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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광 Aug 05. 2024

길어진 하루, 이어진 생명

보닛 아래 고양이의 숨

어떤 고양이가 뒷다리를 갑자기 쓰지 못한다. 그 아이가 자동차 보닛 아래로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는다. 이런 소식을 접하는 날은 진의 하루가 길어지는 날이다. 처음에는 포획틀만 빌려드리러 간 것이었지만 어느새 지인 캣맘님들과 한 몸이 되어 아이를 살리고 있었다. 듣는 대로 모든 구조에 참여할 수야 없다. 하지만 여건이 닿을 때는 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진이 이 일을 하는 마음이고 이유이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아마 진 자신을 돕는 일인 것 같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이날도 하늘이 그 일을 했다.




추운 날 고양이가 자동차 아래로 숨어드는 건 왕왕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더운 날, 그것도 갑자기 불편해진 다리로 왜 그런 걸까. 진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러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바닥에 엎으려도 고개를 밀어 넣기 어려울 정도로 차체가 낮았다. 털 끝이 살짝 보이는 것만으로 아이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었다. 간식으로 유도를 해보고, 차체에 진동을 줘보기도 했지만 기척조차 없었다. 차주님의 도움으로 보닛을 열어보아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 핸드폰만 밀어 넣어서 영상을 촬영했다. 작은 화면 속에서 고양이는 축 쳐진 채 전혀 미동이 없었다. 영상을 본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죽은 것 같아요.


갑자기 왜. 그것도 저기까지 들어가서. 안타까움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쪽은 아이를 어떻게든 꺼내서 수습을 해주자는 길로, 한쪽은 움직이지 않는 영상 속 아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길로. 진은 후자였다.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런 진의 눈에 어떤 움직임이 들어왔다. 팔다리가 늘어진 사이로, 하복부의 미세한 오르내림. 뱃가죽을 힘겹게 밀어내는 호흡이 작지만 선명하게 보였다. 고양이는 살아있었다.



살아있다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꺼낼 방법은 요원했다. 손이라도 닿는 건 주먹 하나만큼의 틈뿐이었다. 고양이를 빼내기는커녕 어떻게 들어갔는지가 신기할 정도였다. 119 구급대, 자동차보험사, 생각나는 지인 가릴 것 없이 전화를 돌려보았지만 도와줄 수 있다는 곳은 없었다.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있었다. 차주님과 아이를 돌보던 캣맘님들과 진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머리를 모았다. 일단 방지턱에 앞바퀴를 올려 공간을 살짝 만들었다. 차체 아래쪽 플라스틱판을 열면 틈이 생긴다는 조언에 여기저기 공구를 알아보고 있었다. 아직은 정성이 부족했던 걸까.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진의 머릿속에 숙자 보호자님이 떠올랐다. 숙자는 진이 병원에서 만난 고양이로, 앓고 있던 후지마비의 회복 기미가 없던 친구였다. 진이 잠시 임보를 하며 치료를 도운 덕이었는지 다행히 조금씩 차도가 있었고, 건강해진 다리로 보호자님께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숙자의 보호자님이 카센터를 운영하고 계셨다. 몇 년 전의 인연인데 어떻게 불현듯 기억이 났을까. 어쩌면 후지마비가 연결고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다급한 상황이라 늦은 시각을 무릅쓰고 진은 연락을 드렸다. 상황을 들은 보호자님은 직접 가겠다며 곧바로 출발해 주셨다. 매장에 들러 장비까지 챙겨 가겠다며. 다른 장비를 갖고 있던 진의 동생도 소식을 듣고 와주기로 했다. 여러 사람의 하루가 다 같이 길어지고 있었다.


두 분을 기다리는 동안은 비와의 사투였다. 진과 캣맘님들은 보닛으로 흘러들어 간 빗물에 고양이가 젖을까 봐 갖고 있던 모든 커버와 우산으로 차체를 덮었다. 본인들은 장대비를 그대로 맞아가면서.



두 분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넘었다. 그리고 그제야 하늘의 선물처럼, 비가 잠시 멎었다. 이때를 놓칠 수 없었다. 반갑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작업은 숨 가쁘게 진행됐다. 장비를 사용해 차를 들어 올리고 숙자 보호자님이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 하판의 틈을 열어주셨다. “살아있는 거 맞아요?” 그렇게 물어올 정도로, 아이는 완전히 숨죽인 채였다. 그렇지만 부산스러운 상황에 놀라 갑자기 튀어나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귀하게 얻은 틈은 놓치지 않기 위해 진은 얼른 엎드려 들어갔다. 손끝의 감각에만 의지해 더듬더듬 아이를 찾았고, 한 손으로 간신히 목덜미를 잡을 수 있었다. 곧이어 다른 손으로 담요를 건네받아 아이를 덮었고, 양손으로 아이를 감싼 채 몸을 비틀어가며 바닥을 기어 나왔다.


“이동장, 이동장!”


드디어 됐구나 하고 채 안심하기엔 일렀던 건지 이번엔 이동장이 문제였다. 이동장을 열 줄 아는 사람들은 손이 없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캔넬형 이동장에 익숙하지 않아 얼른 열지를 못했다. 이러다 아이가 몸부림쳐 빠져나간다면 큰일이었다. 어둠 속에서 너나 할 거 없이 '빨리빨리, 열어 열어'를 외쳤다. 다 같이 불안하고 다급한 찰나, 가까스로 이동장이 열렸다. 진은 담요 채로 아이를 집어넣었고, 이동장 문이 닫히고 나서야 모두 안도의 한숨을 뱉을 수 있었다.


아이는 24시 병원으로 곧바로 옮겼고, 혈액검사상 약간의 빈혈과 염증수치 외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복막염이 의심되기도 했지만 복수는 즉시 확인이 안 되었다. 병원에서는 최근 크게 논란이 된 사료로 인한 근육 경직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챙겨주던 캣맘님이 아는 바로는 그 사료는 먹은 적이 없었다. 본래 약간 너른 지역을 다니며 밥을 먹던 친구였는데, 왠지 발걸음이 이상해 따라가 봤더니 뒷다리를 거의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자동차 아래로 들어가더니 그 뒤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게 늦은 오후였으니 아이는 거의 12시간 가까이 그 안에 있었다.



아이는 입원장에서 잠시 지내고 있고 진과 캣맘님이 자주 들러 상태를 보고 있다. 여전히 명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다행히 조금씩 차도를 보이고 있다. 병원에서도 재활 운동을 하며 아이를 돕고 있다. 구조 후에야 정해진 아이의 이름은 ‘콩이’가 되었다.


고양이에게나 사람에게나 위험한 하루였다. 방지턱 위의 앞바퀴가 굴러내려 오거나, 차를 받치고 있던 장비를 건드리거나 했다면 사람이 아래에 있는 채로 차가 내려앉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있기 이전에, 발견되지 못했거나 꺼내지지 못한 고양이는 자동차 아래에서 숨을 멈추었을 수도 있다. 여러 사람이 밤을 꼬박 새웠고, 온몸이 땀과 비로 흠뻑 젖었지만 고양이는 살았다. 여러 사람의 하루가 길어진 덕분에, 콩이는 하루하루를 더 길게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긴 하루의 끝에서, 다시 하루하루로. 우리는 이렇게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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