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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광 Sep 05. 2024

헤어짐을 넘어서, 코리에게

그날은 안과전문병원에서 코리가 수술을 받기로 한 날이었다. 간단한 수술이었다. 날 때부터 코리를 불편하게 했던 눈꺼풀을 살짝 집는 것뿐이었다. 그저 조금 편해지는 날이었다. 그런데 병원으로부터 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진과 혜진 씨가 달려갔다. 나도 달려갔다. 열심히 달려갔는데 코리를 만나지 못했다. 그날은 우리가 코리를 떠나보낸 날이 되었다.




상황은 간단했지만 이해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수술 준비 과정의 초반이었다. 마취 전 검사를 위해 피를 뽑아야 했고, 피를 뽑기 위해 코리 다리에 라인을 잡아야 했다. 코리가 자꾸만 다리를 빼는 바람에 시간이 길어졌고 진정제가 투여되었다. 진정 효과가 나타나다가 코리의 호흡과 심박이 너무 느려지면서 위급 상황으로 흘러갔다. 필요한 조치를 했지만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았지만 그 진정제는 상당히 안전한 것으로 통용되는 것이었다. 다만 개체에 따라 나쁜 반응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 하나 아픈 곳도 없던 아이가 마취제도 아닌 진정제로 잘못되었다는 걸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상황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병원을 두 번이나 더 방문하며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알고 있었다. 우리가 어떻게 해도 코리가 돌아올 수 없다는 건. 진은 그저 이 모든 과정이 괴로워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인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코리를 위해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나중에 코리를 만났을 때 미안할 거 같아서, 코리의 보호자로서 마땅히 해내야 할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과정을 견뎌야 했다. 우리는 어떻게 된 일인지 하나하나 알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병원의 설명은 일관되었고 차분했다. CCTV 영상으로 보이는 모습과도 일치했다. 안과 원장님과 처치 원장님은 시간을 들여 자세하게 당시의 상황과 코리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대화의 전 과정에 있어 우리의 상심에 공감하고 코리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져주셨다. 어렵고 긴 대화 끝에 우리는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는 데에 동의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죄송하다는 말도 거듭 덧붙이셨지만, 나는 누군가를 원망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데에 실은 조금 안도했다.



코리는 사실상 태어나자마자부터 우리 식구였다. 너무 어린 나이에 허피스 바이러스를 앓으면서 눈이 좋지 않은 상태로 세 형제가 구조되었다. 아직 이름도 미처 붙여주기 전에 병원에서 형제 중 ‘우리’가 먼저 떠나고, 코리와 포리는 퇴원과 함께 사무실로 왔다. 진과 혜진 씨 품에서 분유를 먹어가며, 앞도 제대로 안 보이는 채로 서로 부둥켜안고서 자랐다. 아픈 데도 없었고 사무실 친구들과 얽힘도 없었다. 부족한 집사들 걱정을 덜어주느라고, 코리와 포리는 티끌 없이 맑게 자라주었다.


코리를 생각할 때 내게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코리가 다른 고양이를 안아주고 있는 모습이다. 아기 고양이부터 다 큰 고양이들까지 다들 그렇게 코리의 젖을 물려고 했다. 자라는 과정에서 서로 자주 하는 행동인데, 하다 보면 불편한 티를 다들 내니까 결국 받아주는 고양이에게로 모여들게 된다. 그게 코리였다. 코리는 그 작은 몸집으로 어느 식구 가릴 것 없이 안아주었다. 그게 어쩐지 짠해서 우리는 이따금 다른 고양이들을 말렸지만 코리는 싫은 내색이 없었다. 가끔 내가 지쳐 엎드려 있을 때도 가만히 옆에 다가와 살을 대고 앉아 주는 고양이였다, 코리는.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코리를 안아 보다가, 내 입에서 상투적으로 “고생만 하다 가는구나” 하는 말이 삐져 나왔다. 진이 즉각 “얘가 무슨 고생을 해.” 하고 바로잡아주었다. 좋은 가정에 입양되어 더 행복한 묘생을 살아보지 못하고 떠난 코리가 안타까워 나온 말이었지만, 실은 진의 말이 옳았다. 코리는 무슨 고생을 하다가 빛도 못 보고 간 처량한 신세 같은 게 아니었다. 예쁘게 피어서 정다운 친구들과 정을 나누었고, 창가에서 따뜻한 햇살을 내내 받았다. 겨울엔 따뜻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보냈다. 단지 그게 너무 짧았을 뿐이었다. 코리가 만나볼 계절이 더 허락되지 않은 게 너무 아깝다. 나는 코리가 너무 아깝다.



병원에서 그 진정제를 쓰지 않았다면. 금식 때문에 코리를 격리장에 두지 않았다면. 수술 날짜를 미뤘다면. 아니 이런 수술 같은 거 그냥 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안 했다면, 다르게 했다면, 나중에 했다면.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후회와 후회와 후회는 밀려온다. 그래도, 우리는 미안해하고 슬퍼하는 마음속에 코리를 가둬두고 싶지 않다고 다짐했다. 코리를 잘 보내는 일, 잘 남기는 일, 그리고 기억하는 일을 하고자 했다. 우리는 코리를 위한 작은 추모식을 준비했다.


진과 혜진 씨와 나는 코리의 유골 앞에 모여 앉았다. 예쁜 꽃을 준비하고 코리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도 모아 보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포리가 함께 자리해 주었다. 우리는 각자가 기억하는 코리를 꺼내어 보고 같이 나누었다. 유골에 손을 얹고 코리에게 인사말도 건넸다. 채도가 낮은 듯하면서도 색감이 화사한 꽃의 빛깔이 코리의 눈빛을 닮아 보였다.



이 일을 하면서 벌써 여러 친구들과 이별해야 했다. 나는 그때마다 모든 상황이 낯설고, 모든 대처가 서툴다. 어떻게 서 있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코리에게 어떤 편지를 써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도리어 어리고 미성숙한 마음이 되어서 코리에게 바라는 것만 늘어놓게 된다. 코리가 우리를 좀 더 지켜봐 주면 좋겠고, 기다려 주면 좋겠다는 바람. 나중에 꼭 다시 만나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뒹굴고 싶다는 욕심. 그런 것들만 꺼내게 된다. 그러니까 마지막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코리가 우리에게 더더 오래, 더더 깊게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다.


코리가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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