해봤네! 오올 역시 똑똑해~”
사람이 건드려서 그런지, 펭귄을 받치고 있는 바닥이 전보다 쉽게 흔들리면서 펭귄이 작동됐다. 그럴 때마다 커피빈 어쩌고 하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저거 그냥, 이제 쓰레기통에 버리자.”
“원래 저기 있었는데?”
“정확히는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버린’ 셈이잖아? 게다가 저렇게 내버려두면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테고.”
“흐응~ 그래 알았어.”
줄리엣은 순순히 펭귄 장난감을 집어들고 나왔다. 근처에 쓰레기통이 없어서, 버릴 곳을 찾으러 어슬렁거리며 이런저런 한담을 나눴다.
“근데 너는 유튜브도 티비도 안 보면, 평소에는 뭐 해?”
“나는 그냥 책 보지~”
“책? 멋지네.”
책이라니, 솔직히 의외였다. 줄리엣이라면 “캬캬!” 거리면서 스케이트 보드를 탄다든지, 아니면 바닷가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자는 것 정도가 취미일 줄 알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줄리엣이 독서하는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평소에는 재잘거리다가 취미로는 잠자코 있는 방식으로 일상의 밸런스를 맞추는 걸까?
“책이 진짜 싸~ 봐봐 나 아까 얘기한 커피빈 바닐라 라떼만 해도 오천 원이 넘는다구? 그런데 한 잔 시켜놓으면 기껏해야 두세 시간 마시고 끝이야. 그치만 책은 한 권 사 놓으면 두고두고 읽지~”
“그건 그렇네.”
나는 속으로 ‘전기세가 아니라 전기 요금이야’라고 고쳐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대답했다.
“전기세도 안 들고, 준비물도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리고 멋있잖아? 다들 스마트폰 보고 있을 떄 혼자 책 딱 펼쳐놓고 있으면, 크~”
“글쎄 남들이 그렇게 신경을 쓸까……. 그래도 확실히 SNS 보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다. 나만 해도 요즘 여행 와서 한동안 안 보니까 왠지 마음도 좀 느긋해지고 그런 거 같아.”
“SNS 하는 사람들은 자기 화려한 모습, 행복한 모습만 올리니까. 그런거 계속 보고 있으면 ‘나도 저래야 할 것 같은데’ 하게 되는 거지, 뭐.
“그러게. 어쩐지 인스타 계속 보고 있으면 기분 좀 이상해지더라.”
“근데 나는 보고 있을 때는 괜찮은데, 보고 나서가 더 찝찝하더라구. 내 머릿속은 그 화려한 모습들에 기준이 맞춰져서 스마트폰을 껐는데, 화면 밖의 나는 아까 SNS 보기 전이랑 똑같이 멍떄리고 있었잖아. 아 저기 쓰레기통 찾았다!”
줄리엣은 뛰어가서 펭귄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 쪽을 뒤돌아보더니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고는 슬렁슬렁 다가왔다. 다시 산책하는 바닷가는 어느새 노을이 지려고 하고 있었다. 아까의 말을 곱씹어봤다. 줄리엣이 독서예찬을 하다니, 일단 그 점에서부터 다소 의외로 느껴진 참이었다. 게다가 SNS를 남들 일상 눈팅하다가 끝나는 취미로 격하시킨 것도 신선했다. 확실히 남들 이야기만 읽는 것은 그다지 삶에 도움이……?
“어……. 그런데 있잖아.”
“엉? 뭔데?”
“책도 사실은 남이 쓴 것을 읽는 거잖아? 책 읽고 나서도 나는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독자 상태 그대로인 것도 마찬가지고. 기본적으로는 SNS랑 비슷한데, 어째서 책은 괜찮게 느껴지는 걸까?”
“그거는~ 책은 멋있잖아~”
“어?”
“책 읽고 나면 ‘내가 이 책을 읽었다!’ 하는 성취감? 그런게 있달까~ 게다가 아까 말한 것처럼 지하철에서 들고 있으면 되게 있어 보이고!”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계속 걸었다. 등 뒤에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쓰레기통에 들어있는 펭귄이 다른 쓰레기에 밀리면서 플레이 버튼이 눌린 모양이었다. 멀어진 거리만큼 희미했지만 머릿속에서 펭귄의 멘트가 보정되며 단어들이 들려왔다.
“커피빈…… 바닐라 라떼…… 일지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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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돌돈> 구매 인증 이벤트, @minamhunmin 님의 ‘나만 없어 여자친구’ 키워드로 만든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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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miliemilie 계정을 태그해 주세요!
(스토리는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니, 작가가 놓치지 않게 알려주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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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거나, 슬프거나, 괴상하거나(?)
아무튼 당신의 키워드가 이야기가 됩니다!
- 이벤트 기간: 2025. 6. 3(화) ~ 6. 30(월)
- 소설은 인스타그램에 연재됩니다 (브런치에 차곡차곡 쌓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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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의 키워드가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
함께 놀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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