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에 입양이동 갔다가 양평에서 친구를 만난 건에 관하여
진의 입양홍보를 통해 시보호소에 있던 고양이들 여럿이 임보처나 입양처로 가게 되었다. 다행한 일이다. 지난 주말에는 앨리스라는 아기 고양이가 가족을 만나러 홍천으로 향했다. 나도 진을 따라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다녀왔다. 입양자분들이 환경도 잘 꾸미고 편안하게 맞아주셔서 안심하고 앨리스의 남은 묘생을 부탁드릴 수 있었다.
덕분에 좋은 기운을 받은 진과 나는 북한강 지류를 따라 천천히 돌아오고 있었다. 갈 때는 북쪽 도로를 타고 시원한 산세를 구경했었는데, 올 때는 강변과 도로를 따라 아기자기한 마을들을 많이 보았다. 소박하고 조용해 보이는 예쁜 마을들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진은 언제나 시골살이를 꿈꾸고 있다. 그건 그것대로 좋다고 나도 생각한다. 문제는 진이 좋아하는 건 눈에 닿는 대로 직접 만져보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반면에 나는 예정된 일정을 중시하고 변수가 발생하는 걸 힘들어하는 타입이다. 우리가 입양처에서 출발한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고 수도권 진입 시의 교통체증이 이미 내 머릿속에 들어온 상태였다. 어떻게든 아무 일 없이 빠르게 돌아가고 싶었지만, 핸들은 진의 손에 있었다. 내 눈에 마을들이 예뻐 보일 정도였으니 진에게는 오죽했을까. 내가 다른 얘기를 하는 틈에 어느새 차는 도로를 벗어나 작은 샛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평범한 시골마을이었다. 작은 시멘트 길을 논밭이 감싸고 있었고 낮은 슬레이트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한눈에 동네가 모두 담길 만큼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무더위에 이미 약간 맛이 가 있던 우리는 나무 아래서 춤과 헛소리를 섞으며 흥을 내보았지만 역시 금방 차로 돌아가야 했다. ‘어떤 실패는 참 다행스럽구나’ 하고 내가 생각하는 찰나 진의 입에서 나온 말. “1차 마을은 좀 아쉽네.” 세상에 ‘1차’가 그렇게 무서운 말인 줄 나는 미처 몰랐다. 오늘 집에 갈 수 있을까.
2차 마을은 머지않아 찾아왔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판타지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진은 이번에도 예고 없이 우회전했고, 마찬가지로 작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그런데 입구에 웬 돈가스 가게 안내 간판이 있었다. 이름도 고즈넉한 ‘언덕’. ‘이런 데에 돈가스집이 왜 있어’ 그렇게 무시하려고 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애써 이것이 복선이 아니기를 바랐다. 길을 따라 좀 더 들어가자 이름처럼 야트막한 언덕 위에 식당이 나타났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진은 이미 흥분하고 있었다.
식당을 둘러보려 먼저 언덕으로 올라간 진은 예쁜 집에 앉은 강아지 한 마리와 길고양이 밥자리를 발견했고, 그 사이 언덕집을 검색한 나는 이곳이 아픈 고양이를 여러 마리 거두어 돌보는 돈가스 맛집이라는 걸 알게 됐다. 입간판에 적힌 브레이크타임만이 일이 커지는 걸 막을 수 있는 나의 마지막 방패였다. 그때 가지런한 앞치마를 두른 사장님이 나와보시더니 괜찮으니 들어오라며 그 방패를 손수 부수셨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신발을 벗기도 전에 너무 예쁜 고양이 두 마리가 반겨주었고, 우리는 낮은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 앞에 주저앉았다. 사장님은 혹시 고양이 무서워하냐 물으셨고, 진은 저희 고양이 쉼터 하는 사람들이라며 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장님과 우리는 식사 주문도 잊은 채 한 시간째 고양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게 왜 진짜인가. 시골길에서 우연히 들어온 식당이 어떻게 고양이집일 수가 있는가.
나와 있던 고양이 두 마리는 나비와 보리였다. 올해 15살인 나비가 아기였을 때 처음 길고양이와 연을 맺은 사장님은 그 뒤로 여러 아이를 보살피고 또 떠나보내온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지금은 집안에 여덟 마리가 있고, 길에서 챙겨주는 아이들이 또 여럿이라고. 한쪽 시력을 잃은 아이, 자동차 아래서 구조된 아이, 누군가 집 앞에 버리고 간 아이 등등 하나같이 사연이 애틋했다. 이제는 더 손을 뻗지는 못하겠다고 하시지만 매일 아이들 양치질과 빗질을 해주면서 아이들마다 사료 종류와 급여량까지 챙길 만큼 살뜰히 돌보고 계셨다. 그런 정성이 담겨서인지 내어주신 음식에서도 따뜻한 맛이 났다.
살아온 날은 이십 년 넘게 차이가 났지만, 우리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사장님이 해주시는 다사다난했던 돌봄의 기록들은 우리에게 어색하지 않았고, 우리가 해나가는 일의 기쁨과 고충을 사장님은 단번에 이해해 주셨다. 모든 운명은 사실 이름 잘 붙인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나조차도, 이번에는 그 운명의 펀치 한 방에 녹다운되는 기분이었다. 이런 만남을 달리 어떻게 불러야 할까.
사장님은 작게는 아이들 영양제 팁부터, 크게는 우리가 나중에 마련할 만한 공간에 대한 부동산 정보까지 보태며 아낌없는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셨다. 우리 사무실에서든 언덕집에서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우리는 길을 나섰다.
알려지고 소문나지 않아도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시간에 그건 다소 외로운 일일 거다. 이게 맞나 불안하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고. 그런데 꼭 같지는 않더라도, 어딘가에 비슷한 마음으로 해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렇게 담담히 해나가다 보면 서로 이렇게 운명 같은 우연으로 만나게 될 때가 있고, 그럴 때는 기분 좋은 스파크가 튄다. 물론 그러자면 나처럼 가만히 있을 생각만 하지 말고, 진처럼 눈을 반짝이며 여기저기 다녀봐야 하겠지만.
그러니까 잊지 말아야겠다. 별은 아득한 우주에서 홀로 빛나지만, 그걸 잘 이어 보면 별자리가 되는 것처럼, 거기에 이름이 붙고 이야기가 피어나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되는 것처럼, 지금 어디에 있더라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