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 고양이 카모, 마일 이야기
사무실 고양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데굴데굴, 작은 덩어리들이 굴러다니는 느낌이다. 빠르게 또 느리게, 엉겨 붙었다가 갈라졌다 반복하면서. 어느 때는 솜덩어리들이 날리는 것처럼 산뜻하게 보이다가도, 저마다 역사가 응집된 사연 덩어리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무거운 쌍둥이 덩어리는 카모와 마일이다.
두 아이는 자매 고양이다. 길에서부터 꼭 붙어 다니는 모습을 많은 분들이 예뻐하셨다고 한다. 두 아이가 우리 사무실의 가장 오래된 식구다. 달리 말하면 사무실의 시작을 함께한, 사무실을 만든 친구들이기도 하다. 구조와 보호는 시급했는데 공간이 없었던 상황에서 진이 급하게 오피스텔을 단기 임대로 구했고, 그게 우리 보호 공간의 서막이 되었다.
그 임보처에서 카모와 마일이를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처음 보는 고양이 두 마리가 덩그러니. 길에서 구조한 친구를 가족으로 맞이한 적은 있는 상태였지만, 낯선 공간에서 초면인 고양이 둘을 마주하고 있는 게 현실감 없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게는 두 친구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반갑게 인사는 했지만 어색했고,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아리송했다. 당시엔 고양이 돌보는 일이 이렇게 커질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카모와 마일이가 입양을 가지 못할 거라고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두 아이는 뒤에서 보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다. 성격도 유순한 면이 역시 자매인가 싶기도 하지만, 역시나 은근한 ‘개묘차’가 있다. 사무실에서 보낸 오랜 시간만큼 두 아이는 각자의 어려움을 안아야 했다.
보통 예민냥이라고 하면 사람에 대한 얘기가 되는데, 카모는 반대다.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는 카모의 예민 포스는 주변 고양이들을 향해 발휘된다. 다른 고양이가 너무 가까이 오거나 몸을 비비면 손질을 하며 거부하기도 하고, 아예 자리를 떠나 버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다른 친구에게 해코지할 성격은 전혀 못되어서 혼자 조용한 장소를 찾아다닌다. 우리 사무실에는 새로운 고양이가 조금씩 유입될 수밖에 없었고 이런 환경이 카모에게는 스트레스로 작용했던 것 같다. 심할 때는 스스로 털을 뽑기도 해서, 듬성듬성 비어있는 카모의 등이 우리에게도 참 아팠다. 몇 번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면서, 다른 친구들과 거리 두며 어울리는 방법을 익히기까지 계절이 여러 번 바뀌어야 했다.
마일이는 길에 있을 때 카모보다 훨씬 개냥이였다는데, 나는 그 말을 믿기 힘들었다. 마일이가 사람 근처에라도 오는 걸 전혀 보지 못했으니까. 내가 보는 마일이는 언제나 구석에 숨어있는 모습이었다. 진은 필요할 때 마일이를 안고 케어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지만, 나는 감히 시도도 해보지 못했다. 내게는 마일이가 참 멀었다. 마일이가 변한 건 함께한 지 2년도 넘은 어느 날, 갑자기였다. 쪼그려 앉아서 다른 친구들을 만져주는 내게 마일이가 총총총 다가왔다. 눈을 맞추고 반가운 소리를 내면서 달려와 토닥여달라며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관계가 오는 방식은 때로는 계단식이구나. 그간 우리를 지켜보다 이제 괜찮겠다 하고 안심했겠구나. 우리만 너를 지켜본 게 아니라, 너도 우리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구나. 나는 마일이의 엉덩이에 부지런히 대답을 해주었다.
또 다른 변화는 아주 둘이서만 붙어 다니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 공간이 꾸려지고, 한 번의 이사를 거치고, 많은 고양이들이 스쳐가는 동안 둘은 늘 함께였다. 둘은 여전히 친하고 가까이 있을 때도 많지만, 혼자 있는 법, 그리고 다른 고양이와 새로 관계를 맺는 법도 조금씩 익혀가는 중이다. 관계의 형태는 삶의 모양만큼이나 다양하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밥을 먹는 사이다. 진과 나와 혜진 씨도 사무실에서 점심을 같이 먹는 날이 많고, 카모와 마일이는 우리가 주는 사료를 가장 오래 많이 먹어왔다. 긴 시간 우리가 먹어 온 밥의 양만큼 우리는 좀 더 무거워졌을 테고, 덩달아 관계의 무게도 좀 더 진해졌을 것이다. 관계가 오래되고 깊어지는 만큼, 서로의 존재가 갖는 질량이 커지는 만큼, 서로 끌어당기는 중력도 늘어나고, 그래서 더 무겁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게 식구의 진정한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만남과 헤어짐에 순서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다음에 입양 가는 고양이가 온 지 가장 얼마 안 된 써니일지, 가장 오래된 카모와 마일이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평생 함께 살 수도 있고, 다음 주에 갑자기 입양처가 정해질 수도 있다. 인연과 묘연은 어디서 어떻게 올지 알 수 없으니까. 그저 지금 닿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카모와 마일이의 무게를 느끼고 싶다. 매일 반갑게 인사해 주고, 지나갈 때마다 엉덩이를 톡톡톡 두드려 주고 싶다. 신뢰와 다정을 담은 저 에메랄드 빛 눈망울을 한번 더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