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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원 Sep 16. 2022

시차가 만들어낸 좀비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2일 차

 일어나니 오전 9시 30분 쯤 되었다. 역시 내 몸은 어딜 갖다 놓아도 살아남을 몸이라고, 시차적응을 완벽하게 한 나에게 감탄했다. 한국에서 나의 주식 쯤 되었던 라면을 뜯었다. 아직 봉지라면 먹을 짬은 아니라 생각해서 컵라면을 가져왔다. 한국 신라면보다 더 짜고, 매운맛이 약했다. 내가 있던 한인민박은 김치와 밥을 무료로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나름 한국의 맛을 느끼며 먹을 수 있었다.


 내 침대 2층에서 지내시는 분이랑 얘기를 했다. 호주에서 7년 정도 살다가 캐나다에 영주권을 따러 오신 분이었다. 호주와 캐나다를 비교해주셨는데, 들어만보면 호주가 훨씬 더 살기가 좋은 듯했다. 시급은 높고 식비는 싼 기회의 땅이랄까. 이민국가답게 영주권자(혹은 예비)들이 많은데 듣다보면 괜사리 관심이 생긴다. 온 지 며칠 됐다고 그러냐며 내 정신에 뺨따구를 한 대 갈겨줬다.


 SIN 넘버를 받기 전에 은행에 가서 예약을 했다. 일반적으로 예약이 꽉 차 있다는 소문과 달리 순조로웠다. 은행계좌 개설 쯤이야 어플로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SIN(Social Insurance Number)을 발급 받으러 Service Canada Centre에 갔다. 캐나다의 고용사회보장부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여권 업무, SIN 발급 등을 처리한다. 공무원들의 일처리가 심히 느린 특성 상 한국인들은 보통 오픈런을 추천한다. 나는 캐나다의 시간을 살아보자며 여유롭게 갔다가 4시간은 기다렸다. 11시에 가서 3시에 나왔으니... 심지어 오후 1시 쯤 되니 너무 졸렸다. 시험기간에 밤 샌 기분이 들었달까. 그래서 한국시간을 보니 새벽 5시 쯤 되었다. '아 내 몸은 그리 단단하지 못했구나.'


 한국에서 맥도날드에 일한 이유가 워킹홀리데이 최후의 보루였으므로, 한 번 쯤 방문해주는게 인지상정이었다. 이게 웬 걸? 사용하는 기계들이 한국과 모두 똑같은게 당장 일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점은 가격이 비싸다는 점. 그런데 그만큼 재료의 질이 좋고 크기가 컸다.


 테라스에서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앞에 있던 시청에 들렸다.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주머니에 휴대폰이 없었다. 아차! 맥도날드로 다시 후다닥 갔더니 휴대폰이 덩그러니 테이블에 올려져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시청에 다시 돌아와 잠시 앉아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와선 두꺼운 담배를 태웠다. 그런데 냄새가 뭔가 알싸했다. 본능적으로 대마구나 싶었다. 낯설고 신기했다.


 저녁으로 T&T 마트에서 딤섬을 사왔다. 여기 있으니 대체 무엇을 먹어야할 지 모르겠어서 어렵다. 비싸게 느껴지고 시차 덕에 몸도 이상해서 잘 챙겨먹지 못한다. 영양소도 부족하다. 이렇게 쓰고보니 한동안은 돈을 좀 써도 이리저리 많이 먹어봐야할 듯하다. 어... 다시금 환율의 압박이 다가온다. 이 날은 맥주 마시며 글을 좀 쓰다가 잠들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괜히 소주에 닭발이 땡겼다. 팔도실비집 서부시장점에서 먹던 그 맛.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내가 대신 먹어줄게^^"하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진짜 맛있겠다...


 시차 적응을 못해서 하루종일 좀비처럼 지냈다. 이 악물고 하루 이틀을 버텨내는게 관건인데, 놀러온게 아니여서 쉬운 일이 아니다. 얼른 집을 구해야 어학원을 다니고 그래야 일을 구하는데 집중이 안돼서 큰 일이다. 자금을 마련한다고 한국에서 일을 주구장창 해서 그런가 번아웃이 살짝 온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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