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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군 인사팀이 된다는 것

반도체, 채용 전략, 산업 인사이트

by 문장담당자

"반도체 산업군 인사팀이 된다는 것"


지금 나는 반도체 장비사를 다니고 있고 인사팀의 실무를 리드하는 역할이다.

이직 후 나에게 가장 자주 쏟아진 말은 이거였다.
“여기는 분위기 정말 다르죠?”
“여긴 뭐랄까… 좀 정제된 조직이죠?”
“전 회사랑 비교하면 훨씬 기술 기반일 것 같아요.”

그 질문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맞아요.

여기는 정말 ‘결’이 다릅니다."


반도체는 ‘속도’보다 ‘밀도’의 산업이다

이차전지 부품사에서의 하루가 현장의 변화와 사람의 이탈을 쫓는 ‘속도’의 전쟁이었다면, 지금 이 반도체 장비 회사는 한 번의 설계,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실패가 곧바로 수억 단위 손실로 이어지는 ‘밀도의 산업’이다. 그래서 여긴 조용하고, 복도는 정리되어 있고, 보고서는 단어 하나에 집착한다.

‘근거는?’

‘수치화할 수 있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죠?’

이 질문들이 나오는 곳.

즉흥이 아니라 논리와 정합성이 사람의 설득력을 결정짓는 조직.
여기서 나는 다시 인사담당자로서의 태도를 다시 배우고 있다.


기술직, 연구직, 사무직… 전혀 다른 리듬

이곳엔 교대도 없고 야간 근무도 없다.

엄밀하게 따지면 고객사 야간 대응을 하는 엔지니어는 있으나, 기존 주야 교대 근무의 성격은 아니다.
따라서 생산직도 없다.

대신 모두가 ‘지식노동자’다.
엔지니어, 회로설계자, 알고리즘 개발자, 제품관리자…
모든 사람이 자기 분야의 깊은 ‘전문성’을 기반으로 일한다.

그래서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도 다르다.

이를테면,

단체교육보다 1:1 멘토링

정시 출근보다 유연한 집중시간 확보

성과주의가 아닌 프로젝트 단위 목표관리

감정보다 명료한 피드백

그런 구조 속에서 인사는 시스템이자 조율자여야 한다.

나는 매일 묻는다.
“이 제도는 사무직에게는 명확한가?”
“연구직에게는 설득력이 있을까?”
“기술직에겐 과도한 절차가 아닐까?”

그 질문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그게 지금의 내 역할이다.


빠르게 진급한다는 것의 의미

나는 대리로 입사했다.
그리고 3년 만에 과장이 되었다.

그건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사실은 더 많이 고립감과 불안을 느꼈던 시기이기도 했다.

실은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종전 근무지였던 이차전자 부품사에서도 관계사 업무 지원 등의 공로를 인정 받아 발탁 승진을 했었지만, 그때는 승진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호봉을 두 계단 건너뛰었었다.

결과적으로 선배보다 먼저 승진했다는 압박감, 후배들에겐 ‘역할 모델’이어야 한다는 책임감, 리더십과 실무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복합적 위치.

나는 인사담당자이자 ‘직책이 생긴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많은 걸 내려놓아야 했다.

직접 앞서기보단 방향을 잡고 지켜봐야 했고, 모든 걸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했고, ‘내가 옳다’보다는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가’를 더 자주 물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나는 ‘관리자’가 아니라 ‘사람을 설계하는 실무자’로 자리 잡아갔다.


채용, 조직문화, 보상… 반도체 HR은 더 전략적이어야 한다

이 산업은 워낙 전문적이다.
좋은 인재 한 명이 6개월 프로젝트의 속도를 좌우한다.
그리고 글로벌 스펙이 빠르게 바뀌는 만큼 인사담당도 훨씬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까워져야 한다.

나는 요즘 채용 공고 한 줄을 쓸 때도 해당 직무의 로드맵, 타깃 지원자의 성향, 면접자의 평가언어까지 모두 고민한다.

“문제해결보다 설명에 강한 사람”, “책임보다 협업을 우선하는 사람”, “수치보다 감각이 빠른 사람”

반도체 산업에서는 ‘어떤 스펙을 가졌는가’보다 ‘어떤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인사는 이제 단순한 관리자 역할을 넘어 조직을 전략적으로 설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반도체 인사팀이 된다는 것

나는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이 조직의 속도, 호흡, 에너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언어를 써야 구성원에게 닿을 수 있을지.

반도체는 차갑고 정교한 산업 같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하고 감정적이다.

성과라고 부를만한 실적이 없었던, 성과가 좋지 않았던 해 어떤 연구원이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결국은 사람이 버텨야죠.”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성과표 뒤에서 사람을 찾으려 애쓴다.


지금 나는 반도체 장비사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다.

조직은 냉정하지만, 그 안에서 나만은 따뜻하고 싶다.

내가 만드는 모든 제도와 문장들이 누군가에겐 이 복잡한 산업 속에서 자기를 지킬 수 있는 하나의 언어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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