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취업 현실, 불안, 대안
“문과는 어디에 취업하나요?”
이 질문은 내가 HR 일을 하면서, 그리고 국문학과를 졸업한 이후 수없이 마주한 문장이다.
직접 듣기도 하고, 자소서에서 보기도 하고, 대학 특강 끝에 조심스럽게 건네는 손들 속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그 질문은 묻는다기보다, 하소연에 가깝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여기가 맞는 길일까요?”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요?”
나는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석사과정을 1년 다니다가 중퇴했다.
문학을 좋아했지만 작가가 되진 않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연구자로 남지는 못했다.
어쩌다 보니 이차전지 부품 회사 인사팀에 들어왔고 지금은 반도체 장비 회사에서 HR 일을 하고 있다.
국문학 전공자로서 반도체 산업에 몸을 담고 있는 지금 '나는 이 질문에 말할 자격이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문과는 어디에나 갈 수 있습니다.
단, 그것이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은 아닐 수도 있어요.”
문과는 선택보다 생존을 먼저 배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문과=백수’라는 그늘에서 온전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표현이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 있으나, 우스갯소리로 한 번쯤은 들어봤음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정량적 기술이 우대받는 채용 시스템, 스펙의 명확성이 높은 이공계 전공과 달리 문과는 서사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서사란 말은 멋있지만, 실은 모호하다.
경영학과는 ‘재무 직무’, 화학과는 ‘소재 분야’, 전자공학과는 ‘R&D’로 직결되는 출구가 있지만, 국문과, 철학과, 사학과, 심리학과는 대개 ‘비즈니스 일반’, ‘사무보조’, ‘기획 지원’ 같은 이름 아래 불분명한 역할로 채용된다.
그래서 문과생들은 자기소개서에서 스스로를 포장하고 증명하려 애쓴다.
나도 그랬다.
“저는 언어를 다루는 사람입니다.”
“문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통찰력을 얻었습니다.”
“고전을 읽으며 시대를 보는 눈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장을 얼마나 썼는지 모른다.
그리고 회사에 입사해 보고서를 쓰고, 비용을 계산하고, 조직문화를 관리하게 되었다.
문학은 업무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가끔 문과 출신으로서 내가 조직 안에 꼭 있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과는 조직에 ‘필요한 감각’을 가진다.
문과는 사람을 오래 들여다본다.
논리보다 정서를, 해답보다 해석을 먼저 고민한다.
이는 실무에서 ‘중간다리 역할’이나 ‘해석자 역할’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표현하자면, 개발자와 영업 사이를 중재할 사람, 수치를 말로 바꿔 전달할 사람, 고객의 불만을 맥락으로 이해할 사람, 조직 내 변화에 감정을 붙여줄 사람.
이런 역할에는 문과적인 감수성, 공감력, 설명력, 글쓰기 역량이 필요하다.
나는 국문과 출신 인사담당자로서 수많은 피드백 코멘트를 써야 할 때 ‘내가 이 문장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늘 실감한다.
문과는 보이지 않는 것을 언어화하는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회사는 점점 "보이지 않는 것(정서, 문화, 동기부여, 브랜딩 등)"을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그러니 문과는, 의외로 필요한 존재다.
생존을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3가지
1. 일을 배워야 한다
전공이 일과 곧바로 연결되지 않기에, 문과는 ‘업무 적응 속도’가 생존을 좌우한다.
회계, 기획, 마케팅, HR, 콘텐츠… 무엇이든 좋다.
직무에 필요한 언어를 익히는 것이 우선이다.
2. 문장력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
문과는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자소서, 보고서, 채용공고, 프레젠테이션 — 이 모든 것은 문장력으로 완성된다.
‘쓰는 힘’은 결국 조직 안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된다.
3. 자신의 방향성을 꾸준히 묻고 정리해야 한다
문과는 흔들리기 쉽다.
그래서 더 자주, 더 정직하게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나는 어디서 의미를 느끼지?”
이 질문을 놓치면 문과의 삶은 오래도 외롭다.
문과 출신으로 살아남는다는 것
나는 지금 반도체 장비 회사를 다닌다.
머리말만 들어도 너무 이공계 같은 이 산업에서 나는 글을 쓰고 사람을 뽑고 교육을 설계한다.
그리고 가끔은 혼자 고전 수필을 읽는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조직 안에서 내가 더 ‘나’ 일 수 있는 느낌이 든다.
문과는 어디에 취업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문과는 어디에나 갈 수 있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언어를 가질 수 있다.
그 언어가 있다면 당신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