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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광 Aug 08. 2024

고양이의 마지막 산, 그것마저도

재개발지역 길고양이 이야기 4

재개발지역 이야기 첫 장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목표는 고양이들의 산을 옮기는 것이었다. 느리더라도 안전하게, 힘들더라도 꾸준하게 노력해서 고양이들의 이주를 돕고자 했다. 터전을 잃은 고양이들에게 산이 마지막 안식처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산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은 모두 떠나고 철거만 기다리고 있는 이 재개발지역에서 진과 혜진 씨가 돌보고 있는 밥자리는 열 군데 정도다. 급식소 개수로 보자면 열일곱 개. 사료만 한 달에 이백 킬로그램이 넘게 들어간다. 공사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 밥자리를 조금씩 옮겨가며 산을 향해 이동 중이다. 그중에서 가장 손과 마음이 많이 쓰이는 구역은 아홉 마리가 더불어 지내고 있는 ‘밤이네’다. 밤이와 친구들은 주민분의 살뜰한 돌봄을 받으며 몇 년간 마당냥이로 살았다. 캣타워와 숨숨집까지 있는 마당에서 사랑받은 티가 나는 맑은 아이들이다. 하지만 그분도 이사를 가시게 됐고 건강도 안 좋아지면서 더 이상 아이들 돌봄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의 구역과 달리 밤이네는 공사 지역의 외곽이 아닌 한가운데에 있다. 산까지의 이주거리가 가장 길다. 마당을 나와, 밭을 지나, 다리를 건너, 수풀을 헤치고 산길을 올라야 한다. 마당에서부터 산까지 깨끗하게 길을 닦아가며 아이들을 유도해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 무리 중엔 몸이 약한 초코나 삼순이 같이 친구들도 있어 낙오되지 않도록 이주 속도도 조절해야 했다.


밤이네는 여름의 벽도 가장 정면으로 받아냈다. 마당을 벗어나 이주통로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게 개망초 밭이다. 고온다습한 기후를 만난 개망초들은 장마의 초입부터 무섭게 자라났다. 눈앞에서 잘라내고 있으면 등 뒤에서 자라나고 있었다고 진은 표현했다. 이곳이 예초기 구비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유난히 변덕스러운 장마와 푹푹 찌는 폭염은 말해 무엇할까. 이주통로의 중간 지점에 지붕을 마련해 주었지만 아이들이 더위를 이겨내기엔 버거웠다. 그러다 노크도 없이 장대비가 쏟아지면 아이들은 서둘러 마당으로 돌아가 버렸다. 주민들이 떠나고 비어버린 집안이 자연스럽게 밤이네의 피난처가 되었다.


보금자리 마련을 위해 산중에서 작업 중이던 진의 어깨 너머로 죽은 나무가 쓰러지는 아찔한 날도 있었고, 산 초입의 밥자리까지 몇십 미터를 아이들이 한번에 따라와 준 놀라운 날도 있었다. 어쨌거나 공사 전에 여기를 벗어나야 해. 산으로 가야 해. 그렇게 되뇌며 산만 보고 달려갔던 과정이었다.



산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하루아침 사이였다. 이주과정 전반에 걸쳐 그간 건설사의 협조를 많이 받아왔다. 제한적이나마 출입도 허가받았고, 공사 일정도 공유받으며 안전하게 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변경되는 공사 과정을 우리가 모두 보고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후순위일 거라고 들었던 밤이네 근처 산이 어느 날 갑자기 벌거숭이가 되어버렸을 때, 진과 혜진 씨는 아연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공사 지역으로 진입하는 길을 닦고 그 주변의 물길을 바꾸는 작업을 먼저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마을 가장 안쪽부터 예정돼 있던 철거 일 순위도 밤이네가 살던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의 목표지점이었던 산은 물론 공사지역 밖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과 주변의 산이 곧 쓸려버릴 상황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되면 고양이는커녕 사람도 오갈 수 없을 거라고 소장님은 말했다.



산으로 가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실은, 산으로 가도 걱정이었다. 초입만 되어도 이런 날씨에는 각종 벌레들이 기승을 부린다. 조금 더 올라가면 너구리, 오소리, 고라니 등 다른 야생동물들과 접촉도 늘어난다. 특히나 밤이네가 가야 할 산은 나무도 많고 수풀이 우거져 내내 어둑하고 습한 환경이다. 해도 안 들고 경사진 이런 곳에 아이들이 설령 자리를 잡았다고 한들, 건강히 지낼 거라고 안심할 수 있을까. 산으로 가는 길이 막히니 근본적으로 안고 있던 진과 혜진 씨의 걱정이 점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일부러 산을 뒤에 두고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데, 사람을 좋아하고 자기들끼리도 정다운 이 친구들이 마음 누일 산은 어디 있을까. 


우리는 산을 열심히 옮기려고 했었다. 우공이산이라고 거듭 다짐하면서, 멀지만 부단히 가는 길일 줄 알았다. 그런데 옮겨야 할 산은 처음부터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쩌면 다른 곳에서 산을 찾을 게 아니라, 고양이들이 기댈 산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처음부터 갖고 있던 고민, ‘구조’라는 두 글자가 우리 사이로 부쩍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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