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 연금술 공방과 뜻밖의 방문객

0과 1의 애프터라이프

by 구의동 에밀리

연금술에 필요한 약초와 금속을 필드에서 잔뜩 구해다 온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파밍으로 넉넉히 재료를 구해온 터라, 공방에서 10연차로 무기 가챠를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단차와는 달리 10연차를 돌리면 확정으로 S급 무기가 뽑히고, 이걸 대장간에 내다 팔면 꽤 짭짤한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딜러였다면 이런 무기들을 당연히 본인이 장비해서 필드로 나갔겠지만, 연금술사인데다 평화주의자인 나로서는 강력한 무기보다는 돈과 돈으로 살 수 있는 광물이 더 필요했다.


그렇게 열심히 가챠를 돌리고 있었는데, 문득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익숙한 얼굴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 여기가 캐서린의 연금술 공방이라고 들어서 찾아왔어.”


“줄리엣? 여긴 웬일이야?”


“나, 연금술 제자가 되고 싶어.”


저기요, 절 몇 번 보셨다고 연금술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시는 것인지……? 아니, 이것도 일종의 퀘스트인가? 그렇다면 마땅히 진지하게 임해드릴 일이었다.


“연금술에 관심이 생겼어? 아니면 도서관 사서 일이 질렸다거나?”


“아니, 사서 일은 계속 할 거야. 거기에 재밌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연금술은 그냥 취미로 배워보고 싶어서.”


“취미 정도라면…….”


“아니아니, 취미라고 해서 대충 하겠다는 건 아니구우~ 그냥 너의 연금술 공방 영업과 경쟁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의미지.”


이것이 진정 인공지능 NPC의 언변인 것인가? 플레이어의 이해타산까지 고려하다니. 나는 남몰래 한 번 감탄하고 줄리엣을 제자로 받아주었다.


그 후로 줄리엣은 나의 연금술 공방에 종종 방문했다. 줄리엣은 착실한 학생이었고, 내가 각종 가챠를 돌리거나 밖에 나가 파밍을 해오는 동안 카운터를 지켜주는 일을 해주었다. 줄리엣은 그 보답으로 이런저런 연금술 두루마리의 사본들을 얻어가고, 나는 연금술 공방 영업시간을 늘려서 매상도 올릴 수 있었으니 상부상조였다.


게다가 사서 일이 널널한 것인지 아니면 작은 도서관이라고 해서 땡땡이를 치는 것인지, 줄리엣의 방문은 더 잦아져서 자연스럽게 내가 제일 친하게 지내는 NPC가 되었다.


‘토리엘…… 같네.’


나는 <언더테일>을 플레이할 때 만났던 토리엘을 떠올렸다. 다정한 토리엘. 내가 몇 번이고 죽였던, 나의 토리엘을.



(다음 화에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6) 켄타우로스와 선택받지 못한 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