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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원 Sep 15. 2022

오후 4시에 출국해서 오후 8시에 도착하는 기적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1일 차

 밴쿠버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하러 가는 길에 마주했던 공간. 캐나다의 아이덴티티인 자연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굉장히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캐나다의 아이덴티티인 자연과 여유가 그대로 느껴졌다. 왠지 캐나다 사람들의 일처리가 늦다는게 이해가 갔다. (잘 모르지만) 경제는 좋고, 자원은 많고, 사람은 적으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


 당장 머무를 숙소만 정해져있을 뿐 모든게 미정이었기 때문에 나는 입국심사가 항상 걱정이었다. 하지만 긴장했던 심사는 상상 이상으로 간단히 끝났다. 1차 심사가 끝나고 Immigration 에 들어가 워킹퍼밋 심사를 받는 동안 쫄아있었는데, 이름 불러서 갔더니 막상 생일만 물었다. 사실상 주민번호 앞자리 물어보고 끝난 격. 좋긴 하지만 뭔가 김이 샜다.


 숙소까지 가는 길이 막막했다. 짐이 너무 많고 무거워 택시를 탈까 했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택시를 탔다간 요금 폭탄을 맞을 것 같았다. 그래서 트레인을 이용했다. 캐나다는 컴패스 카드라는 교통카드를 이용한다. 그런데 기계를 정확히 사용할 줄 몰라 앞에서 10분은 얼레벌레 머물렀다. 카드의 IC 칩이 많이 닳았는지 인식을 잘 못해서 현금으로 결제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후로 담배를 한번도 피지 못했다. 나는 담배를 많이 피는 사람은 아닌데, 긴장과 피로를 약 18시간 내내 느끼다보니 갈증이 심히 느껴졌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려 흡연구역을 찾았지만 없었다. 밴쿠버 공항도 마찬가지. 인천공항이 정말 흡연친화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Marine Drive 역에 내려 흡연구역을 찾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고 있었다. 올타구나! 테라스 같은 곳에 짐을 세워놓고 담배를 꺼내들었지만 라이터가 없었다. 흡연자들은 담배불 빌려주는 일종의 문화가 있으므로 옆에 있던 할아버지에게 불을 빌려달라고 했다.


"Can I borrow fire?" (정직하게 직역해버렸다.)


 내 말을 되물으시더니 이해하시곤 "Your english is terrible" 라고 했다. 아이엘츠로 단단해진 나의 마음에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자비롭게 담배불을 붙여주었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역시 학연, 지연, 혈연, 흡연일까. 이 동네 담배가게와 식료품점, 분위기 등을 말해주셨다. 나는 담배 4개비를 주고 감사하다며 혹시 사진을 같이 찍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렇게 위 사진이 탄생했다. 캐나다 담배값으로 4개비면 4천원 정도 할테니 할아버지는 꽤 좋은 거래였다고 생각할테다.


 9시 넘어 한인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짐을 정리하니 배가 고팠다. 기내식과 공항음식은 내 평소 식사량의 반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실에서 한국인들과 얘기를 하다보니 주변에 T&T라는 식료품점을 추천했다.


"와!"


 우리집 앞 이마트 식품코너보다 컸다. 대부분 아시아 제품인 것으로 보아 이 쪽 전문 브랜드로 보였다. 별에 별 라면과 종류별 김치, 소스, 과자... 없는게 없었고 심지어 다양했다. 비싼게 문제일 뿐... 나는 한국에서 주식이었던 라면과 당장 먹을 냉장 우나기동, 미트볼을 샀다. 옆 주류점에서 맥주도 샀다.


 서양권 사람들은 한국보다 개인취향 존중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선택지가 많으면 개인 취향을 존중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취향을 존중하니까 이렇게 된건가? 모르겠다.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싸움.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은 이 많은 제품들의 재고를 어떻게 관리하는지였다. 아마 그게 기술이겠지.


 왠지 덥히지 않고 먹어야할 것 우나기동은 익히지 않은 햇반처럼 밥이 딱딱했다. 그래서 전자렌지를 돌렸더니 반찬들은 뜨거울대로 뜨겁고, 밥은 덜 익고, 생강절임의 향이 접시 모두에 배여버렸다. 8천원인데... 돈이 아까워 반이라도 먹고 버렸다. 미트볼은 애초에 따뜻한 제품이었는데, 육즙이 가득한게 맛있었지만 너무 기름져서 아쉬웠다.


 음식과 맥주를 먹으며 사람들과 얘기하니 저녁 12시쯤 되었다. 내일은 SIN 넘버 만들고 계좌를 개설하기로 했다. 잠이 솔솔 오는게 시차에 한방에 적응한 듯 했다. 다가올 며칠 간의 집중력 저하를 꿈도 못꾼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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