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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켄타우로스와 선택받지 못한 자들

0과 1의 애프터라이프

by 구의동 에밀리

켄타우로스라면 북쪽 숲에서나 자주 출몰하는 고레벨 몬스터였다.


줄리엣은 공격 마법도, 방어 마법도 모른다고 했으니, 그 정도라면 한방에 훅 갈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줄리엣은 그저 멍청히 서서 몬스터를 바라봣다. 아니, 자세히 보니 멍청하다기보다는 흥미로워하는 표정이었다.


"호오, 이렇게 크고 실감나는 몬스터……."


미친 거 아니야? 두렵지도 않나? 혹시 NPC라서 몬스터의 공격이 안 통하는 건가? 아니지, 애초에 NPC라면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나는 겨우 친해진 NPC 한 명을 잃고 싶지 않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판단 하에 아카식 레코드에서 헬파이어를 꺼내 불덩이를 날렸다. 연금술사의 위력은 마법 지팡이가 아니라 이런 저장 장치에서 나온다.


켄타우로스가 사라진 자리에는 드롭 아이템이 하나 떨궈져 있었다.


"그건 뭐야?"


줄리엣이 물었다.


"켄타우로스의 창."

"오오, 멋지다! 엄청 쎄보이는데?"

"그러게. 내다 팔면 값이 꽤 나가겠어."


줄리엣의 말대로, 켄타우로스의 창 정도면 S급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엄청 쎈' 무기였다. 보통은 '켄타우로스의 발톱'을 떨어뜨리니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드롭이었다. 뜻밖의 등장이었지만 좋은 아이템을 건네주고 갔구나.


켄타우로스의 창을 인벤토리에 수납하고, 다시 평화로운 재료 채집에 나섰다. 줄리엣은 몬스터와의 조우는 그새 깨끗이 잊었는지 버섯 찾기에 열심이었다. 하긴, 아까 맞닥뜨렸을 때도 그다지 타격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래도 성인 남성 키의 두 배는 되는데다가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말로 된 우람한 몬스터였는데. 진짜 죽음이 두렵지도 않은 건가?


문득 '죽음'과 관련해 줄리엣이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러잖아도 궁금했으니, 이 참에 조금 더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 너희 마을에는 전설이 내려온다고 했잖아?"

"전설?"


본인이 얘기했으면서, 까먹었나?


"선택받은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삶을 시작한다며. 그 이야기."

"아아아아! 맞다, 그렇지!"


'맞다, 그렇지'? 무슨 반응이 저래……. 아무튼 이상한 녀석이라니까. 나는 대화를 이어갔다.


"너희 마을에서는 그러면, 선택받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은 죽고 나면 어떻게 된다고 믿어?"

"으음, 그러니까 당연히, 평범한 사람들은 새로 시작할 기회를 얻지는 못하지. 다만 세상의 어딘가에서 삶이 이어진다고 믿어.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죽음을 엄청 두려워하진 않아. 걱정 없이 현재를 살 뿐이야."


아, 그래서 아까 몬스터를 마주했을 때도 딱히 흔들림이 없었던 걸까? 하지만 줄리엣이 모르는 점이 하나 있었다. 넌 한주먹거리 NPC이고, 그러니까 조금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


입력창에 줄리엣에게 해야 할 말들을 적어내려갔다.


'사실 여기는 게임 속 세상이야. 너는 평범한 NPC고, 네가 죽으면 | '


여기까지 적었는데, 커서만 깜빡이고 키보드가 먹히지 않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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