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률, 수치와 맥락, 사람
“우리 과 취업률이 몇 퍼센트야?”
“여기 취업 잘돼?”
“학과를 옮겨야 하나…”
요즘 대학생들과의 대화를 시작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가 있다.
바로 ‘취업률’이다.
그 질문 안에는 불안이 숨어 있다.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이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 줄까?”
“나는 괜찮은 경로를 밟고 있는 걸까?”
그럴 때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취업률은 참고일 뿐, 전부는 아닙니다.”
숫자가 모든 걸 말해주진 않는다
교육부, 대학, 각종 포털사이트에는 매년 학과별, 학교별 취업률이 공개된다.
누군가는 80%를 넘는 수치를 보고 "역시 이과는 다르다"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45%라는 숫자 앞에서 “문과는 역시 답이 없네…”라고 좌절한다.
하지만 나는 HR담당자의 시선으로 그 수치 너머를 자주 바라보게 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80% 중 절반은 계약직일 수도 있다.
45% 중 일부는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취업했지만 ‘퇴사자 통계’에는 벌써 잡혔을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취업하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숫자는 설명하지만, 맥락은 감춘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높은 취업률 속에서 좌절하고 낮은 취업률 속에서 가능성을 놓친다.
취업률은 학교의 성적표가 아니라 학생의 여정이다
대학은 성과를 내야 한다.
등록률, 취업률, 기업 협업 실적…
그래야 학교도 살아남는다.
그래서 많은 학교가 ‘취업률 관리’를 한다.
전화로 취업 여부를 확인하고 졸업생을 통계에 포함시키기 위한 여러 장치를 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자주 잊히는 게 있다.
‘취업률’ 안에 사람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A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전공과 전혀 무관한 곳에 취업했다.
B는 꿈을 좇아 창업을 준비 중이고, C는 아직도 자소서를 쓰며 ‘나다운 일’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들의 선택은 모두 다르지만, 통계에서는 단지 ‘1’ 아니면 ‘0’ 일뿐이다.
취업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끝.
하지만 우리는 안다.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실무자가 보는 '취업 잘되는 사람'의 조건
나는 인사담당자로서 해마다 수많은 이력서와 면접을 마주한다.
그리고 취업률 통계와는 조금 다른 기준으로 ‘취업에 가까운 사람’을 본다.
1. 자기를 잘 아는 사람
자기 장단점을 뚜렷하게 알고 무리한 포장은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의 성향을 어디에 쓸 수 있을지 고민해 온 흔적이 있다.
2. 언어가 선명한 사람
이력서든 말이든 ‘내가 누구고, 뭘 하고 싶은지’ 간결하고 진심 있게 전달할 줄 안다.
3. 빠른 적응보다 꾸준한 성장이 가능한 사람
기업은 요즘 ‘빨리 배우는 사람’보다 ‘함께 오래 성장할 사람’을 더 원한다.
단단함이 중요한 시대다.
이런 사람은 출신 학과도, 취업률 통계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 너머의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이 경쟁력이다.
당신은 ‘취업’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갈 길’을 만드는 중이다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취업률이라는 말 대신 ‘진로 안정도’라는 개념이 생기면 어떨까?
지금 선택한 일이 그 사람에게 안전한 토대가 되어주고 있는가?
의미와 성장을 주고 있는가?
그렇다면 비록 통계에서 ‘0’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실패가 아니라 자기만의 경로다.
우리는 지금 ‘숫자’가 아닌 ‘이야기’를 더 신뢰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인사담당자인 나는 그 수많은 수치들 속에서 사람을 찾아내는 일을 한다.
그리고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 취업률에 주눅 들어 있다면, 지금 숫자들 앞에서 불안하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취업률은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아. 그 숫자 대신, 너만의 길을 써 내려가면 돼.”
통계는 남기기 위해 있지만, 삶은 살아내기 위해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