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의동 에밀리 Oct 21. 2023

본전을 뽑았다

런던에서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하지만 짐이 너무 많아서 캐리어에 다 담아갈 수는 없었다. 배편으로 보내기 위해 업체를 찾아 예약을 걸었다. 약속한 날짜에 기숙사 앞으로 트럭이 와서 짐을 가져가는 시스템이었다. 


택배 상자를 구해서 세간살이를 차곡차곡 담았다. 부피가 크거나 잘 안 쓰는 짐은 어쩔 수 없이 놓고 가기로 했다. 핑크색 하이힐은 한국인 플랫메이트 언니에게 나눔을 했다. 딱 5mm 만큼이 작아서 반드시 발이 아파졌지만 디자인이 예뻐서 매번 신었다가 발뒤꿈치가 반창고 신세를 지곤 했는데, 덕분에 미련도 버렸다. 


그래도 이불이랑 제도 스탠드는 가져왔어야 했다는 미련이 귀국하고 나서야 들었다. 거위털이 섞인 데다 두 겹으로 붙였다 떼었다 하며 쓸 수 있어서 가을, 겨울에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이불이었는데. 제도 스탠드도 오랫동안 로망으로 삼던 디자인의 물건이었다. 


그렇게나 많은 물건을 처분했는데도 상자에 넣다 보니 짐이 아직도 너무 많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치수 큰 상자로 예약해 둘 걸' 하는 후회가 떠나지를 않았다. 따지고 보면 값 차이는 얼마 안 하는데, 고작 그 몇 푼 아끼겠다고 이렇게 소지품을 욱여넣느라 고생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깝게 버리는 물건도 추가로 발생하다니. 


그래도 나 뿐만 아니라 다른 교환학생 동기 한 명도 똑같은 낭패를 겪고 있었기에 외롭지는 않았다. 



플랫메이트 언니와 먹었던 하겐다즈 아이스크림과, 하나 둘 한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던 본교 동기들과의 저녁. 막상 짐도 싸고 떠날 준비를 하자니 어쩐지 싱숭생숭했다.



그 친구도 나처럼 1년 짜리 코스를 선택한 케이스였다. 


교환학생은 반 년 또는 1년 중에서 기간을 선택할 수 있었다.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반 년은 짧고 1년은 조금 길다'고 했는데, 이왕 간다면 아쉬움이 덜 할 1년 코스로 가자고 결정했다. 다만 교환학생으로서는 영국의 봄 학기가 끝나고 나서 여름방학 기간까지 굳이 눌러 앉을 이유는 없었기에 실질적으로는 9개월 짜리 코스가 되었다. 


그런데 1년에서 세 달이 비는데도 불구하고, 선배들의 조언처럼 정말로 막판에는 '이쯤이면 돌아가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런던의 주요 관광지는 이미 자전거와 도보로 몇 차례씩이나 순례를 마친 상태였다. 게다가 버스나 지하철 대신에 직접 지도를 짚어가며 찾아다녔더니 이제는 머릿속에 골목길까지 훤하게 그려질 지경이었다. 물론 그 때도 스마트폰과 구글 맵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종이 지도가 더 의지가 되던 시절이었다. 런던에서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길을 걸으면 자전거를 탄 소매치기가 낚아채간다는 말이 국룰처럼 여겨지던 탓에 더욱 종이 지도를 부여잡고 다니기도 했다. 


유럽 여행도 가보고 싶었던 나라는 거의 다 돌아다녔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스페인, 벨기에……. 동유럽은 나중을 위해 아껴두고 싶었고, 북유럽은 왠지 훌쩍 떠나기에는 학생 입장에서 물가의 장벽이 높아 보였다. 비록 스페인은 바르셀로나만 다녀오기는 했지만, 그 이유만으로 마드리드행을 택하기에는 중복으로 돈을 쓰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독일은?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서 패키지 여행으로 간 적이 있었는데, 빵이 무척 맛있었다는 기억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 동안 방문하지 않은 갤러리를 찾다가 발견했던 코톨드 갤러리에서의 식사. 냄비에는 꼬꼬뱅이 있었는데, 학교 급식으로 먹던 닭죽이 더 맛있었다고 느꼈다. 날씨는 역시나 흐렸다.



1년 코스가 끝나가자, 해운 택배를 함께 부쳤던 그 친구도 할 일이 거의 떨어진 모양이었다. 


심지어 막판에는 다른 언니 한 명과 함께 글로브 극장(The Globe)에 가서 셰익스피어 희곡 연극을 보고 오기도 했다. 공연은 옛날 식으로 노천 극장에서 진행되었고 (아마 <맥베스>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대부분 무대 아래에 서서 구경을 했다. 연출마저도 셰익스피어 시대 그대로라, 천둥 소리는 커다랗고 무른 철판 같은 것을 흔들어서 "우광쾅쾅" 소리를 내기도 하고, 배우가 입에 물을 머금다가 관객들을 향해 뿌려대기도 했다. 유럽 여행 패키지 같은 데서는 절대로 일정에 넣지 않을 법한, 아주 마이너한 프로그램 선정이었다.


그래도 할 일이 없어지자, 나중에는 같이 모여서 <해리포터> 시리즈 정주행을 하기로 했다. 영국에 온 김에 영국 현대 문학의 정수(?)를 쭉 보고 가자는 취지였다. 노트북에 영화를 1편부터 다운로드 받아서 친구를 초대했다.


"기숙사 방으로 놀러와. 책상에 노트북 올려 놓고 틀면 될 것 같아."

"좋아! 내가 팝콘을 튀겨 갈게."

"튀긴다고? 직접?"

"응."


약속한 시간이 되자, 친구는 "너무 많이 튀겨버렸어"라며 냄비째로 팝콘을 들고 왔다. 알갱이가 쏟아지지 않도록 냄비 뚜껑으로 겨우 막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엄청 많은 팝콘을 집어 먹으면서 며칠에 걸쳐 마지막 편까지 정주행을 마쳤다. 친구의 팝콘 튀기는 실력도 갈수록 늘어서 수준급이 되었다. 



어느 날 산책 갔다 돌아오는 길에 샀던 Hummingbird Bakery의 컵케이크. 한 개는 다음 날 집콕을 하면서 다 먹었다.



귀국하고 나서도 실컷 볼 수 있는 영화를 굳이 런던에서 시청하고, 이미 갔던 미술관을 또 가고 하다 보니, 나중에는 '아프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까지 들기 시작했다. 이방인인 내가 영국에서 어디를 다친다거나 큰 병에 걸리게 되면 속수무책이겠다는, 그야말로 하늘 무너질 걱정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앞서 이야기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기숙사 올 때 건너는 큰 횡단보도 알지?"

"아, 러셀 스퀘어(Russell Square) 앞에?"

"맞아. 거기서 길 건너려다가 엄청 크게 넘어졌거든."

"헉, 정말? 다친 데는 없어?"

"너무 아팠어! 그치만 사람들이 쳐다보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걸어갔는데, 집에 와서도 너무 아픈거야."

"병원은 가 봤어?"


그리고 이어진 친구의 대답을 듣고 나서, 나는 영국의 의료 시스템을 이용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게 되었다.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 덕분에 영국 사람들은 거의 무료로 병원을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은 우선 굉장한 장점이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 친구도 NHS 혜택 대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룰루랄라 하면서 병원에 연락했더니 "2주 후에 예약이 가능하다"라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세상에, 인대가 늘어나도 그 때 쯤이면 다 붙지 않을까?


간혹 책을 읽다 보면 역사 속 위인들이 고작 질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다 죽은 일화들을 접할 때가 있었다. 참 의아했다. 대제국을 건설하든, 엄청난 과학적 발견을 이뤄내든, 병을 못 고쳐서 위인들이 스러져갔다니. 그것도 암이나 백혈병 같은 게 아니라, 복통과 설사, 심한 열병처럼 얼핏 흔해 보이는 질병을 이기지 못해서 죽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에서 '2주 후에야 의사를 볼 수 있는 의료 체계'를 맞닥뜨리고 나니, 재수만 없다면 자칫 손 쓸 새도 없이 진짜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유명한 헨리 8세도, 암살이 아니라 고작 말 타다가 다친 상처를 방치한 탓에 죽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가 21세기의 사람이었다고 해도, 나 같은 외국인으로서 영국에 살고 있었다면 또다시 전생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을 지도 모르지 않을까?



교환학생 막바지에는 동네 탐방을 했다. Workshop Coffee Co. 에서 먹은 맛있는 마끼아또와 크로아상, 그리고 노트북이 쏙 들어가서 늘 가지고 다녔던 사첼 가방.



반면에 한국은 그에 비하면 선진국이었다. 신속한 의료 서비스와 번듯하고 저렴한 대중교통, 소매치기도 집시도 없는 깔끔한 거리까지, 이보다 더 살기 좋은 도시를 찾기도 참 어려워 보였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사람 하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고, 돈만 많으면 오히려 한국이 더 살기 좋다는 말을 종종 들은 적은 있었다. 처음에는 '아휴 그런 고리타분하고 낭만 없는 세계관이라니'라며 폄하했는데, 막상 런던에서 몇 달을 살고 와 보니 조금은 고개가 끄덕여졌다. 적어도 서울은 지하철에 쥐 대신 스크린도어가 있고, 통신도 어디서든 빵빵 터지는 데다, 건물들은 지은 지 몇 십 년도 안 되어서 반짝반짝 LED 조명이 켜져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가을만 되면 런던 생각이 났다. 새벽이면 피부로 느껴지던 서늘한 공기의 감촉, 자전거 타고 리젠츠 운하(Regent's Canal)를 산책하기에 딱 좋았던 선선한 날씨, 흐린 날 친구들이랑 먹었던 따끈한 스콘과 밀크티 같은 게 떠올랐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배울 수 있었던, 그리고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던 날들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런던 근교 여행을 가야겠다. 사실은 런던의 교환학생 시절이 그리워서 찾아간다는 게 진짜 이유이지만, 그 말을 내 입으로 내뱉을 자신이 없다. "갔던 데를 왜 또 가?"라는 말과, "거길 간다고 해서 교환학생 시절이 돌아와?"라는 질문에는 영 대답을 못 하고 우물거릴 것만 같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코츠월드(Cotswold)를 가 봐야겠다. 그 동네는 벌꿀 색 벽돌로 집을 짓고 분위기도 아기자기해서 영국인들이 은퇴 후에 살고 싶어하는 지역이라고 하니까. 그리고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에 가서 유명한 흰색 절벽도 봐야지. 교환학생 때 한 번쯤 가 보려다가 결국 어쩌다 보니 구경을 못 했으니까. 그러기 전에 런던에는 잠깐만 들러서, 기숙사 앞의 세인트 판크라스(St. Pancras) 기차역은 여전한지, 등교길에 마주쳤던 노부인들께서는 그 동안 잘 계셨는지만 확인해야지. 


분명 교환학생은 본전을 뽑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 곳에 뭔가 좀 두고 온 짐이 있는 게 분명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