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wonder’는 ‘~이라 의심하다’라는 뜻의 동사다. 과학을 좋아하고 우주 비행사가 꿈인 10살의 남자아이, 어거스트 풀먼(이하 어기)은 선천적 안면 기형을 타고났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할 거라는 의심을 늘 품고 다닌다. 어기가 학교에 들어가자 그 의심은 현실로 드러난다. 부잣집 도련님 다니엘은 어기를 ‘괴물’이라 놀리며 집단 따돌림을 주도한다. 어기와 몸이 닿으면 ‘전염병’에 걸린다는 악질적인 루머가 떠돌고 체육 시간에 아이들은 어기에게 피구공을 마구 집어던진다. 울면서 집에 돌아온 어기는 엄마에게 묻는다.
앞으로도 이런 식일까요?
Is it always gonna matter?
모르겠구나.
I don’t know.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선의’라는 것은 존재할까? 신길역 1호선의 장애인 전용 승강기가 추락해 한 장애인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장애인들은 서울시에 대해 장애인의 안전과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그 시위 내용이란 십 수 명의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탄 채 지하철에 탑승해 한 역을 이동하는 것뿐이었다. 평소의 운행시간보다 약 20분이 더 소요되었다. 어떤 사람은 너희들 때문에 내가 늦었다며 시위자들을 위협하면서 소리를 질렀고, 어떤 사람은 사람이 죽었다며 시위의 내용을 설명하는 이에게 ‘누가 장애인 되래?’라고 답했다. 선의는 존재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자신의 우선순위가 아닐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어떤 장애인의 죽음보다 자신의 출근 시간이 더 중요하다.
괴롭힘은 계속되지만 어기는 무너지지 않는다. 어기의 엄마, 아빠, 누나 비아, 그리고 반려견 데이지까지 어기의 편이 되어준다. 더불어, 적의로 둘러싸인 어기의 주변으로 선의를 가진 친구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비아는 부모님이 어기에게 편향된 관심을 보이는 것을 질투하고, ‘미란다’는 자기의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 절친인 비아와 거리를 두고 친구 ‘잭윌’은 어기를 좋아하면서도 자기의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어기에게 상처가 될 말을 한다.
여기서 영화 "원더"는, 인간은 약하고 실수를 하고 완벽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보편적인 진실을 끌어올린다. 잭윌은 자신의 실수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어기에게 사과한다. 미란다도 마찬가지다. 어기의 엄마는 비아의 진정성 어린 연극을 보면서 어린 비아의 기억을 떠올리고 눈물 흘린다. 그리고 어기는 자신을 공격하는 무리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해내는 데 성공한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나의 본심과 행동이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때로 비겁하고, 폭력적이며, 무관심하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우리가 때로 용감하고, 세심하며, 책임감이 있다는 사실 역시 존재한다.
옳음과 친절함,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할 때는 친절함을 택해라.
다시 묻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선의'는 그 무엇보다 우선될 수 있을까? 주변에는 상처입은 사람이 즐비하고 누가 누구를 공격하고 피해받는지 알 수가 없을만큼 혼란스럽다. 무엇을 위해 공격하고 상처주는 걸까. 어떻게 상처를 받고, 또 어떻게 고칠 수 있는걸까.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내가 늘 옳다고 믿는 것이다. 영화 "원더"는 옳음보다 친절함을 믿는다. 강한 힘보다 그 힘을 사용하는 바른 방식을 믿는다. 자신들의 ‘옳음’에 취해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아직 사과할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순수한 누군가를 믿는다. 인간이 약하다는 것은 반쪽짜리 믿음이다. 선의를 믿고자 할 때, 선의를 그 무엇보다 우선하려고 할 때 우리는 반대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의심(wonder)의 반대편에는 기적(Wonder)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