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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이직과 채용 사이에서

스타트업, 문화적 특성, 채용

by 문장담당자

"스타트업, 이직과 채용 사이에서"


“우리 팀 리드가 오늘 퇴사했어요.”
“다음 주부터 CTO가 바뀌어요.”
“갑자기 인원 구조조정이 들어갔대요.”

스타트업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너무 빠르고, 너무 자주 바뀐다.
그래서 때때로 묻고 싶어진다.

“이 조직은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이 속도 안에서 진심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스타트업은 생존이 먼저인 조직이다

스타트업은 ‘작은 회사’가 아니다.
‘빠르게 실험하고, 더 빠르게 실패하며, 시장에 가장 먼저 도달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사람을 뽑을 때도이 기준이 작동한다.

이를테면,

지금 이 일을 당장 할 수 있는가?

스스로 동기부여가 가능한가?

작은 조직에서 혼자서도 일할 수 있는가?

결국 스타트업의 채용은 “이 사람이 우리와 함께 생존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때때로 ‘인간적 온도’보다 ‘비즈니스 온도’가 높게 작동한다.


나는 중소기업, 아니 스타트업에서 HR를 배웠다

내가 이차전지 부품사의 인사담당자로 첫 발을 디뎠을 때 그 회사는 막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5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조직,
CEO는 정기 회의에도 직접 참여했고 신입인 나는 입사 첫 주부터 채용공고를 직접 썼다.

그때 처음 배운 게 있다.
“스타트업에서는 직무보다 ‘태도’가 먼저다.”

경력직이든 신입이든 ‘잘할 수 있습니다’보다 ‘배우겠습니다’가 더 진정성 있게 들리는 곳.
명확한 프로세스보다 스스로 물어보고, 정리하고, 설득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한 조직.

그런데 그만큼 ‘빠르게 떠나는 사람’도 많았다.
학습 속도가 맞지 않거나, 의사결정 구조가 버거워졌거나, 일과 삶의 경계가 흐려졌을 때.

이직은 빠르고, 적응은 유예되고, 남는 사람은 계속해서 구조를 바꾸고 있었다.


채용이 아닌 ‘탑승’에 가까운 입사

스타트업에서의 입사는 정해진 탑승시간 없이 출발하는 기차에 올라타는 일에 가깝다.

공고는 간단하다.
“○○를 할 수 있는 분, 빠르게 지원 바랍니다.”
면접은 빠르다.
서류 접수 후 이틀 안에 연락이 오고 일주일 안에 최종 오퍼가 날아온다.

신입은 기대에 부풀고 조직은 당장 필요한 구멍을 메우려 한다.

그리고 입사 후 그 구멍이 예상보다 훨씬 깊다는 걸 알아차린다.

이를테면,

매뉴얼이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어딘지 모르겠다

리더도 바쁘다

보고 방식도, 피드백도 없다

혼란이 조직의 일상이 되는 곳.
그게 스타트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을 응원하는 이유

나는 지금 반도체 장비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스타트업의 정신을 존중한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정답이 아니다"라는 끊임없는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대기업이 놓친 ‘사람 중심의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

유연한 근무, 빠른 피드백 루프, 역할 중심의 조직 설계, 불필요한 회의 제거, 진짜 ‘일’ 중심의 평가 이런 실험은 사람을 조직 속에 ‘구겨 넣는’ 게 아니라 일에 맞게 조직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물론 모두가 성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스타트업은 조직에 대해 가장 열심히 고민하는 사람들이 만든다.


이직이 많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스타트업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
“이직이 너무 잦은 회사는 문제가 있다.”

나는 그렇게 단정 짓지 않는다.
스타트업에서의 이직은 불안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성의 문제다.

다른 실험을 해보고 싶어서, 역할이 반복되어 더 이상 배움이 없어서, 조직의 단계가 맞지 않아서.

그 모든 이유는 정당하다.

그리고 오히려 그 유연한 이동이 한 사람을 더 빠르게 성장시키기도 한다.

스타트업은 정착이 아니라 통과지점일 수도 있다.
그걸 인정하고 설계하는 회사는 결국 더 나은 인재를 만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채용을 묻는다

스타트업 채용을 할 때 나는 이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진다.

“이 사람은 이 혼란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다음에 묻는다.
“이 사람의 리듬은 우리 조직의 속도와 맞을까?”

정답은 없다.
하지만 그 두 가지를 고려한다면 적어도, 누구도 억울하지 않은 채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입사 후에도 나는 종종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진다.
“혼란스러워도 괜찮아요. 우리는 지금 실험 중이니까요.”


스타트업,
이직과 채용 사이의 좁은 길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그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찾아 나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인사담당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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