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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 뭔가 잘못됐어

(연재) 이 참에 비상탈출!

by 구의동 에밀리
“나는 미래에서 온 너야.”


“미래에서……?”


“지금은 상상하기가 힘들겠지만, 네가 살고 있는 시점 즈음부터 해서 세상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했어. ‘변하는 속도’ 자체가 빨라진다는 건, 그 자체로 엄청난 ‘변화’였으니까, 상상하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는 계단을 내려오다 절반쯤에서 멈춰 섰다. 나는 딱히 말할 거리가 없었고, 그는 거기 가만히 서 있었다. 둘이서 그렇게 서로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딱하게도,”


그가 다시 입을 뗐다.


“너는 그걸 몰랐고 말이야.”


“내가 뭘……?”


“너는 네 주위가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무의식적으로든 아니든 말이야. 주변이 바뀌지 않으리라고 믿었으니, 너 자신도 바뀌지 않았어. 세상에, 상업용 로켓을 쏘아 올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론이 일상화되고 있었는데도, 너는 네가 몸 담은 회사가 따분하다고 해서 그 밖을 보지 않았어. 딱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거야.”


“…….”


“주변도 주변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가 말을 이었다.


“네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점이지. 오늘도 봐. 이게 뭐야? 원하지도 않는 일에 꾸역꾸역 동참해 가지고는.”


“뭐? 잠깐, 야이 씨. 내가 지금 뭐 나오고 싶어서 나왔어?”


그 때 나는 그 도플갱어인지 뭔지가 하는 비아냥에 너무도 빡친 나머지, 내가 지금 누구랑 대화를 하고 있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은 채 말문이 트이고 말았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건드려주기만을 벼르고 있다가 왈왈 짖는 개처럼.


“내가 지금 뭐 좋아서 나왔어? 남들 다 노는 연휴 때 회사에서 나오라고 해서 나온 것만 해도 짜증나는데. 그리고 그게 지금 니가 할 소리야? 미래의 나라며? 너도 그럼 과거에 나처럼 휴일에 나와서 일했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하는 소리지. 나는 모든 걸 돌려놓을 거야.”


돌려놓는다니. 이 지점에서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에 덜컥 겁이 났다.


“자, 봐봐. 내가 너였으니까 알긴 하지만, 예전에 그런 생각 많이 했잖아. 과거의 나로 돌아가서 뭐를 어떻게 해야겠다 하는 상상들. 잘 나가는 주식에 투자해서 돈을 벌고. 또, 어차피 취업하는 데에 학점이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을 미리 알았다면 좀 더 여유롭게 사람들을 더 만나고 다양한 활동을 할 걸, 뭐 그런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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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치만 넌 지금 여건이 되지 않잖아. 당장 무슨 타임머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나도 죽을 각오를 하고 돌아왔어. 아직까지는 타임머신을 이용하면 확률적으로 즉시 몸이 산산조각 날 수가 있어서.”


“그 각오로 니 삶이나 잘 챙기셨지 그래!”


나는 마치 악귀를 내쫓는 것처럼 불쾌하고 두려운 심정으로 외쳤다. 그 소리가 계단에 쩌렁쩌렁 울렸다. 미래의 나에게서는, 지금의 나에 대해 모든 걸 안다는 듯한 태도와, 나의 모든 것을 조종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뉘앙스가 잔뜩 들어간 오만함이 느껴졌다.


“그래, 그러니까 지금 챙기러 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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