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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연 Nov 14. 2022

사실 나는 브런치에서 글을 찾아 읽지 않는다

들어가며


브런치는 처음 등장 당시 신선한 충격을 줬다. 유튜브와 SNS 등 짧고 강렬하고 자극적인 컨텐츠가 헤게모니를 잡아가는 모바일 콘텐츠 시장에서 브런치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작품으로서의 글을 소개하는, 작가를 존중하는 공간으로서 브런치는 마치 마왕을 물리치러 나선 출전 용사 같았다.

나는 2018년 7월 브런치에 첫 번째 글을 올렸다. 브런치는 '작가 심사 제도'를 도입해 화제를 끌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블로그와 달리, 몇 편의 글을 먼저 브런치에게 보낸 뒤 승인을 받아야 글을 쓸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수월하게 작가가 될 수 있었다. 기쁜 마음에 예전에 써두었던 영화나 책 리뷰를 수정해서 주기적으로 업로드 했다. 블로그나 트위터에는 쓰지 않는 '작품'이 될만한 글들을 추려서 브런치에 올렸고 그렇게 4년이 흘러 지금이 되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나는 그 4년동안 브런치에서 글을 찾아 읽은 적이 손에 꼽을만큼 드물다.


작가로서 브런치를 이용하고 있으면 쓰는 사람을 세심하게 고려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네이버 블로그와 같은 자유로운 꾸미기 요소를 제거하고 오로지 쓰기에 집중할 수 있게끔 UI(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간결하게 만들었다. 흰 바탕에 기본 글씨체, 직관적이고 필수적인 쓰기 도구들, 언제 어디서든 쓰기를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간편한 접근성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브런치의 작가가 되기 위해 승인 신청을 보냈고 '브런치 작가'는 일종의 명함의 역할을 맡아 퍼스널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키는 하나의 축이 되었다. 아무나 할 수 없다는 특별 대우, 작가라는 이름, 떠받들어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이 공간에 머물면서 다른 사람들이 쓴 글들을 찾아보려 했던 것 같다. 나는 주로 영화, 책 리뷰를 올렸으니 다른 리뷰어들의 글도 궁금했고, 특히 자기만의 문체를 가진 보물 같은 작가들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그리고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브런치에서 글을 찾아 읽는 게 어색했다. 그때는 왜 그런 건지 이유를 모른 채 그냥 브런치를 닫고 유튜브를 키거나 트위터를 했다. 역시 디지털 화면으로 긴 글을 읽기에는 어려운 걸까... 싶었다. 하지만 모든 디지털 환경에서의 읽기가 어색하지는 않았다. 트위터에서 간혹 바이럴되는 긴 글이나, 기사 등은 잘 읽혔다. 친구들의 블로그에서 본 꽤 긴 분량의 글도 후루룩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유독 브런치에서만큼은 읽기가 어색했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라고 표현해도 될까.


그러니 슬슬 궁금해져버렸다. 나는 최근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작품을 냈고 나름 4년간 꾸준히 글을 써 올려온 '작가'였지만 브런치의 '독자'가 된 경험은 드물다. 브런치북이 낳은 히트작 <90년생이 온다>와 <젊은 ADHD의 슬픔>과 같은 책들은 브런치가 아닌 출판된 종이책으로 읽었다. 몇 작가들을 구독하기는 했지만 그 작가들은 자기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혹은 기사 지면으로도 글을 써 올린다. 그들의 브런치는 한산하다.

독립출판이 유행을 타면서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하고 자기만의 책을 만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브런치는 그 유행과 2인3각 달리기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독립출판 붐 때 지적되었던 현상, 작가는 있는데 독자는 없는, 쓰기만 있고 읽기는 없는 현장을 브런치가 그대로 체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조금 더 파고들어보기로 했다. 내가 브런치에서 글을 찾아 읽지 않는 것이 그저 브런치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브런치의 어떤 경향성이 현상을 만드는 것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1. 사람들은 브런치를 얼마나 자주 사용할까?


공식적으로 발표된 데이터 자료를 찾지는 못했지만 일부 통계 사이트나 기사를 통해 대략적으로 브런치의 사용률을 파악해볼 수는 있었다.



위의 표는 '다이티 데이터 마켓'이라는 사이트의 리포트에서 가져왔다. 2021년 네이버 블로그 앱 다운로드 수는 약 230만, 브런치는 25만을 조금 넘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테크엠의 2021년 기사(https://www.techm.kr/news/articleView.html?idxno=86474)를 보면 "카카오 브런치 월간 활성 사용자수는 14만명을 나타냈다. 12만명을 기록했던 지난해에 비해 이용자수를 16% 늘렸다"고 나와있고 카카오의 보도자료(https://www.kakaocorp.co.kr/page/detail/9670)에 따르면 2022년 브런치 작가는 5만명을 넘겼다. 브런치 앱을 일단 깔아놓은 사람이 25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접속한 사람은 14만, 작가는 5만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브런치 앱 체류 시간에 대한 데이터는 찾을 수 없었다.


브런치의 직접적인 경쟁 상대로 여겨지는 '네이버 블로그'는 어떨까?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이 발표한 내용(https://zdnet.co.kr/view/?no=20220804093650)에 따르면 2022년 "6월에 네이버 블로그 앱을 사용한 사람은 316만 명이었다. 또 총 사용시간은 3억 분, 1인당 한 달 평균 사용 시간은 1시간 34분으로 조사됐다"고 나온다. 언뜻 비교해보아도 한달 사용자 수가 316만명인 네이버 블로그에 비해 브런치의 한달 사용자 수 14만명은 초라해보인다.

정확한 측정방법이라 할 수 없지만 앞서 언급한 브런치북의 성공사례중 하나인 <젊은 ADHD의 슬픔>의 정지음 작가의 브런치 활성화 정도를 살펴보면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 있을 듯 하다. 정지음 작가 브런치의 팔로워 수는 4,208명이다. 4천 명대의 팔로워 수가 많은지 적은지 가늠을 해보기 위해 정지음 작가의 트위터 계정 팔로워 수를 보았다. 정지음 작가의 트위터 팔로워 수는 약 18,000명. 정지음 작가는 트위터에서 적으면 5~30회의 리트윗, 많으면 5000회의 리트윗이 넘어가는 명실상부 인플루언서다. 브런치에서 반응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라이킷' 수를 보면 70개에서 100개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댓글은 보통 한 자리수이다.

데이터로 보나, 한 명의 작가에 붙은 반응들의 숫자로 보나 브런치는 '사람이 잘 안 오는 가게' 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브런치를 잘 찾지 않게 된 걸까?  



2. 브런치의 정체성은... 뭔가?


일단 브런치는 블로그가 아니다. 브런치가 처음 런칭될 때부터 블로그와 같이 직접 자기만의 공간을 꾸미는 자유도를 없애고, 글쓰기 자체에만 집중하게 하겠다는 브랜드 목표가 강조된 적이 있다.(https://brunch.co.kr/@brunch/1) 작가는 자기의 브런치를 꾸밀  없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계정 화면의 사용 방식과 유사하다. 브런치 , 브런치 나우와 같은 페이지 화면에서는 다른 작가들의 글을   있다. 비교하자면 트위터, 인스타그램의 피드와 유사하다. 브런치는 구독자, 관심작가라는 용어로 사용자간의 관계를 지칭하는데, 팔로워와 팔로우라고 바꾸어 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보면 브런치는 SNS(트위터, 인스타그램)라고   있다.


그런데 나는 브런치를 이용하면서 이 앱이 SNS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은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친분이 온라인으로 확장된 사교 공동체라 할 수 있고, 트위터는 모종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결집된 취향/정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스타는 SNS이면서 블로그의 성격을 갖고, 트위터는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인터넷 게시판의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브런치는 블로그와 인터넷 게시판 어느 쪽에도 가깝지 않다. 브런치의 정체성은 모호하다. 작가가 자신의 글을 업로드해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건 블로그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정작 블로그 마냥 자신의 공간을 꾸밀 수는 없다. 트위터처럼 관심있는 분야의 글에 쉽게 접근하기에는 허들이 높다. 브런치에 업로드 되는 글들은 일단 '작품'으로 간주되기에 분량이 길고 내용이 사뭇 진지하며 해당 글에 나의 의견을 덧붙여 내 공간에 게시하는 '리트윗' 방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인터넷 게시판은 토론이나 논쟁이 자주 일어나는 환경적 요소가 마련되어 있지만 브런치는 작가들 사이를 연결하는 장치는 댓글, 좋아요(라이킷) 뿐이다.


청취형 SNS 클럽하우스가 결국 대중화되지 못한 이유로 제한된 자격을 꼽는 사람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브런치 역시 클럽하우스와 비슷한 폐쇄형 CMS(Content Management System)를 채택했다. 브런치의 '독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글을 읽고 댓글을 달 수는 있지만 그 외의 활동은 제한된다. 즉, 브런치는 글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 글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작가 자격에 제한을 두었고 여타 SNS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기능들을 삭제했다.

브런치는 SNS도 아닌, 블로그도 아닌, 커뮤니티 게시판도 아닌 묘한 형태로 남아있다. 이 묘함에서 브런치만의 강점은 있는 걸까? 브런치는 스팸성 게시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작가 심사 제도를 도입했다고 말한 바 있다. 브런치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프리미엄화된 경험을 제공하려 한다. 낚시성, 찌라시성 글이 난무하는 블로그와는 달리, 브런치 안의 글들은 믿을 만하다, 품질은 보장되어 있다는 이미지가 브런치에게는 필요했을 것이다. 그 목표는 달성되고 있는 걸까?



3. 브런치의 글은 재미있는가?


플랫폼은 플랫폼만의 양식을 생산한다. 흔히 트위터에 돌아다니는 밈으로써, 트위터에 올라가는 사진과 인스타그램에 올라가는 사진을 비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트위터는 다소 엽기적이고 자유로운 감성을 내비치는 반면, 인스타그램은 상대적으로 정제되고 꾸며진, 아름다운 감성의 사진으로 채워진다. 트위터에 쓸 수 있는 말과 인스타그램에 쓸 수 있는 말은 다르다. 플랫폼 별 팔로워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플랫폼이 제공하는 글쓰기 도구, 글이 보여지는 화면, 반응을 보내는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글의 재미와 묘미는 해당 플랫폼의 특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반드시 인터넷의 글은 그 글이 올라간 플랫폼의 향을 풍긴다.


브런치의 향은 어떨까? 브런치에서 보이는 글들은 대부분 점잖다. 트위터처럼 고성방가하는 느낌, 블로그처럼 중얼거리는 느낌의 글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브런치의 글들 속 문장들은 마침표로 마무리되고, 서론-본론-결론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글의 주제도 어느정도 정해져 있다. 직장인 에세이와 일상형 에세이가 주를 이루고, 여행 후기, 자기계발, IT 업게 동향, 리뷰와 추천 등이 뒤따른다. 문학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애초에 문학은 브런치가 제공하는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그런데 휴남동 서점은 어떻게 브런치북에 당선된 거지)


'브런치 작가 되는 법'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아무데서나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종합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소설, 시 안됨

2) 에세이이거나 자기계발이어야 함

3) 어렵게 쓰면 안됨 너무 짧아도 안되고, 너무 길어도 안 됨

4) 세 편의 글이 같은 흐름에 있어야 함

5) 자랑이나 의미없는 말 안되고, 성장, 극복 서사가 잘 먹힘


브런치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모든 이를 위"한다고 하지만 브런치가 원하는 글의 모양은 정해져있다. 트위터나 포스타입에서는 흔한, 숭하고 이상한 글들이 브런치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까지 오니 브런치의 정체성이 비로소 선명해진다. 브런치는 SNS도 아니고, 블로그도 아니고, 커뮤니티 게시판도 아니라, 웹진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브런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잡지다. 모든 잡지/웹진은 특정 테마만을 집중해서 다룬다. 이 잡지는 에세이를 메인으로 하고, IT나 여행 등의 주제도 겸한다. 웹진이라고 하면 작가 심사 제도가 유지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웹진의 편집부가 작가들에게 청탁을 하는 것처럼, 혹은 원고를 투고받는 것처럼, 브런치의 심사팀 역시 작가의 글을 읽고 웹진의 멤버로 합류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브런치 웹진'에는 편집부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브런치 웹진'의 지면 구성은... 사실 왜 이렇게 했는지 이해하기 좀 힘들다. 메인화면에 자기 브랜드의 카피를 저렇게 크게 삽입한 경우는 드물다. 메인화면은 사용자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만큼 앱/웹에 체류할 수 있게끔 여러가지 요소들을 삽입한다.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이 피드가 메인화면인 SNS는 지인이나 화제가 되는 글들이 위에서 아래로 배치되어 있고 웹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네이버 블로그는 메인화면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블로그 홈'이라는 페이지는 블로그 관리를 위해 자주 접속할 뿐, 애초에 블로그는 자기 공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공용 홈페이지에 자주 머무를 필요가 없다.

포스타입은 첫 화면에 작품의 분야를 명료하게 나누어 사용자가 원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브런치는 메인 화면의 1/3을 '감성적인' 카피가 차지하게 두고, 어떤 기준에서 선별되었는지 알 수 없는 랜덤한 글들이 나머지 2/3을 채운다. 모바일 화면은 이보다는 낫지만 사용자화되지 않은 무작위의 글이 첫 번째로 눈에 보이는 것은 동일하다. 즉, 브런치는 인스타그램, 트위터, 네이버 블로그, 포스타입과는 달리 첫 화면에서 '내가 원하는 글, 혹은 통로'를 제시하지 않는다.


브런치는 왜 사용자화된 경험을 제공하지 않을까? 독자가 관심분야를 설정하면 그 분야에 대한 글을 먼저 띄우고, 해당 글을 읽은 독자가 읽은 다른 글을 추천하는 알고리즘화된 큐레이션을 제공한다거나, 많은 사람의 추천을 받은 인기글을 순위로 제시한다거나, 현재 많이 검색되고 있는 단어를 트렌드로 제시한다거나 사용자가 브런치에 자주 머무르게 할 수 있는 전략은 널리고 널렸다. 인력과 기술력이 부족한걸까? 하지만 카카오가 운영하는데 브런치에는 큰 투자가 없는 걸까? 수익창출이 어려운 탓인건지... 회사 사정이야 알 수 없으니 일단 넘어가자.  


브런치의 가장 큰 문제이자 딜레마는 편집자의 부재, 게이트키핑의 유명무실이다. '브런치 웹진'은 자신들의 색깔에 부합하는 작가들은 통과시키지만 이후에 그 작가가 어떤 글을 쓰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잡지의 편집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다. 편집자가 필자의 예전 글들을 좋게 보아 섭외를 한 뒤에, '아무 글이나 쓰세요!'라고 말해 둔 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필자가 영원히 글을 쓰지 않아도 필진에서 제외되지 않고, 이상한 글을 쓰더라도 딱히 제지하지 않는다. 원래 리뷰를 잘 쓰는 필자로 섭외를 했는데 뜬금없이 소설을 연재한다고 해도 막지 않는다.

브런치가 작가의 쓰기에 개입하지 않는 모습은 당연해보인다. 브런치가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는 처음의 의도를 지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의도가 심사 제도와 맞물리면서 브런치의 애매한 위치성이 드러난다. 심사 제도는 브런치라는 브랜드의 프리미엄화를 촉진한다. 하지만 일체의 편집 과정이 개입되지 않는 집필 활동은 글의 퀄리티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하지 못한다. 웹진은 독자의 읽기 경험을 일정한 정도로 맞추어지는 경향이 있다. 웹진에는 정해진 분량이 있고 목차가 있고, 편집부의 게이트키핑을 통과한 글들이 선별되어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브런치에서의 독자 경험은 들쑥날쑥일 수 밖에 없다. 생활형 에세이를 읽고 싶다고 해도 예상할 수 있는 글의 질과 분량이 매번 다르기 때문에 쉽사리 앱에서 원하는 만큼의 만족감을 얻어갈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애초에 '좋은 글'은 모두에게 좋은 글일 수 없다. 잡지의 편집부가 지향하는 글의 모양, 철학 속에서 주관적인 좋은 글의 형상이 만들어진다. '좋은 글'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좋은 작가가 좋은 글을 쓰는 일 뿐만 아니라 그 글의 '좋음'을 정의해주는 편집자, 넓게는 독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브런치 작가는 5만 명이 넘어가고 브런치의 편집부(라는 게 존재한다면)가 매일매일 발행되는 글들을 전부 확인하여 큐레이션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인다. 차라리 분야마다 큐레이션을 담당하는 MD가 있으면 어떨까 싶다. 교보문고, 알라딘과 같은 대형 서점 직원들은 각자 분야를 따로따로 맡아서 관리한다. 브런치는 24개의 키워드만큼 분야가 나누어져 있고 분야로서 큐레이션을 제공하면 지금보다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키워드 분야로 들어가보면 그 키워드에 적합한 글들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브런치의 글들이 재미 없어 '보이는' 이유는 이 글들이 아무런 서사나 흐름 속에 놓여있지 않은 채 그저 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 안에는 서사가 없다. 이 글이 왜 이 글 옆에 놓여 있고, 이 글은 왜 추천되었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알음알음 알려진 브런치 작가 심사 제도의 기준 때문에 이제는 정형화된 글들이 더 자주 올라온다. 생동감 있고 재미있는 글들은 트위터에 몰려 있고, 잘 조직되고 전문성이 높은 글들은 기사나 개인 홈페이지 등에 게시된다. 브런치는 독자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넘치지만 브런치에 오래 머무르면서 글을 찾는 사람들은 현업 출판편집자들 밖에 없는 게 아닐까. 브런치 안에 독자는 어디 있을까.



4. 브런치북이라는 보루


브런치가 자기의 모순을 모를리 없다. 브런치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자기들의 모순을 돌파해나가려 하고 있다. (대체 왜 그러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브런치는 바이럴을 막는다. 작가가 아니면 글을 스크롤 해서 복사할 수 없다. 잘 쓰인 글들의 본문 일부가 복사붙여넣기 되어 트위터에 바이럴 되는 경우가 아주 많음을 생각해볼 때 브런치의 글들은 다른 공간으로 퍼져나갈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다. 작가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별로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해당 글이 브런치에서만 보존된다면 브런치 자체가 프리미엄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아 이 글은 브런치에서 쓰였으니까 분명 어느 정도의 질이 보장되는구나! 라는 판단이 독자에게 있어야 브런치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작가 심사 제도는 있지만 통과 기준이 생활형 에세이에 맞추어져 있고, 글 발행에 편집 과정이 부재하기 때문에 글의 퀄리티가 일정하지 않다. 브런치는 브런치의 글들이 좋은 글입니다! 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고, 그래야만 이용자를 브런치로 끌어들일 수 있을 거라 판단했을 것이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브런치의 글들이 괜찮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에 가장 적절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브런치북의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이다. 은근히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90년생이 온다>는 2017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5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당선될 당시의 제목은 <9급 공무원 세대>였다. 사실 은상은 출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50만원의 출간 지원금이 작가에게 주어질 뿐이다.

<90년생이 온다>가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계기로서 브런치가 있었지만 해당 원고의 가능성을 알아 챈 웨일북의 편집자가 제일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제5회에서 브런치는 심사위원 3명(강원국, 김종관, 신기주)과 5개의 출판사(빌리버튼, 책들의정원, 이야기나무, 카멜북스, 책비)를 섭외했고 5개의 대상을 받은 책들은 출간되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브런치는 은상을 받은 책이 의외의 대박을 치는 것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어쩌면 브런치는 심사위원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을지도, 자신들의 플랫폼에서 발행된 글이 정말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출판사의 안목과 편집자의 세심한 '편집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걸 알게 됐던 걸지도 모르겠다.


다음해인 2018년 6회부터 10명의 대상 수상자, 10인의 에디터의 매칭 시스템이 도입된다. "10인의 에디터가 10인의 작가를 선정하여 함께 10권의 책을 만듭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의 파트너가 출판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지원합니다." 수상작을 선정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브런치는 완전히 손을 뗀다. 실력 있는 편집자들이 작품을 선정하게 하고 편집 과정을 전부 일임한다. 브런치는 상금 수여와 마케팅 만을 담당한다. 7회부터는 에디터가 아닌 출판사가 뛰어들어왔다. 참가한 출판사의 네임벨류는 급격히 상승한다. 베스트셀러를 몇 종 이상은 내본 적이 있는 출판사들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권위를 한층 높여놓았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한 번이라도 참여한 출판사들은 다음과 같다. (이름순) 가나출판사, 다산북스, 미래의창, 민음사, 부키, 북라이프, 북스톤, 알에이치코리아, 어떤책, 어크로스, 위즈덤하우스, 웅진지식하우스, 웨일북, 은행나무, 창비, 카멜북스, 허밍버드, 휴머니스트, 흐름출판).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좋은 흐름을 타고 있다. 매년 응모작은 늘어나고 있고 믿을 만한 출판사들이 매년 참여를 하고 있어 상의 권위나 신뢰도도 유지되고 있다. 무엇보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브런치'라는 딱지가 꽤 괜찮다는 것을 잘 알리고 있고 브런치 앱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데 유리한 제반환경을 구축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이라는 브런치의 모토를 살리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적절한 사업이라고 생각하지만 몇 가지 찝찝함은 남는다.


첫 번째, 브런치 독자들은 왜 투표할 수 없을까?

알라딘에서는 매년 독자들의 투표로 올해의 책을 선정하곤 한다. 책을 더욱 많이 팔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2020년 올해의 책으로 봄알람의 <김지은입니다>가 선정되었던 것을 상기해보면 이 투표 자체가 주는 사회적 메시지가 꽤나 유효하다고 말하고 싶다. '독자'는 쉽게 범주화할 수 없는 추상적인 집단이다. 이 독자들이 브런치라는 플랫폼 안에서 작품들을 읽고 평가하는 일이 가치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브런치는 독자들에게 작품에 대한 평가를 맡기지 않았다. 브런치 안의 글들은 좋은 글입니다! 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브런치는 출판제도권력의 힘을 빌렸다. 브런치가 독자에게 평가를 맡기지 않은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독자가 브런치팀이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데이터 기업은 이용자에게 이런 저런 선택을 하게 함으로써 데이터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을 증진한다. 이용자는 무상으로 데이터 기업을 위해 노동하고 있다. 브런치 역시 브런치 이용자들로 하여금 브런치 글들을 자체적으로 큐레이팅하는 생태계를 만들어보겠다는 포부가 없지는 않았을 거라 추측되는데, 여러 이유로 아마 접은 게 아닐까 싶다. 브런치는 대신 출판사의 편집자들을 간접적으로 고용했다. 업로드되는 수많은 글이 좋은지 나쁜지 브런치는 판단하지 않는다. 좋은 원고를 판단하는 노동력을 출판사에게 아웃소싱한다. 원고를 선별하고 편집하는 노동력을 외주화하고 브런치라는 브랜드 가치는 상승하니 브런치 입장에서야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이 구조는 출판사에게 건강한 방식인가?

브런치는 지속적으로 출판사에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홍보하게 만들고 있다. 책/출판 관련한 콘텐츠들에서 브런치북 광고가 굉장히 많이 보인다.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좋은 원고를 발견할 수 있는 나쁘지 않은 기회이지만 동시에 덥석 참여하기 애매한 계륵처럼 보이기도 한다. 민음사 유튜브를 보면 5명 단위의 한 팀이 약 9000편의 원고를 두 달 안에 검토해야 하는 중노동을 수행한다. (과연 브런치북 인센티브가 있을까...?) 만약 출판사 전체가 9명에서 15명 정도 사이의 규모로 운영된다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출간'에 너무 많은 의미가 쏠리는 것이 불편하다.

브런치가 처음 나타났을 때 느낀 설렘은 재야의 고수들의 출현을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무엇보다 이 브랜드의 태도가 아직 공인받지 못한 작가들을 환대하는 것 같아 호감이 갔다. '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희망과 동력을 제공하는 곳이 브런치였다. 하지만 지금의 브런치에서도 그 희망과 동력이 유효한걸까? 글들은 꼭 출간되어야만 의미가 생기지는 않는다.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새로운 경험의 장일 뿐 글쓰기, 그리고 업로드는 그만의 좋음과 의미가 있다. 나의 공간과 지면에서 글을 올리고 찾아오는 독자들의 반응을 보며 기뻐하고 슬퍼하는 순간순간 자체가 소중하다. 과연 브런치는 그런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 걸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새로운 공모전, 카카오가 실시하는 신춘문예가 되어가고 있다.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모토로 시작한 브런치가 '작가'를 특정하는 출판 권위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게 씁쓸한 기분을 들게 한다.



나가며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잘나가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브런치에서 글을 찾아 읽지 않는다. 어차피 좋은 글은 출판사들이 발견해서 잘 책으로 만들어줄 거고, 나는 서점에서 그 책들을 사서 읽을 것이다. 브런치라는 콘텐츠의 색깔은 점점 모호해져만 간다. 브런치북은 몇 천 권이 쌓여가지만 브런치라는 공간 자체는 휑해지는 이 모순을 어떻게 생각해보면 좋을까. 여기서 글을 쓰고, 글을 읽는 사람들은 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브런치를 통해 글쓰기를, 글읽기를 더 잘 즐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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