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 제조업, 인사 경험
“장갑 끼셨나요?”
“앞에 바닥 표시 따라 걸으셔야 해요.”
“이 구역은 허가받은 사람만 출입 가능합니다.”
나는 한동안 클린룸에 들어가기 전 머리카락을 감추고 손등에 스티커를 붙이며 라인을 돌던 인사담당자였다.
이차전지 부품을 만드는 제조현장.
내가 처음 인사담당자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배운 곳이다.
이차전지 산업은 뜨겁지만, 안쪽은 조용하다
요즘 뉴스만 보면 이차전지는 미래 산업의 중심이다.
전기차, 배터리, 친환경, 국가 전략산업…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거기 있으면 대박 아니에요?”
“지금 주가 괜찮죠?”
“외국계랑 경쟁 심하죠?”
하지만 그 화려한 겉모습 뒤에 있는 건 엄청난 온도와 습도, 정교한 공정 그리고 반복되는 루틴의 세계다.
그리고 그 현장을 운영하는 건 수십 명의 작업자들이다.
그들의 하루는 먼지 하나 없이 정돈된 장비 사이를 오가며 초를 단위로 움직이는 루틴의 반복이다.
나는 그들 사이를 걸었다.
안전화를 신고, 명찰을 매고 ‘괜찮으세요?’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는 사람이었다.
제조업 인사, 사람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들
이차전지 산업군, 좀 더 넓게 보면 제조업 인사담당자는 ‘사람 중심’이라는 말보다 ‘공정 중심’이라는 개념에 더 가까웠다.
생산 인력 배치, 근무조 운영, 주야교대 스케줄링, 실시간 출퇴근 이슈, 현장 이탈률 분석.
현장은 느낌보다 숫자로 움직인다.
"A라인은 정원보다 3명 부족하고 야간조는 신입 비율이 60%를 넘으면 효율이 떨어진다."
인사담당자는 그걸 계산한다.
그게 곧 생산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람을 보는 눈’과 함께 ‘조직의 흐름을 계산하는 눈’을 갖게 되었다.
잊지 못할 장면 하나
입사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한 현장 작업자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Staff님, 혹시 점심시간 조정 좀 검토해 줄 수 있을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야간조는 새벽 2시에 한 번 쉬고 아침 8시에 퇴근 후 밥을 먹는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냥 집에 가버린다는 것이다.
“그 시간에 밥이 잘 안 넘어가서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팀에 돌아와 설득 자료를 만들었다.
야간 근무자 식사 잔여율, 식수비 절감 효과, 근무 만족도 개선 시나리오.
결국 식사 시간대를 조정했고 이후 간헐적으로 설문을 받아 ‘퇴근 후 간편식 제공’이라는 새 제도를 만들었다.
작은 변화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보고 싶었던 첫 실험이었다.
제조업 HR은 바쁘지만, 사람을 놓치면 안 된다
이차전지 부품사는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채용, 교육, 배치, 근무, 민원, 퇴사…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와 쉴 틈 없이 올라오는 카톡.
“퇴사 신청 들어왔어요.”
“야간조 인원 변경됩니다.”
“급여 항목 문의 좀 도와주세요.”
그 안에서 내가 가장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건 ‘감정’이었다.
누구도 쉽게 얘기해주지 않지만, 제조현장의 사람들은 ‘기계 같은 리듬’ 안에서 ‘사람 같은 온기’를 계속 갈망한다.
그래서 나는 공지문 하나를 쓸 때도, 퇴사 인터뷰 한 줄을 정리할 때도, 문장 안에 ‘존중’을 담으려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