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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원 Sep 18. 2022

밴쿠버 다운타운 하루만에 끝내기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3일 차

 이 악물고 버텨냈으나 처참히 실패해서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다. 잠이 더 오길 바라면서 6시 30분까지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도통 잠이란게 오질 않았다. 오늘 하루도 시차로 고생하겠구나... 걱정하며, 다가오는 쓰나미를 보는 해운대의 설경구처럼 아무 대처도 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윗 침대를 사용하시는 분이 나오시길래 대화를 나눴다. 캐나다 영주권자셨는데, 애드먼튼에 직장이 있으신데도 밴쿠버에 집을 보러 왔다고 했다. 얼마 전 잉글리시 베이를 보고 반해버렸다면서.


 형님은 여러가지 조언들을 해주셨다. 첫번째, 계좌 만들 때 신용카드를 만들 것. 나중에 가면 괜히 조건을 다는 경우가 있어서 미리 만들라고 하셨다. 헬스장 같은 곳 결제할 때 신용카드를 자동이체를 요구하는 곳도 있고, 잘 사용하면 신용점수가 올라 (혹시) 영주권을 신청할 때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계좌 만들러 은행 예약 가는 길에 숙소 앞 집을 찍었다. 채도 낮은 색감과 타일의 사용, 모던한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와 저런 집에 살고싶다...'라고 생각했다. 


 

 한국 같았으면 온라인으로, 또는 창구에서 5분 만에 끝났을 일을 예약까지 해가며 1시간 넘게 투자하여 계좌를 만들었다. 은행 업무 보는데 시간이 왜 그렇게 많이 들지? 라는 생각은 여기서 종결됐다. 일반 고객도 프라이빗한 룸에서 모든걸 차근차근 설명해주는게 굉장히 대접받는 느낌. 덕분에 온갖 어려운 영어가 난무하는 와중에도 쉽게 아임쏘리를 말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신기했던 점은 Saving account랑 Chequing accout가 나눠져있다는 점. 두 계좌가 금리가 다르다. 대신, 전자는 거래할 때 수수료가 많이 붙고, 후자는 거의 붙지 않는다. 숙소의 형님께선 세이빙 계좌에서 얻은 이자는 불로소득이라 나중에 세금으로 토해내야 한다고 했다. 어차피 쓸 일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다.

 형님은 자기가 오늘 점심 약속 끝나고 혼자 돌아다니려고 했다며, 괜찮으면 같이 다운타운을 돌아보자고 했다. 투어 시켜주겠다면서. 5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시차를 못이기고 자버려서 조금 늦었다. 이건 시티센터역을 나오자마자 찍은 곳이다.


 먼저 공립도서관을 가보았다. 콜로세움의 디자인을 따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시내 한복판에 떡하니 이렇게 멋진 도서관이 있다는게 너무 멋졌다. 생존을 위한 경쟁으로 점철된 건물을 모티브로 삼다니. '이렇게 멋지면 공부할 맛 나지!' 싶으면서도, '공부하다 죽으란 말인가?' 싶기도 했다. 내부도 한국과 살짝 달랐다. 서고와 열람실의 명확한 구분이 없었고 각 언어별로 책들이 나눠져있기도 했다. 역시 다양성의 국가.



나카긴 캡슐 타워가 연상되었던 건물
위로 갈수록 넓어지는 건물


어떻게 만들었지

 내 머릿 속에 건축이 항상 들어있는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길을 거닐다보면 멋진 건물들이 보였다. 한국처럼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건물들이 눈을 즐겁게 하면서도, 기형적인 건물을 만든다고 갈려나간 공학자들이 아우성치는 듯 했다. 


 여기는 법원이다. 시위를 한다고 이렇게 됐다고 한다. 정부에서 무슨 공사하는데 땅 파다가 원주민들의 유해가 나와서, 백인들의 원주민 학살 역사를 규탄하는 목적이랬나. 저기 손바닥 자국 현수막에 "NO PRIDE IN GENOCIDE"라고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잉글리쉬 베이로 가는 길에 홍대포차를 발견했다. 포차와 카페가 공존 가능한 단어인지 궁금했다.


 이 때 처음 안 사실. 캐나다 맥도날드 로고에는 자그마한 단풍잎이 그려져있다!


 여기가 그 유명한 잉글리시 베이(English Bay)다. 선셋이 유명한데 흐려서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 타면 좋을 것 같은 느낌. 사람들은 벤치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다. 시간이 많나? 하며 나도 앉아봤다가 20분은 멍때려버렸다.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형님이랑 저녁식사 예약한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넘쳐나는 여유로움 가운데서 사람들이 배구를 하고 있었다. 여름이면 여기서 사람들이 수영복입고 뛰어 논다는데, 얼마나 좋을지 상상이 안간다. 친구들이랑 여기서 해질 때까지 놀고 집에 가서 씻고 다 같이 저녁 먹는 상상을 해봤다. 그게 인생이지.


 지나가다가 돌탑을 보았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이란 비슷비슷하다.


 공중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이렇게 생긴 통이 있었다. 주사기가 그려져 있길래 나는 무슨 응급약품이 들어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형님에게 물어봤더니 "마약하고 거기 넣으라고 만들어 놓은 거에요."라고 하셨다. 마약하고 주사기를 아무데나 던져 놓으면, 혹시 모를 감염사고의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어차피 마약 못잡을거면 2차 사고라도 줄이자는 취지. '약 할거면 깔끔하게 해라!'


 예일타운 주변의 THE KEG 라는 프랜차이즈 스테이크 하우스를 와봤다. 방금 한국에서 온 동생과 무엇을 먹어야할 지 고민하다가 양식으로 정했다고 하셨다. 사실 한국에서도 스테이크를 거의 먹지 않아 이게 맛있는건지 모르겠었지만 그냥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로 좋았다.


 레드와인을 시켰는데 서버가 화이트를 주었다. 나는 한국식으로 '그냥 주는대로 먹어야지' 했다. 사실 말하기가 조금 무서...웠다. 그런데 형님이 컴플레인 걸어주셔서 화이트는 그냥 서비스로 받았다. 심지어 그 와인을 형님이 사주시기까지. 감사합니다!


 사실 나는 밥 다 먹고 집에 갈 줄 알았는데 투어가 더 남았었다! 지하철 타고 예일타운 역에서 워터프론트로 왔다. 이 사진은 캐나다 플레이스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랜드마크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밴쿠버에서 만들었다는데 실패했단다. 오른쪽에 저게 배모양이라나.


 어쨌거나 바다 위의 난간에 기대어 페퍼톤스의 바이킹을 들으니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먼 불빛들과 출렁이는 바다와 파도소리. 조금 두껍한 후드집업 위로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밴쿠버 올림픽 성화대를 보고 나니 형님은 식당에서 물을 많이 드셔서 그런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했다. 그러더니 꿀팁을 가르쳐주겠다며 따라오랬다. 누가 말을 걸면 그냥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랜다. 아니면 "오케이 오케이 잇츠 굿" 하라고. 그렇게 페어몬트 워터프론트 화장실을 사용했다. 자본주의를 꽁쳐먹은 느낌에 짜릿한 승리감이 들었다.


 5시 30분에 만나 스테이크 하우스 빼곤 계속 걸어다녔으니 정말 힘들만도 했는데, 그냥 도장깨기 하자며 가스타운까지 갔다. 15분 쯤 도착하니 앞에 사람들이 영상을 찍고 있어서 나도 후다닥 꺼내 들었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5분 쯤 있으니 앞에 사람이 "혹시 소리 나왔나요?"라길래 "저도 찍으시는거 보고 휴대폰 들었어요."라고 했다. 저녁이라 소리가 없나보다하고 가려는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셨다. 커플이길래 처음 한번 찍고 사진관 알바 경험을 살려 "자~ 다음 포즈 하겠습니다. 서로 마주보시고~" 했더니 쑥스러워들 하시면서 안았다. 좋겠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지하철은 새벽 1시가 넘도록 달렸다. 신기하게 사람도 많았다. 이렇게 안전하다니! 밴쿠버의 명소들은 역사적 명소들보다 자연경관을 베이스로 하는 곳들이 많은 것 같다. 유럽의 성당이나, 아시아의 사원들처럼 몰입할 곳은 적은 것 같다. 그래서 가봐야겠단 생각이 조금 덜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홈스테이 컨택하고 미트업을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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